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어디가?
신혼부부 때에는 19평에 살면서 방이 두 개였는데 침실을 제외하고 남은 방은 옷방 겸 창고였다. 출산 후 첫 아이가 생기자 방이 세 개인 곳으로 이사를 갔는데 역시나 침실과 아이방을 제외한 남은 방은 옷방 겸 창고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가 셋으로 늘어나자 집의 구조가 점점 이상해졌다. 거실도 아이 들 거, 제일 넓은 방도 아이들 차지가 되었고 유행 따라 놀이방까지 만들어주고 나니 내가 유일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곳은 '식탁'이었다. 밥 먹을 때도, 쉴 때도, 독서할 때도 식탁의 가장자리는 그렇게 나와 한 몸이 되어갔다. 그런데 우리 집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옆집 언니도, 앞집 언니도 집의 주인은 아이들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내 방이 생겼던 나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요즘 아이들은 공부방, 놀이방, 책방이라 불리는 방들을 소유하는 걸 보니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인 나도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부터 방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의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씨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되뇌며 일주일간 버리고, 나누고, 버리고, 나누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방 한 구석에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나와 신랑은 결혼한 지 7년 만에 각자의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삶에 방은 두 개 이상이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가진 다른 영역이 서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나 역시 말 붙이기도 조심스러운 사춘기 딸과 영 내 맘 같지 않은 남편에게 실망이 느껴질 때면 바깥사람들과 만나 일하며 생기를 회복한다. 반대로 냉정한 일터에서 난타당하고 온 날은 '그래도 내 편'인 가족의 따뜻함에 힘을 얻는다.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 by 남인숙
우리 부부는 주말에 '교대 육아'를 하는데 각자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우린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엄마, 어디가?" "응, 엄마방에"
내가 '엄마방'으로 들어온 순간 '엄마'모드에서 '나'라는 사람의 삶으로 바뀌게 된다. 낮잠 한 숨 자더라도, 영화 한 편 보더라도, 책 몇 장 읽더라도 다른 에너지를 채울 수 있어서 문을 열고 다시 엄마의 삶에 뛰어들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요새는 'MBTI'검사가 대세인데, 기본적인 나의 기질은 '내성적'이다. 하지만 꾸준히 '외향적'인 기질을 사용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외향적인 친구와 친해지려 애쓰거나, 여러 사람들을 만나려고 모임,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찾아오면 늘 공허함을 느꼈었다. 외부에 모든 에너지를 쓰다 보니 정작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이런 '외향적' 습관은 출산 후에도 이어졌는데 나만의 공간이 생기자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즉 본래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지극히 혼자 있는 걸 좋아했던 내가, 홀로 채워진 시간으로 문 밖에 있는 세상과 연결을 시도했다.
혼자가 되는 기회를 자주 갖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없다. 가족 구성원 중에 자신의 방을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이런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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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간단하게 말하면, 자신만의 방이다. 즉,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면 시각적으로 그리고 청각적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개인적인 장소이다.
<패턴 랭귀지> by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사라 이시가와, 머레이 실버스타인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의 삶은 회사에 있건 집에 있건 모든 관심사가 '아이'에게 쏠리게 된다. 대화의 주제도, 소비의 주제도, 그 어떤 것에도 말이다. 그러니 더더욱 우리는 나만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공간의 주체가 면적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당신이 서 있는 그곳은 당신만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