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미성숙한 어른이야기 - 둘
나는 죽음을 떠올리면 눈물이 흐른다. 실제로 내가 겪음 죽음의 경험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가는 상상만으로 슬픔의 감정이 올라온다. 나를 눈물짓게 하는 이들은 아이들, 남편, 부모님, 형제들이다. 곧 나의 가족들이다.
'꽃밭에서'라는 정훈희 씨의 노래를 듣다 보면 내가 직접 보지 못한 엄마의 꽃처럼 아름다웠을 20대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흐른다. '댄싱퀸(Dancing Queen)' 노래의 한국어버전 "넌 멋진 댄싱퀸, 어리고 예쁜 열입곱 댄싱퀸, 신나게 춤춰봐, 인생은 멋진 거야" 가사 속 아이들의 10대 모습이 그려져 벅차올라 또 눈물이 흐른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는 내가 먼저 떠나 영정사진을 보고 흐느껴 울고 있을 남편의 뒷모습이 떠올라 내 눈물샘을 그토록 자극한다.
이처럼 나에게 죽음은 지나가버린 과거의 조각과 예측되지 않은 미래의 조각을 미완성한 채 삶을 완성시키는 작품과도 같은 일이다. 이렇게 글로 끄적거려 보면 꽤나 멋진 작업 같지만 실제로 내가 겪고 있는 삶의 현장은 꽤나 두렵고 무겁기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죽음 자체를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고된 삶에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가 들어올 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 아니다, 사실 그를 밀어냈었다. '네가 아직 낄 자리가 아니야. 아직 멀었어. 조금 더 있다 들어와' 하며 애써 눈물을 닦고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두근대는 심장을 어루만졌다.
그러다 간간이 들려오는 갑작스러운 죽음의 소식들을 (나와 비슷한 나이에 떠나버린 사람들, 내가 따뜻한 집에서 타자나 두드리고 있을 때 전쟁의 한복판에서 차가운 죽음의 현장에 놓여있는 사람들) 마주하지 않으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껍데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하였다.
지금 이 순간, 그와 눈을 마주치며 따뜻하게 마주 앉아있지 못한 채로 두 번째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사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마주한 두 번째 죽음은 무엇인가요? 꼭 시기별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내 마음의 크기로 떠올려보세요"
마음의 크기로 떠올려보니 첫 번째 '외할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최근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외할머니는 아흔이 다 된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요양병원에서 갑자기 생을 마감하셨기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뱉는 숨을 보거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한 가족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를 포함한 외삼촌들은 외할머니가 곁에 아무도 없이 외로이 떠난 것에 대한 가슴 절절함을 여전히 토해내고 있다. 실신할 듯이 목놓아서 "엄마, 내가 미안해. 엄마, 너무 사랑해. 엄마... 엄마.... 엄마.... 보고 싶어"라고 우는 엄마를 부축하며 걸어갔던 길, 외할머니 관 위에 모든 가족이 손을 얹고 하고 싶은 말을 전하던 순간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본 적 없던 막내 외삼촌이 "어머니... 어머니... 저예요 막둥이... 어머니..."라며 이미 코와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로 손을 떨던 모습이 나에겐 진하게 남아있다.
가족들의 모습 이외에 나에게 그녀의 죽음이 크게 남아있는 이유는 또 있었다. 나는 3년간의 고시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외할머니께 용돈을 받았다. 본인이 아들내미들에게 받았던 용돈을 고대로 손녀인 나에게 전해주며 "공부도 밥심이니께 밥 굶지 말고" 하며 행여 누가 볼까 봐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 돌돌 말아 넣어주시곤 했었다. 다 큰 성인이 용돈 한번 드리지 못할망정 용돈을 받아야 되니 그 마음이 참으로 비참하고 씁쓸했지만 못내 받아와야 하는 내 처지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고시생활을 마치고 어렵게 합격하여 취업에 성공했을 때 나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는 "외할머니께 안마의자 사드리기"였다. 오랜 세월 농사일을 하신 탓에 몸 이곳저곳 아프지 않으신 곳이 없으셨기에 내가 건강을 챙겨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내가 얼마나 치사한 사람인지 이제야 고백해 본다.
