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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의 변신은 무죄

#차돌박이만두전골

by 하루만 Dec 06. 2024

'소주'는 남자의 눈물이라고 했던가. 가장의 책임감을 갖고 살아내기가 점점 더 버거운 세상이라 그런지 남편은 매일 저녁 눈물을 그렇게 찾으신다. 그런 그는 저녁 한 끼의 식사로 보기보단 술에 곁들일 안주로 보는 경향이 더 크다. 보통 자녀가 있는 가정집에서 저녁을 준비한다면 한 가지 메뉴를 준비해 먹는다거나 맵기의 정도에 따라 아이 것과 어른 것을 구별하는 정도일 테지만, 우리 집 저녁은 아이 어른 메뉴를 아예 다르게 구성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그러니 손이 여간 많이 가는 게 아니다. 저녁마다 한 상 차리기도 힘든데 두 번이나 상을 차려내는 것은.. 애주가 남편이 털어 넣을 소주의 기막힌 첫 잔을 위해서라고 해두자.


첫째를 입원시킨 첫날 저녁, 병실에서 다 같이 시간을 보내다 막 헤어지려는 참이었다.

응급상황에 힘을 합쳐 발 빠르게 대처했하루를 마치고 각자 아이 한 명 데리고 반쪽으로 찢어지려니 기분이 묘하게 아쉬웠다.


"자, 여기서 나갈 사람은 나한테 뽀뽀해."

나는 병실 미닫이 문을 두 팔 벌려 가로막고 선 뒤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어이, 그럼 난 안 나가고 여기 있을게."

남편은 '뽀뽀'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뒤돌아서며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다.


키스도 아니고 뽀뽀가 뭐 어때서?

저기요, 당신 나랑 아들 둘씩이나 낳은 분 맞거든요. !


연애시절에 남편의 투박한 애정표현 꼭 아빠 같기도 사랑 헤픈 날라리보다 낫다 여겼다.

그러나 살면서 따뜻한 감정표현을 해야 되는 순간만 되면 저렇게 과장된 말과 액션을 펼치니 처음엔 그 모습에 서운했고 그다음엔 왜 저럴까 궁금하고 답답했다.


"엄마~~"

둘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허리를 안으며 입술에 쪽 하고 뽀뽀를 해준다. 똑같이 아들인 요놈들은 스킨십 잘만하구먼 저 영감탱이는 왜 이게 안 되는 걸까?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든 혹은 고마움을 건네야 할 때든 늘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일에 집중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정서적 교감의 순간엔 손으로  단단해진 아들의 종아리를 주무르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며 를 기울였다. 그래서인지 들 두 명 다 스킨십에 거부감이 없고 부모에게 속내도 잘 드러낸다.


"그래, 봐준다. 그럼 여기에 하고 가."

나는 손가락으로 내 볼을 가볍게 톡톡 쳤다.

과연 아빠가 할까?

궁금해하는 아들들의 시선이 내게 머문다.


얼른 오라는 손짓을 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나에게 그는 마음을 먹었는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돌려댄 뺨에 0.1초 컷 입술접촉해주시곤 쿨하게 퇴장하신다. 크크큭 웃긴다. 이건 정말 엎드려 절 받기다. 그래도 피식 웃음이 나는 건 저 정도가 그나마 학습된 상태라는 거다.


아침저녁으로 병원을 오가던 입원 5일 차 밤이었다. 남편은 아이 입원덕에 그 좋아하는 야식도 술도 포기한 채 어쩔 수 없는 단식기간을 맞이했다. 병원에서 열시는 이미 잠자리에 들어야 되는 시간. 그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씻었어? 피곤하지?"

나는 의자 3개가 연달아 붙은 철제다리 위에 베개를 베고 누우며 물었다.

"다 씻었지. 둘째도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어."

잠깐동안 서로 말이 없다.

'이 사람 왜 전화해 놓고 말이 없니.. 눈이 감기는데 할 말 없음 끊던지.'


아까 병원에서 집에 올 때 둘째랑 이야기했거든.
엄마랑 형이 없으니까 집이 너무 허전하다고.
다 같이 있을 때는 집이 꽉 찬 느낌이 드는 데 그런 게 없다고 말이야.

', 둘째 말고 당신이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고?'

감긴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럼 보고 싶다고 한 마디 해봐.'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술도 안 먹은 그가 보여준 진심이 고마워 그가 당황해 전화를 끊을 일은 미루고 먼저 그의 마음을 공감했다.

"맞아~우리 빨리 합체하자. 함께 있는 게 행복이잖아."

다행히 냉골 같던 남편의 표현방식에도 따땃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어릴 적 아버가 자신을 혼내다 결국 폭력을 쓰고 난 뒷날이면 꼭 아버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남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는 그게 소름이 돋고 무척이나 싫었다고 했다. 아이의 다친 마음은 무시한 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부모를 그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알아주고 다독여주는 것을 부모로부터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감정표현 자체가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정서적 방치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라는 생각을 갖게 하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차단하려는 방어기제를 발달시킬 수 있다.


사실 그에겐 분노와 기쁨은 아주 잘 표현되는데 그 부분은 아마 사는 동안 그의 아버지가 모델링이 된 것 같다. 부정적 감정 중에도  슬픔, 두려움, 아픔, 힘듦과 같은 다양한 감정는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몰랐던 거 같다. 뭉뚱그려 모두 분노로만 표현하거나 세세하게 나누어보지 않고 억압시켰을 듯하다. 그런 그가 작년부터 술을 한 잔 하면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제껏 눌러놨던 감정들의 표출일까? 그 모습이 짠해서 귀찮아도 술상을 차릴 수밖에 없다.


육수로 쓸 곰탕을 데우다 끓어넘친 상황육수로 쓸 곰탕을 데우다 끓어넘친 상황


퇴원한 아이를 위한 저녁은 '차돌박이가 들어간 만두전골'이 되시겠다. 만두, 배추, 청경채, 느타리버섯, 팽이버섯, 양패채 썬 것을 전골냄비 바닥에 깔고 그가 끓여둔 사골을 육수로 쓰면 된다. 냉장고에 들어가 탱글탱글한 묵처럼 된 사골국을 덜어서 끓여준다. 너무 찐득할 거 같아서 물을 약간 섞고 남편이 만든 맵지 않은 다진 양념을 넣어 다 같이 통일된 메뉴로 저녁을 차리니 기분이 좋다.


냉장고에서 꺼낸 곰탕이 탱글하다냉장고에서 꺼낸 곰탕이 탱글하다
사골곰탕의 변신 "차돌박이 만두전골"사골곰탕의 변신 "차돌박이 만두전골"

차돌에 입이 벌어진 첫째는 야채와 함께 두 차례나 냄비를 다시 채워가면 먹는다. 전골의 마지막을 칼국수로 장식하니 청포묵처럼 허연 곰탕의 또 다른 붉은 매력에 덩 빠지게 된다.


남편, 당신의 변신도 무죄.

따스한 그대의 매력에 풍덩 빠지고파.


짧게 동영상으로 담아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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