멀리서 보니 학원 앞에 휠체어가 한 대 놓여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피아노 앞 의자에 할머니와 아주머니 나란히 앉아계셨다.
"안녕하세요"
언니가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오셨네~ 할머니, 선생님 오니까 좋아요?"
"응. 좋아."
돌보미 아주머니의 말에 할머니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셨지만 얼굴은 그대로 앞만 바라보셨다.
이분은 2017년 처음 학원에 오셨다. 그때는 건강하게 두 발로 학원에 오셨었는데, 수업한 지 4년쯤 지났을 때 수업 중 언니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파킨슨에 걸렸어."
그 뒤로 미세한 손의 떨림이 생기셨고, 움직임이 느려지면서 멜로디가 간단한 곡으로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어떤 날은 할머니가 피아노를 부여잡고 서 계셨다. 피아노를 잡은 두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엉거주춤 선 허리는 경직돼 보였다.
"왜 서계세요?"
"한 시간 연습을 하셨더니 허리가 불편하신가 봐요."
돌보미 아주머니는 굳은 할머니 등을 조심스레 쓸어주셨다. 아무래도 근육이 경직되다 보니 오래 앉아계시기가 힘이 드신다.
"레슨 전에 너무 일찍 오지 마시고, 30분 전에 오셔서 연습하세요."
이 말을 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반복적인 손가락 운동이 할머니의 퇴행을 조금이라도 늦춰주겠지.'
언제까지 수업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이 수업이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언니다.
"레슨 있는 날은 아침부터 피아노 연습하러 가자고 할머니가 난리예요"
돌보미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내가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게 참 좋아."
이 말을 하는 할머니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다.
비록 자신의 몸은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지만,
음표를 따라 건반을 누를 수 있는 작은 행복이 할머니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라면 어떨까?'
점점 굳어가는 몸과 함께 마음마저 좌절감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몸이 말을 안 듣고, 손이 떨리지만 한 음 한 음 건반을 누를 때 할머니는 살아있음의 감사를 노래하고 계신 게 분명하다.
언젠가 나도 제대로 연주를 할 수 없을 때가 오겠지?
그날에 이 할머니를 기억하며 나에게 엄습해 오는 죽음보다 한 줄의 울림으로 아직 꺼지지 않은 내 생명에 감사할 줄 아는 행복한 연주가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