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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깔부자

#살치살과 양념목살

by 하루만 Dec 20. 2024

침대에 누운 남자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콘텐츠를 소비하느라 움직이질 않는다. 초등, 중등, 중년의 각기 다른 연령층이 하나의 문화에 빠져어 같이 노는 모습은 관심사기반으로 분류되는 현시대의 전형을 보여는 것 같다.

"푸하하하"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엔도르핀을 빵빵 터뜨리니 집 안 데시벨이 낮아질 새가 없다. 아래 윗집에서 놀라지는 않으셨는지 걱정하며, 잔잔한 음악이나 틀어놓고 조용히 혼자 있는 상상에 빠져본다.


"이거 엄마 보여주자."

셋이서 즐거우면 될 일인데 굳이 나한테 그걸 가져온다.

"잘 봐. 엄마 웃는지 안 웃는지."

남편이 아이들에게 인을 당부하니 곧 샴쌍둥이처럼 얼굴을 붙여 내 앞에 대기를 한다. 

'부담스럽게 얘네들 왜 이래?'

남편이 플레이를 누르자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말들이 핸드폰 안에서 밖으로 우르르 쏟아진다. 집중한 나는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데 나에게 보여준다며 나온 그들 입술은 또다시 씰룩씰룩거린다.


"이게 뭐?"

무덤덤한 나의 모습에 내 반응을 보려고 몰려든 그들은 풀이 죽는다.

"봐봐, 너네 엄마는 안 웃는다니까!"

"여보, 나도 미소 지었거든! 입술꼬리가 올라갔잖!"

남편은 내 웃음 포인트에 집착한다. 본인이 좋아하는 언어유희 같은 개그를 나는 안 좋아한다고 해도, 그럼 도대체 언제 웃음이 터지냐며 셋이서 즐기던 공동 1순위 웃긴 동영상을 들고 와 매번 날 시험한다. 내가 보기엔 남편이 너무 크게 터지는 건데.. 나처럼 웃는 사람도 있지 않나? 내가 이상한 건가?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살던 우리 집은 늘 저녁 6시 반이면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식탁에서 밥을 먹던 도중 아빠가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동생 같으면 그 자리에서 와앙하고 울음을 터뜨렸을 텐데 나는 눈물이 보일세라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닦고 울지 않은 척 나왔던 기억이 난다.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인데도,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억제하고 살았구나.'


남편의 지적으로 시작된 나의 탐구에서 나는 중요한 것을 발견다. 어릴 적 기억들 중 동생이 계속해서 심하게 울다가 야단맞은 기억, 언니가 깔깔거리고 놀다가 장독대를 깨고 혼난 장면들이 겹치면서 "통제되지 못한 감정들은 분명 사고를 일으킨다"는 학습하게 된 것이다. , 나는 나의 감정을 통제하고 싶어서 있는 그대로 충분히 느끼기보다는 절제의 미(?)를 갖는 식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다.


정신없고 시끄럽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남자 셋을 돌아봤다. 특히 내 남자의 얼굴.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도 웬만해서는 소주 한잔 걸치고 개그하나 보면서 박격포를 터뜨리는 그분의 얼굴은.. 오옷! 때갈이 남다르다. 그렇게 크게 웃는데 혈류가 증가하고 면역력 강화가 되는 것은 기본이겠지. 거기다 천연진통제라는 엔도르핀이 고통을 완하시키고 도파민이 분비되며 에너지를 팡팡 쏴줄 것 아닌가. 번질번질한 그와 다른 꺼칠한 내 얼굴을 거울로 살펴보는데 남편 외침이 들린다.


"파뤼하자. 파뤼! 다들 모이셔."

"오~ 아빠 오늘 저녁은 뭐야?"

"때깔 죽이는 거 사 왔지."

금세 상을 차리고 얼마 안 되는 치맛살을 꺼내니 아들들의 탄성이 들린다.

"우와, 나 이거 사진 찍을래."

"얘들아, 이거 말고도 아빠가 목살 사 와서 양념 재워났으니까 천천히 먹어."

얼마 안 되는 양이라도 한 점씩 맛보며 행복을 나눠가는 시간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와~때깔보소. 진정 때깔부자와~때깔보소. 진정 때깔부자


양념은 은은한 불에 천천히 익혀야 된다며 타지 않게 남편이 열심히 뒤집어 준다. 4인가족이 소고기 한 접시론 배가 차지 않는데 천천히 익어가는 고기 기다리기가 고역이다.


참지 못하는 애들을 위해 남편이 두 덩이는 웍에서 재빠르게 볶아오고, 그 뒤 구이바다에서 천천히 익힌 고기를 비교해 가며 맛을 본다.

"와, 이거가 진짜네! 때깔도 제일이고."

첫째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젓가락을 놓질 않는다.


은은하게 구워지는 고기의 때깔은은하게 구워지는 고기의 때깔


"여보, 그래도 내가 당신이랑 살면서 소리 내 웃는 게 많이 늘었어. 그지?"

"맞지."

그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에 잽싸게 말을 끊으며 들어온 아들의 훅.

"엄마, 엄마는 사이보그라 웃지 않아."

"뭐라고?!!"

"와하하하" 

나만 빼고 셋은 합창을 한다.

"흥! 됐거든. 나도 천천히 앞뒤로 뒤집으며 웃음을 익혀볼 테니까 기다려. 내가 최고 때깔부자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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