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 다이어리

1.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미성숙한 어른이야기-하나

by 생쥐양

11월을 맞아 새로 신청한 강의 주제는 '죽음'이었다. 온라인으로 10주간에 걸쳐 진행되는 과정이었는데, 나에겐 11월과 죽음은 서로 연결되어 생각되는 이미지였다.


절기상 11월은 겨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제 겨울은 더 이상 나에게 하얀색 눈으로 덮인 동화 같은 이야기의 천진난만한 색이 아니다. 이 시기의 모든 숲의 색들이 자기 본연의 옷들을 벗어던지고 바람을 맞으며 버티려는 의지 없이 몸을 내맡기다 보니 태초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겨울의 색은 무엇일까? 잠시 고민해 보았다. 고민의 시간 동안 신기한 경험을 하였다. 나에게 사계절의 색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봄은 초록색, 여름은 파란색, 가을은 빨간색, 겨울은 하얀색. 아마 누군가가 "겨울 하면 검은색이지"라고 이야기했더라면 속으로 그를 노려보았을 것이다. 잠시 고민의 답을 뒤로하고 강의로 넘어가 보자면,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당신이 경험한 첫 번째 죽음의 경험이 무엇이었나요?"라고 물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내가 경험한... 내가 경험한... 첫 번째...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던 외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외할아버지는 동네이장이셨고 젊은 나이에 간에 이상이 생기셔서 생을 마감하셨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장례식은 할아버지 앞마당에 커다랗고 하얀 천을 지붕 삼아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술을 마시고 화투를 치며 음식을 나르기 바빴던 외숙모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한 마디로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어렴풋이 한쪽에서 훌쩍거리는 엄마의 모습이 간헐적으로 생각나긴 하지만 20년도 더 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질문은 "외할아버지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였나요?"였다. 나는 외할아버지 댁에 가는 걸 꺼려했었다. 담배를 많이 피우시느라 까맣게 그을린 얼굴, 나더러 "아이고 야... 야... 이제 다... 다.. 커.. 다... 할.. 할.. 할아버지가 뭐... 사.. 사.. 줄까야?" 하며 더듬는 말투, 얼굴 중앙에 커다랗게 나 있는 점 하나가 눈에 거슬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에게 말을 걸며 관심을 표하는 외할아버지는 귀찮은 존재였다. 그렇게 좋았던 기억 하나 떠오르는 게 없는 외할아버지와 손녀의 관계는 더 이상 추억 하나 쌓아 올리지 못한 채 끝이 났다. 마치 이 사계절의 겨울이 한 해를 끝마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떠올려보는 그의 죽음은 후회와 죄송함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질문 "그 첫 번째 죽음이 당신의 삶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후회와 죄송함으로 번벅진 마음 한편에는 '죽으면 끝이구나. 후회하지 않게 살아야겠구나'라는 뿌리가 생겨났다. 후회하지 않게 산다는 건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거였다. 한마디로 내가 가진 에너지를 바닥 끝까지 사용하며 살았었다. 연애를 할 때에도, 육아를 하면서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좌우명은 슬금슬금 나를 건드렸다. 더 큰 문제는 내가 그렇게 애쓰며 살기에 가볍고 편하게 사는 이들을 보면 불편한 것이다. 특히 남편이 그러하였다. 일 끝나고 집에 와서 쉬고 싶어 하는 남편을 보면 '이제 육아해야지! 두 시간만 놀아주는 게 그렇게 힘든가? 나는 지금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종일 애들이랑 노는데!' 하는 불만들이 올라왔고 그 마음은 당연히 부부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사실 조금 느슨하게 편하게 가볍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그런 마음을 채찍질이라도 하는 것 마냥 나를 일으켜 세웠고 뭐라도 하게 끔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다. "그래도 네가 그만큼 했으니까 좋은 대학도 가고, 취업도 잘하고, 애도 잘 키우고 있는 거야"라고 말이다. 내 부모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그래, 네가 애쓰며 사느라 힘들었겠다. 근데 그냥 가볍게 살아도 돼. 이젠 그렇게 살아"라고 이야기해 주는 이가 없었다. 아마도 그들도 그런 위로와 공감을 받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남들에게도 건네지 못하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라고 하지 않던가. 사랑도 받아본 놈이 줄 줄 알고, 위로도 받아본 놈이 건넨 줄 아는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애쓰며 살고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사실을 우연히 발견해 버렸고, 그걸 받아들인다는 건 또 다른 성인의 모습일 것이다.


이제 겨울의 색깔에 대해 대답해야겠다. 나에게 겨울은 '검은색'이다. 바닷속 깊은 수심에 도달할수록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다고 한다. 또한 그만큼 차가울 것이다. 검다는 것은 차가운 것, 어둠, 그리고 죽음이다. 죽는다는 건 나에겐 '상실'이다. 사람이건 사랑이건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겨울엔 숲은 색깔을 잃는다. 한 해 농사를 마친 농부는 논둑을 태우고, 학생들은 겨울방학 동안 공부했던 책거리를 한다. 이렇듯 자연적인 상실과 의무적인 상실이 공존한 세상 속에서 내가 잃어버린 것은 혹은 잃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제 남은 9번의 '죽음' 강의에 대해 난 또 어떤 뿌리는 찾을 수 있을 것인지 기대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잃어버린 진실을 마주한다는 건 이렇듯 긴장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