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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위태한 생일밥

#소고기미역국

by 하루만 Dec 13. 2024

부부관계가 위태로울 때 나타나는 전조증상이 있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해도 몇 년째 같이 살다 보면 익숙함이 찾아오게 되고 서로가 더 이상 특별해지지 않는 순간이 오게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이까지 나았다고 가정했을 때, 가정의 경제를 책임진 자와 아이의 양육을 책임진 자는 각자 다른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며 정신없이 살아간다. 둘 다 처음 처해보는 가장과 양육자의 삶이기에 혼돈에 빠지기도 하고 괴로움에 울상을 짓기도  이때, 서로에게 털어 넣고 위로를 받는 게 정상이지만  반대로 서로에게 간극이 생겨 버리기도 한다. 자 영역을 살아내는 삶의 패턴 반복되다 보면 서로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이해하지 못해 갈등이 생기고, 그 여파로 자가 처한 상황에서 트레스를 풀 재미를 찾게 되거나 공동의 목표가 아닌 개인의 우선순위를 찾아 달리게 기 때문이다.


"아이는 누구한테 좀 맡기고 우리 둘이 놀러 가자."

모성애가 가득 차올라있는 나는 남편의 그 말이 얼마나 철없게 들렸는지 모른다. 하기사 동갑으로 26살에 결혼해 29살에 첫 아이를 낳았으니 아빠가 되긴 좀 어린 나이긴 했다. 나는 그때 그렇게 입이 안 떨어졌는지 멀어도 너무 먼 시댁과 친정 그 어느 곳에도 놀러 갈 테니 애 봐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생기는 여러 제약이 남편을 갑갑하게 했던 것 같다.

"오늘도 늦어?"

"알잖아."

남편은 점점 퇴근 후 술자리가 없는 날이 없게 됐다.  일 핑계를 대며 우리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을 들이밀면 돈을 못 벌고 있던 나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남편과 같이 먹을 저녁거리를 걱정하는 일사라 단지 같은 집에 하숙생을 하나 데리고 사는 기분이 들었다.


말 그대로 독박육아로 4살 터울 아이 둘을 키웠다. 아이를 키울 때커가는 모습을 보 같이 귀여워해주고 기뻐해주는 응원군이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우울증이 덮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비슷한 또래 아이엄마 사 같이 놀 끔 이른 저녁을 서로의 집에서 돌아가며 먹이면서 아이들의 유아기를 텨냈다.

"애가 지금 열이 38도가 넘어. 병원에 가야 되는 거 아냐?"

아이를 키우며 처음 겪는 일들에 놀라고 당황할 때도 내 옆에 있어야 할 남편은 밖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이가 아프다고 SOS를 보내도 감감무소식인 그를 보며 내 마음은 영하 40도로 급냉각되었다. 주말에 집에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 불만은 쌓여갔고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에게 건네는 질문도 대답도 단답형의 익숙한 패턴이 전부 됐다.


남편의 서른여섯 번째 생일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각자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우리는 한가족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시부모님까지 올라오셔서 다 같이 생일저녁상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남편자신이 먹고 싶은 메뉴를 알아서 사 온다는 말에 나는 케이크만 준비했다. 집 앞에 흔한 빵집 말고 좀 더 특별한 브랜드의 케이크를 산다고 나름 분주했다.

"쨘~내가 오설록 가서 녹차케이크 사 왔어."

"... 나는 녹차 안 좋아하는데?"

안 좋아해? 가만.. 보자 보자.. 그럼 저 사람이 좋아하는 케이크가 뭐더라?

당황한 그 순간 눈알을 굴리며 폭발적인 힘으로 뇌 속의 모든 데이터를 끌어다 검색을 하는데 답이 나오질 않는다.

'정말 모르겠어..'

눈앞의 스크린이 지지직 흐려지더니 확 꺼져버린다. 그 당시 나는 그에게 기분 나빴던 일들을 가지고 싸우지 않았다. 그저 꾹꾹 눌러 담고는 그에 대한 무관심으로 내 마음을 표현했던 것 같다. 서로 무심하게 지낸 게 이 정도였나? 그와의 감정적 거리감이 우주의 한 행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달려가는 끝없는 길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물리적으로 다가와 큰 충격을 주었다.


이때라도 알아차리고 둘 중 이탈자 없이 수습할 수 있다면 다행인 일이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남편과의 멀어진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다 접고 한 달 살기 혹은 1년 동안 세계일주를 떠날 마음 있다. 그러나 그때 우리에게 갈라진 틈은 이미 건널 수 없는 절벽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당신 아까 들어올 때 들고 온 큰 쇼핑백 그건 뭐야?"

"아, 그거? 내 생일이라서 옷 좀 샀어."

"옷?"

"응. 내가 갖고 싶은 정장재킷 샀어."


그럴 리가. 남편은 지금도 청바지에 티만 입는 사람이다. 특히 정장바지에 셔츠같이 몸에 딱 맞는 옷은 꼭 입어야 될 상황이 아니면 입지 않는다. 쇼핑백안에 든 영수증을 보니 우리가 가지도 않는 청담동 갤러리아 백화점 이름이 찍혀있다.

"위태롭다"는 신호가 심장 깊숙이 찔러댄다. 이렇듯 아슬아슬한 상태 겨우 신호를 감지하게 되면 그제야 상대가 갑자기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평소랑 다르게 꾸미고 멋을 며 취향이 바뀌어있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 서로가 조금 무심해졌다 싶을 때 관심을 기울이고 권태기가 찾아온 부부사이에 새로운 공통의 취미나 관심사를 만드는 노력을 해보길 바란다. 부부사이의 교집합이 얼마나 되는지, 정서적 교감은 활발한지를 체크하는 것이 우리처럼 위태로운 관계로 가지 않는 현명한 방법이다.


양지를 썰고 있는 남편
미역귀를 달달 볶아준다
양파와 미역귀가 세프의 킥


"와, 아빠 이거 진짜 미쳤다."

미역국 한 입 맛보시 알파세대다운 맛 표현을 해주는 첫째다. 사실 나도 남편요리 중에 이건 팔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바로 미역국이다.


이건 진짜 비밀인데, 이 미역국의 킥은 미역귀와 양파다!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의 남편이 어느 날 미역귀잘라서 같이 넣고 끓였더니 식감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국물이 뽀얗게 나왔다. 미역귀를 일단 소금으로 바락바락 씻는다. 미끌한 콧물이 엄청나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다시 웍에서 볶아서 국에 넣어 끓이고는 국이 완성되면 빼버린다. 개인적으로 나는 먹어도 괜찮았는데 남편은 별로라고 한다. 거기에 양파 한 알 추가하면 캬 죽여주는 국물이 완성된다. 간을 무엇으로 하느냐가 호불호도 있고 참 중요한데 이제 딱 맞는 비율을 찾은 듯하다.


십 년이 넘게 같이 산 부부가 아직도 서롤 보며 설레고 흥분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똑같은 삶이 때론 무료하고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온 가족이 바라보는 하나의 목표를 설정함으로 그 권태를 이겨내기도 하니 대동단결하는 가족의 연합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겠다. 


나이가 드는데 정열적인 섹스가 예전만 못한 게 당연하지 않은가? 매일 같은 얼굴 보고 사는데 할 말은 뭐가 그리 많을까. 그러나 몇 마디 되지 않는 같이 던진  내 말을 찰떡 같이 알아듣는 남편을 보면서 우리는 낄낄 댄다. 


거대한 우주의 공간에
위태했더라도 시기별로
하나의 별들을 함께 찍어나가는 그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제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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