나는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매달 받는 120만 원의 월급은 나를 치장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연애하는데 쓰기에도 부족했다. 그동안 고시생활 하면서 입었던 후줄근한 옷들은 벗어던지고, 옷들을 새로 장만하고 그에 맞는 구두와 가방은 색깔별로 계절별로 옷장에 전시해 두었다. 그러다 보니 버킷리스트 1번은 점점 '그래, 어차피 사드린다고 약속한 건 아니잖아. 월급이 조금 더 늘면 그때 사드리면 되지.' 희미해져 갔고 결국 지워졌다. 하지만 기억에서만큼은 내 마음 한편에는 뚜렷이 남아있었다. "배은망덕한 년"이라고.
두 번째 질문은 "그 죽음으로 인해 생긴 판단과 생각은 어떤 것일까요?"
외할머니의 외로운 죽음, 그로 인해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으로 얼룩진 가족들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해야 된다. 그러니 부모님한테 효도해야 한다"라는 믿음이 생겼다.
나는 주변에서 부모님에게 존댓말을 쓰거나 부모님께 효도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들에게 경외심을 가지게 됐고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과 말을 신뢰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하는 효도는 용돈을 드리거나 여행을 보내드리거나 가족과 같은 시간을 보내는 거였는데 나는 지금껏 부모님께 그러하질 못했다. 내가 출산과 동시에 일을 쉬면서 8년째 외벌이로 살면서 세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다섯 가족 생활비로도 빠듯하다는 이유로, 부모님 용돈이나 여행경비 등을 드려본 적이 없다. 경제적으론 그렇다 치고,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거나 예쁜 말을 쓰는 건 왜 못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숨이 턱 막힌다.
한 마디로 '물질'로 하는 효도만이 대단하고 진정한 효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직접 찾아뵙거나 전화를 드리면서도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는데, 난 '안마의자기 사드리기'라는 물질로 효도를 대신하려 했고 그걸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스스로를 비난했다. 지금도 살아계신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자주 드리거나,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면서 충분히 효도를 할 수 있음에도 '나는 남들처럼 용돈을 드린 적도 없고, 여행은 무슨...' 하며 자꾸 물질로 무언가를 하지 못했음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내가 경외심을 가진 그들의 효도는 '물질'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왜 사랑의 표현을 물질로 하려는 건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효도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니 무궁무진했다. 편지로 마음 전달하기, 문자로 사랑한다고 표현하기, 전화로 안부 전하기, 예쁜 풍경 찍어서 사진 보내기,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저녁 먹기, 도시락 싸서 공원에 놀러 가기, 반찬 만들어서 갖다 드리기, 병원 가실 때 같이 가드리기
세 번째 질문 "우리는 ~해야 한다라는 의무의 에너지가 있을 때 힘이 들어갑니다. 그런 에너지를 느낀 적이 있나요?"
나의 경우,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해야 한다'는 의무의 에너지가 있는데 무의식 중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길 바라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내가 일을 쉬고 너희를 돌보고 있으니, 엄마인 나에게 잘해야지", 남편한테는 "내가 아이들한테 열심히 육아하는 것처럼, 당신도 나처럼 육아해야지"
하지만 나와는 다른 타인들이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애초에 불가한 일들이었다. 그 불가한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해야 한다는 에너지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그들과 나는 매 순간 충돌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어른인 남편과는 말다툼하면 끝날일이지만, 어린아이들은 엄마의 그런 무의식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거기서 '착한 아이'가 탄생한 것이다. '엄마 기분을 망치지 말아야지, 엄마한테 이쁨 받아야지, 엄마한테 잘해야지'라며 끊임없이 자아가 독립할 수 없게 만드는 나의 무의식은 그렇게 대물림되고 있었다. 착한 아이로 수십 년간을 살아왔던 어른아이는 그렇게 착한 아이를 배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온몸에 힘이 빠졌다. 힘을 주며 살던 내가 힘이 빠지던 순간 자유로웠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순간 우리는 가장 편안하고 나답게 살 수 있다는 걸 가슴이 찢어질 만큼 아파봐야 알게 되나 보다.
두 번째 죽음에 대한 나의 고백을 써 내려가면서 마음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마주해야 되는 진실을 용기 내어 들여다보니 힘이 생겼다. 여전히 나는 이 글을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뛰어들어가면, 계속 발동되는 무의식의 에너지를 쓰느라 자책과 후회로 얼룩지겠지만 내가 살아낸 세월의 힘은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러니 다음수업의 죽음 속 이야기에 나의 어떤 모습이 빛을 드리울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