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을 견디는 법
나는 퇴근길에 처진 어깨로 현관문을 밀고 들어 오다 자석에 달라붙듯 코너 쪽 신발장 앞에 멈춰 섰다. 눈앞에 보이는 문 두 짝을, 또 그 옆의 두 짝을 활짝 열어젖히자 빛이 들어오지 않는 다락에 쌓인 오래된 종이냄새가 풍겼다.
"여보, 여기 이거 절대 다 못 가져가. 박스 버릴 건 버리고 꼭 가져갈 거만 정리해 줘."
신발장 내부에 꽉 들어찬 박스를 위아래로 훑는 내 눈에서 광선 레이저가 뻗어 나온다. 보는 것만으로 식별할 수 없어 종이박스 하나를 꺼내 흔들었다.
'역시..'
빈 박스다.
자신의 작업책상을 정리하던 남편은 현관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내가 깨질 계란을 흔들기라도 한 마냥 놀란 눈으로 박스를 안아 든다.
"하나씩 정리해야지. 근데 여기 전시된 건담을 어떻게 잘 가져가지? 뽁뽁이를 싸서 박스에 담아야 되나?"
그 소리에 빨갛게 핏발 선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딱딱하게 굳은 뒷목을 주무르며 아무 말 없이 신발을 벗었다.
"얘들아, 너네도 자기 물건 중에 버릴 거랑 가져갈 거 분류해. 나중에 자기 거 뭐 없어졌다고 해도 난 모른다."
이삿날이 삼일 남은 상황이다. 이사 가서 짐을 정리할 생각을 하니 벌써 다리가 후들거린다. 나는 가족구성원들에게 전쟁 중 피난길에 꼭 챙겨야 할 물건들만 이사 박스에 담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나저나 내 작업책상은 어떡하지?"
"저건 너무 커서 못 가져가."
속으로는 그 책상이 꼭 있어야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싸우기 싫어서 뒷말은 삼켰다. 나는 집 전체를 보며 버리고, 챙기고 또 이사 갈 집 사이즈에 맞는 가구를 새로 들이느라 머릿속이 매우 분주했다.
거실 지분은 가족 구성원수대로 남편 몫은 4분의 1이 분명한데 자신의 욕구를 숨길 생각이 없다. 가뜩이나 이사준비로 예민한 머리통에서 폭주기관차의 뜨거운 증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거실분위기가 중요한데, 거기 전시할 장이나 책상을 놓으면 이상하지 않을까?"
나는 주로 거실에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거실의 전체적인 톤과 분위기를 해칠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기 시작했다.
"분위기 맞춰서 사면되지."
"소파는 어디 놔? 티브이도 너무 가까울 텐데..?'
좁은 공간 가구배치에 의구심은 계속해서 부풀려지다 짜증이 되었고, 거실의 어느 부분도 양보하기가 싫어졌다.
"책상 위에도 선반을 놓자. 거기에는 미니카를 전시해야겠어."
'아니, 저 사람은 공용공간에 왜 자꾸 자기 걸 전시하겠다는 거야! 미치겠네 진짜.'
"모든 걸 다 전시하겠다는 욕심을 버려!"
나는 두 눈이 양 옆으로 찢어진 채 벌컥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진짜 너무하네. 내가 너 좋아하는 거 한다고 하면 하라고 하지, 하지 말라고 한 적 있어?"
정신이 번뜩 차려졌다. 소심한 내가 깨작거리며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으면 그는 그걸 지켜보다가 자기가 직접 그 일에 관한 도구들을 사버렸다. 그리고는 내게 웃으며 말했다.
"해보려면 제대로 해야지."
거실에라도 남편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 나였는데 자본주의의 기름칠이 메말라버려서인지 밴댕이 소갈딱지가 되어버렸다.
"내가 이상했네. 이사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런가 봐. 당신 책상은 이케아에 가보자."
삼일동안 남편의 건담 작품들을 고이고이 싸서 박스로 몇 번을 날랐는지 모른다. 남편은 그런 나의 모습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신발장에 박혀있던 박스들을 꽤나 많이 접어 재활용에 내놓았다. 다 만들고 나서도 박스를 보물처럼 보관하던 사람이 말이다.
남 앞에 선 우리는 감정의 변화를 잘도 숨긴다. 고객의 컴플레인은 내내 참고 들으면서, 돈에 짓눌려도 나가선 멀쩡한 척 웃으면서 집에 와 남편 앞에만 서면 겹겹이 걸쳤던 가면을 허물 벗듯 벗어버린다.
진정한 관계란 서로의 기복을 견디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정지우 작가의 책 [사람을 남기는 사람]에서 저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기복을 견딘다는 표현이 결혼기간 나의 역할이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날들의 까칠함과 분노를 견뎌냈던가.
"엄마가 뭘 알아!"
방문을 쾅 닫으며 들어가는 사춘기 중2 아들과 씨름했던 날엔 이미 열린 뚜껑을 이 문장으로 잠재울 수 있었다. 오, 놀랍지 않은가! 사람을 실행하게 만드는 작가의 한 문장이라니. 나는 열이 오른 얼굴을 얼음이 가득 든 망고주스로 잠재우며 아이의 기복을 방치하지 않고, 이해하며 견뎌보기로 결심했다.
부부사이에 후지산 대폭발이 누구에게서 터졌든 둘은 알아채야만 한다. 저 까칠한 표현 뒤엔 허물을 벗고 서 있는 님이 있음을 말이다.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길 거절 말고 얼른 수긍해 주자.
"너 오늘 많이 힘들었구나."
서툰 표현 안에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남편이, 부인이 아니면 누가 알아줄 텐가.
받아주고 속으로 자신을 칭찬하자.
'지랄 맞은 너의 기복을 나 오늘도 잘 버텨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