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다

-어느 고등학생의 꿈

by 생쥐양

1. 장래희망을 쓰다

어릴 때부터 학교 숙제로 매번 제출했던, '장래희망'란에 부모님과 나는 모두 '선생님'이라고 썼다. 다행히 "왜?"라는 질문은 없었기에 내가 왜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도 짝꿍도 그러하듯, 대부분의 여학생들의 장래희망은 선생님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교단 위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또한 선생님의 말 한마디로 반에서 제일가는 개구쟁이 녀석을 꼼작 없이 만들고, 학부모 면담 때가 되면 엄마가 장롱에 고이 모셔둔 정장을 차려입고 오시는 걸 보면서 '선생님'만 되면 말과 행동에 힘이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았나 보다.



2. 장래희망을 말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학교에서는 장래희망을 쓰라고 요구했다. 여전히 '왜'라는 질문이 없어 '선생님'이라고 습관처럼 쓰고 있는데, 친구 녀석이 "나는 가수 남편을 만나 애는 둘을 낳는 현모양처가 될 거야"라고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고선 "너는 이다음에 선생님이 되고 나서, 애는 몇 명 낳을 거야?"라며 신박한 질문을 내던졌다.


"음... 나는 애 셋 낳을 거야" 그때나 지금이나 형제자매가 셋인 집이 흔하지 않았던 터라,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던 비밀스러운 나의 바람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날 이후, 반에서 나는 '삼 남매 엄마'가 장래희망인 친구로 기억되었다.


어떻게 보면, 학창 시절 12년 동안 글로 써냈던 '선생님'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말로 내뱉었던 '삼 남매 엄마'의 꿈은 이룬 셈이다.


심리학 용어 중 몸과 마음을 바꾸는 습관적인 말을 심층 언어(각인효과)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속담으로 '말이 씨가 된다'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즉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 가장 먼저 귀가 듣고, 이를 뇌에서 명령을 내려 몸이 이에 반응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아마도 내가 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과 정신의 상태는 장래희망을 내뱉었던 그 순간부터가 아녔을까? 싶기도 하다.


3. 엄마는 아이의 첫 선생님이다

아이를 키우게 되면 위험한 물건에 대해 알려주고, 걸음마와 배변훈련 등 아이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가르쳐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즉 엄마로서 선생님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사제지간(師弟之間)'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말 그대로 스승과 제자 사이라는 뜻인데,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관계야 말로 인생에서의 큰 복 중 하나일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좋은 스승을 만나면 인생이 180도 바뀌는데 1000일이 아니라 10 년인들 못하겠는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by 고미숙


생각해보면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주는 건, 먹고 일어서고 말하기 등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배워나갈 수 있는 것들이지만 아이가 나에게 가르쳐주는 건,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울며, 있는 그대로의 부모를 사랑하고, 조건 없이 무언가에 빠져보는 몰입의 경험들이다.


어른이 돼보니 기쁠 때가 언제인지 모르고, 슬프면 이겨내는 법을 터득하고, 조건이 괜찮은 사람을 사랑하고, 요리와 청소를 동시에 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기술만 늘어났다.

그래서 내가 어른이니까, 살아온 경험이 많으니까 아이보다 더 많이 알 거라고 착각했던 순간들에 아이가 내뱉는 말과 행동을 겸허히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인생에서 첫 선생님으로 서로를 만나게 된 거라면, 그저 아이를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배워나가는 관계로서 사제지간이 되고 싶다. 결국 내가 ' 이 아이'를 만나게 된 것도, 이 아이가 '나라는 엄마'를 만나게 된 것도 서로에게 배울 것이 있어서라고 믿기 때문이다.


4. 신은 공평하다

나는 특별한 재능도 없고 내세울 경력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평범한 사람이다. 학창 시절 내내 개근상을 받았는데, 학교 수업에 참여하는 것 외에는 어떤 재능도 없다고 인정해주는 '노력상' 정도로 여겨졌다. 그래서 대학을 진학할 때와 취업을 할 때 써야만 하는 자기소개서가 나에겐 유달리 어려운 과제였다. 특히 '취미, 특기'란을 작성할 때면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어서 늘 '독서'와 '음악 감상'이라고 쓰곤 했다.


하지만 누군가 그랬다. 신은 공평하다고


나에게 꽤 괜찮은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출산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나는 세 아이 모두 '아이가 곧 나올 것 같다'는 나의 '직관'만으로 병원에 직접 찾아가 길게는 3시간, 짧게는 1시간 만에 자연 분만하였다.

첫째를 출산할 때는 "어? 오늘 아이가 나올 것 같은데?"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고, 둘째 때는 "이거다" 했다가, 셋째는 "왔다. 왔어"하며 미리 싸놓았던 조리원 준비물이 든 캐리어도 직접 끌며 병원을 향했다.


세 아이를 모두 출산하고 나서 "신이 나에게 주신 재능은, 건강하게 내 몸과 아이를 지키는 모성애"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학창 시절, 학교만 열심히 다녔던 나의 성실함을 스스로 칭찬해주게 되었다. 재능이 없이 자랐기에 분만을 잘하고, 애 키우는 걸 좋아하는 내 모습이 특별한 취미이자 특기로 보였기 때문이다.


5. 서핑 육아

이처럼 서핑 육아를 하는데 가장 필요한 건 '엄마의 직관'이다.


* 국어사전 상 '직관'이란,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알아냄"

사실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것보다 그 과정이 워낙 빨라서 미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판단해 내는 것이다. 즉 과거의 경험과 지식, 분석, 추론 능력이 어우러져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판단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순간적인 판단력과 이해력, 통찰력 등과 유사한 개념이라 생각하면 된다.


즉 우리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족, 친인척, 옆집 엄마, 전문가, 선생님 등 주변의 조언과 충고에 의해서가 아니라, 엄마 자신의 직관을 '믿고 따라보자'는 것이 서핑 육아의 핵심이다. 물론 이는 외롭고 불안할 수 있다. 서핑보드 위에 두 발을 딛고 서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도를 타봐야만 알게 되듯이, 육아도 직접 해봐야만 알게 된다. 그저 주의 깊게 관찰하고, 시도해보고, 실패해보고, 적용해본다는 마음가짐만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 파도를 탈 때마다 이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길 바란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싶다"


말이 씨가 되는 경험을 우리가 함께 누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