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

- 살면서 한 번은 지나쳐야 하는 곳

by 생쥐양

1. 체험의 늪

요새는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려는 부모가 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도 '체험학습'을 많이 반영하는 분위기인데, 이는 자연스레 하나의 아이템으로 이목을 끌기도 한다. 주말농장, 딸기체험, 동물체험, 쿠키체험 등 이색적이고 오감발달에 탁월한 것들이 넘쳐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상으로 '창의성'을 꼽는데 이를 발달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유년기부터 다양한 경험을 통한 스펙을 쌓아가고 있는 듯싶다. 그렇다면 체험과 경험의 차이는 무엇일까?


체험(體驗) : 자기가 몸소 겪음, 또는 그런 경험
경험(經驗) :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


체험(體驗)에서 쓰이는 체(體)는 '몸체'자로 '몸, 신체'를 뜻하며 경험(經驗)에서 쓰이는 경(經)은 '지날 경'자로 '지나다, 통과하다, 다스리다'는 뜻으로 쓰인다.


토론이건 체험학습이건 그것이 강도 높은 학습의 과정이 되려면 고도의 훈련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토론을 통해 자기 생각을 바꾸겠다는 치열한 의지도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아주 유치한 수준에서 헛바퀴만 돌 따름이다.

-생략-

체험학습 역시 마찬가지다. 여행과 수련회 등 갖가지 다양한 체험을 한다고 해서 저절로 창의적 사고를 하게 되는 건 아니다. 개나 소나 다 해외여행을 하는 마당에 여행 자체가 뭔 의미가 있겠는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by 고미숙


중요한 건 다양한 경험을 해봤냐, 안 해봤냐가 아니라 황금 같은 주말 시간에 차 막히고, 돈 들이고, 체력을 써가며 아이와 했던 활동을 통해 "어떤 질문이 생겼고", "어떤 호기심이 생겼고", "어떤 답을 얻는 기회가 됐느냐"하는 것이다.


"아이가 즐거웠으면 되지, 무슨 질문이 생기고, 무슨 답이 필요하다는 거야?"라고 반감을 드러낼 수도 있다. 늘 체험활동을 할 때마다 '질문'을 가지고 가라는 말이 아니다.

"주말이니까",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하니까", "후기가 좋아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와 같은 이유로 서핑보드 위에 올라타지 말자는 거다. 어쩌면 아이는 편하게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나와 놀이터 앞에 열린 이름 모를 열매 따기에 웃음이 나고, 지나가는 길고양이 한 마리를 보며 좋아서 소리를 지르고, 떨어진 나뭇잎을 모으며 요리놀이를 하고 싶을지 모른다.


체험은 아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을 만큼 해봐야 질문이 생기는 것 같다. "엄마, 그런데 개미는 어디에 살아?" 한참을 놀이터에 주저앉아 개미를 바라보던 아이가 내뱉는 질문에, 아이의 진짜 체험은 시작될 것이다.


2. 유행을 좇다

경제학 용어 중 유행에 따라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현상을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라 불린다. 금광 발견 소문이 나면 요란한 음악을 연주해 사람들을 이끌고 간다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나는 육아에도 소위 유행하는 '밴드왜건' 현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표 놀이', '책 육아'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아이가 4살 무렵에 '아동 심리'에 대한 중요성이 화두에 오르며 관심이 높아졌는데, 나 또한 유행에 발맞춰 지자체에서 지원해주는 '아동심리 미술치료'수업을 받게 되었다. 주 1회 1시간 동안, 세명의 아이를 선생님이 놀이중심의 수업으로 심리를 파악한 후 부모님께 피드백을 주는 거였는데 나의 기대감은 상당하였다. 그렇게 세 번째 수업에 참가한 후, 선생님은 나에게 "어머님, 오늘은 모래놀이를 하였는데 아이가 공격적 성향이 있네요. 집에서도 혹시 그런 경향이 있나요?"라고 물으셨다. "공격성이요? 글쎄요... 왜요?" 당황하는 내 모습에 선생님은 "보통은 모래놀이를 할 때 모래를 뿌리는 행동을 하진 않거든요. 그런데 오늘 수업 시간에 모래판 위에 세워놓은 공룡 인형들 위로 모래를 뿌리더라고요."


집에 돌아온 후로도 오랫동안 '공격성', '보통은'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미행이라도 하듯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으로 계속 따라다니며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진 않는지' 유심히 쫓아다녔다. 아이가 화가 나서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하면 '저봐, 공격적인 성향이 있네', 누나랑 다투기라도 하면 '이게 공격적인 성향인 건가?' 라며 끊임없이 나를 옭아맸다.


3.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

"경험의 직접성 원칙"
피다한 사람들의 진술문에는 지금 말하는 '순간'과 말하는 사람의 '경험'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주장만을 담을 수 있다. 이러한 경험에는 화자가 직접 경험한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도 모두 포함된다.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by 다니엘 에버렛

나는 여러 날 동안 아이를 관찰하고 다양한 책들을 읽어가며 세 번째 수업 후 아동심리 선생님께 들었던 피드백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아이가 모래놀이 수업시간에 모래판 위에 있는 인형들에게 모래를 뿌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내 아이는 형제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즉 '공격성'이라는 판단에서 '모래를 뿌렸던' 객관적인 사실로, '보통은'이라는 전체의 시간에서 '지금 이 순간'인 현재에 집중해 보기로 한 것이다.


피다한 사람들은 음식을 저장하지 않으며, 오늘 하루 이상의 시간에 대해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또한 먼 미래나 먼 과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지금', 그러니까 직접적인 경험에 초점을 맞춘 결과로 여겨졌다.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by 다니엘 에버렛


내 아이를 감싸지 않고,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기 위해 내가 찾아낸 해결책은 '경험의 직접성 원칙'이었다.


부모 자식 간이든, 교우관계든, 직장 내 건 모든 관계에서의 '불통'을 '소통'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이 원칙으로 정글 숲을 지나가 보면 어떨까? '~카더라' 통신망이 들끊는 악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생존하게 될 당신의 자유를 위하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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