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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별 일 아닌 일이 되는 거 아닐까?

by 하루만

푸른 밤이 내려앉자 이사 온 집의 공기가 달라진다. 별다를 것 없는 아파트 구조덕에 딱히 낯설 것은 없지만 짧아진 복도와 아담한 거실은 밤의 기운을 머금은 채 새초롬한 얼굴을 하고 있다.


"형, 이거 멋지지 않아?"

아이들은 이사 온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각자의 방에서 잠이 드는 게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미 불이 꺼진 방, 싱글매트리스에 나란히 누운 아이들은 액션 피규어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얘들아, 어서 자야지."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의 커다란 괘종이 댕댕거리면서 열두 번을 울렸을 시간이다. 결국 각자 방으로 흩어지지 못한 아이들은 그 좁은 매트리스에서 같이 잠들어버렸다.


혼자 잠들어도 무섭지 말라고 스탠드도 준비했으나 다 무용지물이다.


모두가 잠든 밤 이사는 왔지만 상황이 정리되지 않아 괴로운 나는 창가를 바라보며 식탁에 앉았다.

'어쩌다 내 삶이 이 지경이 된 거야? 얽히고설킨 줄을 끊어낼 수 있을까? 남들이 부를 축적하는 동안 나는 빚을 소유한 꼴이니 과연 이런 상태로 잘 살 수 있을까?'


묵직해진 어둠처럼 머릿속에 움튼 고민들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때였다. 팔짱을 끼고 앉아 한숨을 내쉬던 내 입에서 뜬금없이 어떤 멜로디가 나왔다.

'아, 이 주인공!'




낯선 숲 속에 들어섰더니 무섭고 이상한 일들이 펼쳐진다. 주인공은 별안간 떨어진 나뭇잎뭉치 벼락을 맞고, 연이어 돌에 걸려 넘어지더니 갑자기 치솟아 오른 증기에 깜짝 놀라는 해프닝을 겪는다.

'이게 다 뭐지?'

그는 튀어나올 듯 동그래진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노래를 시작한다.



어른이 돼보면 그땐 알까?

모든 게 다 이해가 될까?

좀 더 철이 들고서 나를 돌아본다면

다 별일 아닌 일이 돼버릴까?




엉뚱하고 코믹한 울라프가 인생중반의 위기에 빠져 떨고 있는 나를 빙의한 듯 진지하게 인생을 논한다.

"나이가 들면 다 괜찮아. 지금 두렵고 떨리는 일들이 그때가 되면 이해가 되겠지."

덜컥하고 떨어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은 나는 울라프에게 고백한다.

"맞아, 울라프. 내가 원래부터 인생을 알았던 건 아니잖아. 이제 배워가는 거야."



울라프!

네 말대로 어른이 되면,

진짜 성숙해지면 그땐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야, 그때는 죽을 것 같았는데 지나 보니 별일 아니네."

"나 무서워 죽는 줄 알았잖아. 숨도 안 쉬어졌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모든 건 다 지나가더라고. 이젠 그 정도 일로는 놀라지도 않아. 살짝 땀이 날 뿐이지."



그래, 이제는 어른이 될 시간이야.



남들이 예습하고 와서 척척 길을 잘 선택해갈 때, 무지한 채로 겁도 없이 아무 데로나 걸어 들어갔으니 후회는 당연한 결괏값이다. 쓴 맛이든, 달달한 맛이든 그동안 쌓인 경험치는 점차 성숙을 통해 어른이 되게 해 줄 것 아닌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금부터는 실수의 폭을 줄여나가자. 차근히 배워나가다 보면 날 벌벌 떨게 했던 일들이 다 별일 아닌 일이 돼버릴 테니까.


'그래도 넌 너무 늦었어.'

다행인 것은 불안이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기본값이라는 것이다. 리가 그 불안을 쌈 싸 먹게 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 순간 올바른 방향 설정과 꾸준한 실행을 하는 수밖에 없다.


조금 늦더라도 그 외에 다른 지름길은 없다.

그러니 울라프 마지막 가사를 기억하고 살아내자.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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