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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려버린 돈, 살기 위한 필수조건

없어도 안돼

by 하루만 Mar 27. 2025

이사 갈 날이 다가올수록 이 짐들을 어떻게 치울지 막막하기만 하다. 집을 14평이나 줄인다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아직 감도 없다.


이사업체 실장님과 상담부터 시작하자.

"좀 싸게 해 주세요. 저희는 다 버리고 침대랑 전자제품만 들고 가니까요."

한 푼이라도 아낄 생각에 격 흥정부터 들어간다.


"고객님, 보세요."

실장님은 날 쳐다보며 싱긋 웃더니 체크한 이사품목들을 펜으로 쫘악 그어주신다.

"고객님 짐이 7.5톤은 거뜬히 되는걸요. 게다가 버리는 짐들도 다 내려드려야 되기 때문에 남자 5명은 와야 해요. 일반 이사와 를 게 하나 없어요."

고수의 향을 풍기며 이사비 줄다리기 정도는 껌이라는 듯 온화한 목소리로 날 달랜다.

"저희도 이날 빼고는 이사가 이미 다 잡혀있어요. 저희한테 하실 건가요?"

촉박하게 잡힌 이삿날은 나에게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다. 풀이 죽은 나는 고개를 두어 번 주억이며 견적서에 사인을 해야만 했다.


전세금을 받아 밀린 관리비와 카드값에 대출 상환도 어느 정도 해야 하는데 앞이 깜깜하다. 게다가 이사는 어디 공짜로 누가 시켜주냔 말이다. 이사업체 사용료, 폐기물 처리비용, 이전 설치 비용, 엘리베이터 사용료 등 계산기를 두드리는데 후하고 한숨이 쉬어진다.



출저 unsplash출저 unsplash



"아빠~~"

퇴근한 남편이 들어오자 아이들이 아빠를 반긴다.

"아빠, 오늘 저녁은 뭐야?"

우리 집 셰프로 등극해 있는 아빠가 자신들의 도파민을 터뜨려 줄 메뉴로 무얼 말할지 아이들은 초집중한다.

"이제 이사 가려면 냉장고 비워야 하는데 냉장고나 털어먹자."

기대하는 아빠의 대답을 내가 재빠르게 가로챘다.

"에이.."

허탈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아들들이야 썩어 들어가는 마음을 알 리가 없겠지만, 남편은 알아야지.

그런데 갑자기 복장 터지는 소리를 한다.


"이사 가려면 건담도 정리해야겠네. 이사 간 집 거실에 전시할 진열대를 사야겠어."

남편이 5단 유리 진열장안에 놓여있는 자신의 소중한 건담들을 들여다보여 말했다.

"여보 지금 장난해? 그 쪼그만 집에 전시라니 뭘 전시해!"

'참 나, 버려도 모자랄 판에 뭘 산다고? 이사비도 깎지 못했는데 돈은 어디서 충당할 건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내뱉지는 못했지만, 결국 어떻게든 지출을 줄이고 싶은 나의 욕구는 화가 되어 남편에게 달려들고 말았다.



도대체 인생에서 돈이 뭐길래


학생 때부터 나는 큰 야망이 없었다. 적당히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걸로 내겐 충분했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서도 돈에 대한 큰 욕심이 없었다. 적당히 채워지면 그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한마디로 경제관념이 없고 무식했다는 거다. 소박한 삶에 만족하고 살아도 예산을 세워 제대로 사용하는 것과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사는 것은 완전 다른 것이니 말이다.


대출로 질려버린 돈이라 쳐다보기도 싫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생존이고, 기회 안전이며, 심지어는 사회적 위치인 것이다. 게다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는 먹이고 입히는 것, 원하는 교육을 받게 해주는 것 등 끊임없이 돈이 필요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돈이 없어 마음 아픈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시달리는 건 정말 지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열심히 살고 있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단순하게 살아도 행복할 수는 없을까?”


꼬여버린 실타래 같은 집안경제를 정리하려면 욕망으로 얼룩졌던 돈의 쓰임을 다 막아야 한다. 남과의 비교나 불안으로 사용된 돈들은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자신이나 자식을 너무 사랑하여 타당하다 여긴 명분을 이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이사와 함께 빚들을 정리하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해도 깨끗한 본래의 상태에서 다시 일구는 것도 괜찮다. 재정적으로나 마음과 정신상태적으로도 가치관을 재정비하고 추구할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여 매 순간 올바른 선택을 쌓아가는 것이 훗날 미래를 즐겁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나저나 짐을 버릴래도 돈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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