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대출
"얼마 갚지도 못하겠어."
이사비용과 최소한의 필요가구 구입까지 하고 나니 대출상환금이 생각보다 적다.
"어찌 됐든 이건 빨리 갈아타야 해."
남편은 연신 핸드폰으로 대출정보를 검색하며 말했다.
친절한 자본주의 대출에 입문하고 나면 믿을 구석이 하나 생긴 듯하다. 하지만 또 급한 일이 생겨 은행 앞을 기웃거리게 될 때 그것이 완전한 착각임을 깨닫게 된다. 은행은 정확한 담보나 신용이 없는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돕는 따뜻한 NGO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대출이 안 된다는데.."
"그럼 어쩔 수 없어. 고금리 딱 2달만 쓰고 갚자."
여기저기 문 두드려봐도 방도가 없다면 눈 딱 감고 고금리 대출을 실행시킨다. 딱 두 달만 사용한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세워놓고 말이다. 두 달이라는 목표는 목돈을 굴리는 사업가에게 실현가능한 계획이기도 했다. 그러나 늘 예외상황이 벌어진다는 사실 또한 감안하도록 하자.
"이자 싼 걸로 갈아타야 해. 내가 다시는 이런 거 쓰나 봐라."
은행이 돈을 '창조'하고 그로 인해 자본은 순환된다. 당신이 대출을 받으면 그 순간 통화량이 증가하게 되고 이것은 기업의 투자나 가계의 소비, 즉 국가의 성장동력으로 연결된다고 자본주의가 떠들어대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대가는 '이자'라는 채무로 자신에게 돌아오며, 결국 부는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에게 집중된다.
"어쩌자고 이렇게 이자가 비싼 대출을 해버린 거야."
겁도 없이 대출을 일으킨 우리 탓이지 누구 탓이겠나. 그제야 돈이 급한 것보다 금융 지식이 없는 게 더 무섭다는 걸 깨닫는다. 목구멍이 포도청이 되면 알기 싫던 금융과 대출세계로 자진해서 빠지게 된다. 풍덩
"와, 이런 것도 있네."
남편은 스마트 폰 하나로 은행권 비대면 대출을 모조리 파헤치기 시작했다. 24시간 신청에 몇 분 안에 승인이 나는 구조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클릭하지 말자. 편리함이 위험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대출 브로커라는 게 있네?"
"그거 안전한 거야?"
겁먹지 말자. 내가 잘 몰라도 물어보는 건 공짜다. 처음엔 어버버 하다가 정보가 들어오면 계산기를 두드리면 된다. 자신의 조건에 최적의 금리만 찾자.
"세상에, 전부 몇 명한테 다 넣어둔 거야?"
정신없이 전화가 울려댄다. 이렇게 브러커들이 활약한다는 것은 은행들이 자신의 이익 창출을 위해 공식 창구 대신 시스템의 외주화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자본주의 금융의 민낯이다.
집이 좁아져도 같이 요리해 먹으며, 충분히 잠을 자고, 책을 읽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등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또한 집이 작아도 서로의 취향을 반영하며 자신의 색을 곁들인 집을 꾸밀 수 있다. 상대의 기복을 견디며 화이트 거실장에 건담을 진열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돈이 아예 없다면 말이 달라진다.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중 2단계 안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집과 자금이 필요하다. 안전의 욕구를 위해 축적된 부를 가지지 않은 자는 대출을 친구 삼아야 한다. '빚'으로 미래를 앞당겨 쓰고, 노동으로 갚아나가는 구조지만, 안전한 집과 가정경제가 돌아가게 해주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계산기를 잘 두드리자. 등 따뜻한 집이 있다고 살아가는 일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니 말이다. 망각하지 말자고 사실 나에게 하는 말.
고로 대출 없이 자산을 쌓아가기까지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다양한 대출의 형태를 제대로 파악하여 언제, 어떻게 상환할 것인지의 계획을 세워 실행하자. 악성대출은 기가 차는 이자율이 온 집안을 태워버리기 전에 빠르게 꺼버리자. 아니, 아예 할 생각을 말자.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내며 이사만 온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안 쓰고 안 먹으면 해결될까? 지출의 재정비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빚의 구조를 정복하긴 힘든 노릇이다.
그렇다고 소득이 단번에 늘어날 일도 없기에 이 상태에서 멈춰있는 시간들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
그 시간들을 어떤 계획을 그리며 어떻게 버틸 건지가 관건인지도 모르겠다.
2024년 기준으로 한국의 전체 가구 중 약 54.1%가 금융부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절반 이상의 가구가 대출을 이용한다는 말인데 이들은 모두 부채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대부분은 너보다 나을지 몰라. 너 걱정이나 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