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애정결핍'에서 '애정과다'시대로

- 가족의 역사에 잘못은 없다

by 생쥐양

1. 애정결핍 시대

최근의 TV 프로그램 콘텐츠를 보자면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고민상담'을 다루면서 연애, 가족, 이혼, 육아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해결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이 어떠했냐"는 질문에 자주 등장하는 대답은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해서..."이다. 부모님의 이혼, 왕따, 경제적 문제 등 사연은 다르지만 '애정'이라는 원인은 어디든 따라붙는 것 같다.


나도 어렴풋이 기억나건대, 7살 무렵부터 우리 집이 '화목한 가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화목한 가정'이 어떤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지만, 분위기가 그러했다. 늘 혼자서 바쁘신 엄마, 늘 혼자서 즐거우신 아빠 사이에서 장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족의 평화를 위해 앞장서는 것이었다. 받아쓰기 100점 받아서 엄마 기쁘게 해 드리기, 아빠가 퇴근하고 오면 살갑게 맞아주기, 식탁에 앉아 밥 먹으며 재미있는 이야기 하기 등 어릴 때부터 20대가 되기까지 나의 역할은 이어졌는데, 21살이 되던 해 두 분은 이혼하셨고 그렇게 나는 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길고 긴 가족의 역사에 얽혀버린 지금의 나의 성격과 행동, 인간관계 등에 대해 때로는 억울했고 하염없이 슬플 때도, 화가 날 때도 있었다.


언젠가 한번, 6남매이신 엄마에게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사랑 많이 받고 자랐어?"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60대가 되신 엄마는 "우리 때 사랑받고 말고 할게 어디 있었겠어, 그때는 먹고살기 바쁘고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때 내가 못 받은 거 너희한테도 못 줬으니 이 나이 되어 그렇게 손주들이 귀하고 이쁜가 보다" 라며 아쉬움이 가득 담긴 한숨을 내뱉으신다.


이 세상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충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될까. 비근한 예로, 우리 부모님 세대는 사춘기가 되기도 전에 가장이 되고 열식 구 이상의 생존을 책임져야 했다. 상처로 치자면 이보다 더 큰 상처가 있을까. 하지만 거꾸로 그래서 더 자립적이 되었고 삶에 대한 자긍심 또한 높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by 고미숙>


유년기 시절의 결핍이 현재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열쇠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어린 시절에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더라면',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더라면' 내가 훨씬 괜찮은 사람으로서 직업도 결혼도 인간관계도 성공했을 거라고 안타까워했다. 과연 진짜 문제는 '애정결핍'이었을까?


2. 애정과다 시대

워킹맘은 '주말'을 활용하여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전업맘은 '엄마표'놀이에 문화센터 등을 활용한 '체험학습'을 하며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물론 엄마들의 체력과 경제적 상황, 직업 여부 등을 고려하여 육아를 하고 있겠지만 워킹맘이건 전업맘이건, 맞벌이 건 외벌이 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 세대는 사회적 배려는 물론이고, 부모와의 관계 또한 훨씬 밀착된 편이다. 그런데도 상처가 끊임없이 파생된다면 그건 객관적인 정황이기보다는 '정서적 배치의 산물'에 가깝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by 고미숙>


그래서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들을 보면 발걸음이 멈추게 되고, '누가 더 아이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경쟁이라도 하듯이 SNS에 올려대는 사진을 보면 심장이 멈추게 된다. 즐겁고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약이 오르기도 했다. 나는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는 여건 하에서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한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그 의심을 비우기 위해 내가 선택한 건 '더 많은 사랑'을 주는 거였다.


우연히 반려견과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개는 훌륭하다'라는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훈련사 강형욱 님은 문제행동을 보이는 반려견 중 '애정결핍'이 있는 애들보다 '애정과다'인 애들을 훈련시키는 게 더 힘들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보호자와의 서열에도 문제가 생겨 소파나 침대 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심하면 무는 행동도 한다고 했다. 보호자에게 해주는 훈련사의 조언은 딱 한마디였다. "최대한 반려견에게 관심을 주지 말 것"


그렇다면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가 '애정이 지나쳐서' 문제가 일어난다면, 그 해답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이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것"


3. 기억의 오류

사실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도 복기(復棋, 체육 바둑에서, 한 번 두고 난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하여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 봄)가 어려운데, 30년도 더 된 유년기 시절의 기억을 그대로 관찰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지금 기억하는 그 시절의 결핍은 조금은 과장되고, 조금은 거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은 말과 행동이 있지만, 분명 행복했고 화목했던 순간들도 있었을 건데 그런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매우 슬픈 일인 것 같다.


기억은 내가 보기에 모든 클루지의 어머니, 단일 요인으로는 인간의 인지적 기벽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한편으로 대단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우리를 실망시킨다. 우리는 몇십 년 전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 실린 사진들을 알아보기도 하지만, 어제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도무지 기억하지 못하라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기억은 왜곡되기도 하고 융합되기도 하며 그냥 맞지 않을 때도 있다.

<클루지> by 개리 마커스


이럴 때는 기억의 조각을 맞추려 애쓰기보다는 부모님에 대한 나의 '느낌'을 떠올려 본다. 애틋하고, 안쓰럽고, 서먹하기도 하지만 따뜻하고 감사한 기분도 든다. 즉 애정의 결핍(缺乏)과 과다(過多)공존했던 나의 가족의 역사에는 누구의 잘못도 없다. 잘못된 기억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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