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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홀리는 그것

쌓여있는 짐이 말한다

by 하루만

"이야, 차 뽑은 지 얼마 안 됐어? 정말 깨끗하네."

2년도 넘게 탄 차를 본 친구의 첫마디이다.

"집을 깨끗하게 잘 쓰셨네요."

첫째 아들 발목 수술 때문에 며칠 입원해 있을 때 내놓은 집을 보러 오신 분의 말이다.


남편과 나는 어질러져 있는 꼴을 보지 못하는 편이라 차도 집도 겉으로 봐선 아주 상태가 양호하다. 그러니 차곡히 정리된 짐들을 많이 버리기만 하면, 좁은 집으로 가는 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큼직큼직한 가구들 버리고 이사 가면 깔끔하게 정리되겠지?"


먼저 대형폐기물을 체크해 보자.

검은색 페인트를 덧입힌 원목식탁과 DVD를 사용하던 시절의 비효율적인 티브이장은 16년 전 신혼 때 구입했던 것으로 이제 헤어질 때가 됐다. 첫 손주의 입학을 축하하는 할아버지의 사랑만큼 커다란 1400폭의 전면형 책상과 6단 책장 또한 가져갈 수가 없다. 남편의 작품전시실이던 5단 유리장은 너무 우람하다. 다용도실 철제 4단 선반과 남편 전용 책상, 피아노, 협탁 등 계속해서 열거된 예상폐기물이 총 20가지가 넘는다.


"휴, 이 정도면 많이 비운 거겠지?"

폐기물 신청접수를 마친 뒤 이마의 땀을 닦으며 버릴 짐이 반 정도는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럴 리가!

이것은 집을 좁혀가 본 적이 없는 자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다음 미션은 "숨어있는 물건들을 버려라"다. 각각의 장소를 하나씩 파헤쳐야 하는 업무로 일일이 물건을 살펴본 후 이사 동반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한마디로 시간과 에너지가 무한대로 빨려 들어가는 핵심정리작업이다.


팬트리가 넓은 게 이 집의 장점이었는데 세상에 그 안에 제조공장이 있는 줄 착각할 만큼 포장지가 그대로인 물건부터 쓸데없는 물건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나마 바깥쪽에 나와있던 물건들은 살면서 '저건 안 쓰는 건데..' 하며 째려보기라도 했지, 안쪽에 꽁꽁 숨어있던 물건들은 캐캐묵은 산삼처럼 날 놀라게 했다.

"어우, 이거 큰 가구보다 자잘한 물건이 더 문제네. 도대체 이런 건 왜 산 거야?"

일회성 소비의 잔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쉽게도 리얼한 나의 쓰레기 사진이 하나도 없다.


붙박이장 안의 옷들은 언제든지 주인의 선택을 받을 제철의 식재료라도 되는 듯 가지런히 이쁘게도 걸려있다. 빼곡히 들어찬 양이 눈대중으로도 다 데리고 갈 수 없을 정도다. 하나하나 확인을 해보니 작아져서, 너무 오래돼서,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안 입는 옷들이 멀쩡히 걸려있다. 심지어 남편은 일 년에 한 번도 꺼내 입지 않는 옷이 붙박이장 한 칸 가득이다.

'언젠가는 입겠지.'

그놈의 "언젠가"는 입지 않는 옷을 어느 순간에 쓸 요긴한 물건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언젠가를 내버리자.

기약할 수 없는 어느 날을 위해 쓰레기를 이고 지고 살지 말자.






그렇게 안방과 주방을, 욕실 2개와 아이들 방 2개, 화장대와 베란다, 다용도실과 신발장까지 모두 다 털어내야 했다. 게다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함정이 있다. 결국 집 안 곳곳이 제자리인양 주인행세 하고 있는 쓰레기들을 버리고 버리다 인 화가 터져버렸다.


이놈이 어디서!

썩 물러나지 못할까!


사극 속 황제톤으로 버릴 물건과 동시에 내 정신상태를 엄히 꾸짖어본다.


난 폐기로 이어질 소비를 왜 하게 되었을까?


분명 필요에 의한 소비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세일'이나 '1+1'문구에 혹해서, 지금 불편함을 참지 못해서, 싸니까,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필요치 않은 소비를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이다.


여기서 자본주의 광고와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필요보다 욕망을 기반으로 우리를 유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또한 상품에 특정 이미지를 덧씌우고 브랜드 가치를 부각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소비 행위"를 정체성 또는 라이프스타일과 연결시킨다. 명심해라! 전지현이 광고하는 옷을 사 입다고 나, 너 절대 전지현 되지 않는다.


거기에 신용카드는 당장 소득이 부족해도 미래 소득을 담보로 소비할 수 있기에 더 쉬운 소비생활을 창출하게 한다. 드가 무섭다는 걸 알면서도 급할 때는 고마운 존재라 완벽차단이 어렵다.


그렇기에 자본주의의 반복적 소비는 매번 우리를 홀린다. 물건을 집어들 때 터지는 도파민이 곧 나의 행복을 보장이라도 해줄 듯 말이다.


집에 물건들이 이렇게 많네. 너 그동안 행복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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