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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트 Oct 12. 2022

아침밥, 그것이 문제로다

오늘의 식탁. 시리얼 


오늘의 식탁. 시리얼 




날씨가 쌀쌀해지니 아침마다 이불에서 나오기가 싫어진다.

5분만 더, 5분만 더, 알람을 끄고 잠이 들기 일쑤. 

에헤이~ 난 엄마야! 



나는 요즘 마흔셋 평생에 가장 게으른 삶을 살고 있다. 불과 몇달전까지 수시로 밤을 새며 일했던 나는, 일을 놓아버림과 동시에 정신줄도 놓아버린것일까,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아니 일어날 의지가 없긴 하다. 왜냐면, 우리 큰애는 스스로 알아서 일어나서 학교를 잘 가기 때문이다. 학생이 스스로 일어나서 학교에 시간 맞워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것도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기특해하기로 했다.


사실 우리 아가씨네 딸은, 우리 큰애보다 어린데도 공부를 잘해서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에 부글부글 뱃속이 끓을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뭐 영어 점수가 외국 몇학년 수준이라더라 (잘한다는 얘기), 수학 진도가 지금 어디를 나가는데 학원에서도 일등이라나 (잘한다는 얘기), 단순히 축하해주고 같이 기뻐해주면 되는 일인데 그럴때마다 이상하게도 우리 애와 비교하는 마음이 들며 속상해지는 거다. 영어나 수학 둘 중 하나만 잘 하기도 힘든데 어쩜 그럴까 부럽기도 하고, 우리 애는 딱히 자랑할 게 없어 기가 죽기도 하고, 내가 잘 뒷받침을 못해줘서 그런가 속상하기도 하고, 뭐 그런 복잡한 기분. 


하루는 둘째가 이런 내 기분을 알아채고는 이렇게 말하는 거다. "엄마! 엄마도 언니 자랑해!"

"그래? 근데 자랑할 게 없어." "아닌데? 언니 자랑할 거 많은데?" 

그래, 우리 큰애가 착하긴 해. 엄마 생각도 많이 해 주지. 교우관계도 괜찮은 거 같고. 성격이 모나지 않았어. 긍정적인 편인가...? 그런데 이런 모호하고 비교 대상이 없는, 한마디로 증거능력 부족의 장점을 어떻게 자랑한단 말인가. 

  

그러다가 발견했다. 우리 딸의 장점. 아침에 스스로 잘 일어나서 학교에 잘 간다! 내가 깨우지 않아도 일찌감치 일어나서 한시간동안 뭐하는지 모르겠지만 한시간이나 화장실에서 씻고 (그닥 달라진 건 없는 모습이지만) 교복을 챙겨 입고, 가방 챙겨 스스로 학교에 간다. 난 그저 이불속에 누워 있다가, "엄마 학교갔다올게요!" 하는 소리에 입만 달싹여서 "잘 다녀와~" 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다. 이건 나에게 어마어마한 장점이고 정말 편한 아침이긴 한데, 이걸 자랑하자니 내 흉이 되는 것만 같은 기분? 이런 얘길 아가씨에게 하면 어머니 귀에 들어가고 나는 혼날지도 몰라. 혼내시는 분이 아니시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걸, 난 혼나고 말거야. 


어쨌든 그날 이후로 나는 우리 큰애를 마음속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 학교에도 잘가는 기특하고 이쁜 내새끼. 오구오구...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아침을 먹이지 않고 있다는 죄책감과 불안감이 밀려온다. 아침을 먹어야 뇌에 영양공급이 돼서 공부를 잘한다는데, 수능 보는 날까지 이제 몇년 안남았는데 아침을 먹는 습관을 들여야 되는 거 아닐까. 


변명을 하자면, 우리 큰애는 아빠를 쏙 빼닮아서 아침을 먹으면 배가 아프고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학교에서 그러기 싫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배아픈 유전자를 물려준 우리 남편으로 말하자면, 신혼때 아침먹고 출근길에 화장실에 달려가는 곤란을 몇 번 겪은 후로 아침을 먹지 않고 있다. 자신은 원래 아침을 안먹었고 내 노력이 가상해 먹으려 해봤지만 배아프고 화장실만 달려갈 뿐이라는 거다. 이제는 남편에게는 아침에 먹어야 하는 약과 영양제, 들고 나갈 음료 정도만 챙겨주는 편이다. 그리고 우리 큰애도 아침을 먹지 않는 건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둘째의 아침도 이제는 대강 대강이 되어버렸다. 주로 먹는 것은 시리얼이다. 초코맛이 나는 시리얼 몇 종류에 냉동 블루베리나 체리를 섞고 단백질파우더를 넣어주는 아침. 사실 맛은 있다. 하지만 죄책감은 씻을 수가 없다. 


내가 어릴땐 하루도 아침을 거른 적이 없었다. 아침이면 부엌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칼질 소리, 보글보글 국이 끓는 소리에 눈을 떴고, 냄새에 홀린듯이 식탁에 앉아 눈도 다 못뜬 채로 아침부터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난 그렇게 호사를 누리며 자라놓고 내 애들에게는 아침도 안주다니. 우리 엄마가 알았다간 난리 날 얘기다. 우리 엄마는 늘 아침을 먹어야 건강하다, 아침을 먹어야 머리가 돌아간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젯밤까지만 해도,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야지 하고 알람을 맞췄던 난, 오늘 아침에도 이불 밖에 나가기 싫어 자는 둘째를 끌어안고 버티다 마지못해 일어났다. 마흔 셋, 애 둘 엄마가 이렇게 철이 안들어서야.... 

엄마 난 왜이러지? 엄마는 태어날때부터 엄마였던 사람같아. 난 불량엄마고.

근데 엄마, 시리얼에 우유먹고 영양제도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




오늘의 식탁, 시리얼. 맛있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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