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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털어놓고 싶은 것

by 류지 Mar 12. 2024

<꿈 일기>

2024년 3월 10일 일요일


고등학교 친구 정윤이와 내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우리 집은 복도에 두 세대가 있는데, 정윤이 집은  세대가 있는 17층 집이다. 그런데 특이하게 대문 앞까지 내려가는 계단이 5~6개 정도 놓여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집이 좁고 낡았다

친구 정윤이가 고양이를 키운다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평소에 나처럼 애완동물을 무서워했던 아이였는데 너무 놀랐다.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라면서 방구석구석에 놓여있는 고양이들을 꺼내보여 줬는데 모두 다섯 마리였다. 그 다섯 마리 중 마지막 한 마리는 약간 물에 젖은 듯했고 털은 잿빛이었으며 힘이 없이 축 늘어져있었다. 

"나는 고양이 무서워해, 싫어"라고 말하자 정윤이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게 뭐가 무서워?" 하며 나에게 고양이들을 가까이 놓았다. 만지기 싫어서 이불로 몸을 감싸서 고양이들을 멀리 치우려 했는데도 자꾸만 내 쪽으로 밀어서 놀랐다. 주변에 있던 정윤이 엄마와 자녀들이 보여서 그들에게 "너희는 고양이 좋아해?"라고 물어보자 정윤이 엄마가 "내가 다 씻기고 젖도 줘"라며 말했다. 그 말에 정윤이가 민망한 듯 피식 웃었다. 마음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자기만 좋아하는 거였네'라며 불평했다.

집 밖으로 나와 밥을 먹기로 했다. 옷을 갈아입고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는데 시간이 다 되어도 정윤이는 오지 않았다. '얘는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맨날 늦어'라고 생각하며 '나도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거야. 이제는 그렇게 안 살 거야'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오니 커다란 통유리가 있었고 그 유리를 통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정윤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는 나를 찾는 듯 보였다. "애는 왜 안 와?" 하는 입모양이 보였는데 내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다른 친구와 떠나는 듯하였다. 그제야 밖으로 나왔는데, 약간 언덕처럼 보이는 나무데크로 장식된 곳에 새로운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랑 같이 내일 휴가내서 등산 갔다가 점심 먹자. 우리 친하게 지내자"라고 이야기했다.





<꿈 배경>

최근 아이들이 개학을 하여 오전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봄볕도 따뜻했고 혼자 누리는 자유시간도 편안하고 좋았다. 그래서인지, 1년 반 전에 연락을 끊은 친구 정윤이가 생각이 났다. '얘는 잘 사나? 정윤이 애들도 개학했을 텐데... 전화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핸드폰을 열었는데 '아니다. 내가 지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무턱대고 전화하면 걔는 당황스럽겠지. 괜히 또 오해만 쌓이겠네'하는 마음이 커져서 그만두었다. 오랜 기간을 함께하고 서로 비밀스러운 것들을 털어놓았던 사이라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친구의 힘들고 지친 이야기를 매번 들어줬음에도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기회는 주지 않았던 '원망의 마음'도 함께였기에 꿈속에서 친구 정윤이를 만난 게 아닌가 싶다.




<꿈 분석 - 정신분석학적 관점>

1. 왜 하필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을까?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건. "마주칠 수 있다"는 의미다. 


나와 정윤이네 자녀는 나잇대가 비슷하고 취향도 비슷했기에, 가족끼리 교외로 나들이를 갈 때면 마음속으로 '정윤이네 가족도 여기 왔으려나?'하고 주변을 한 번씩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주치게 됐을 때 인사하는 모습도 상상하곤 했었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 꿈속에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모습으로 연출된 듯하다


2. 정윤이네 집은 세 세대가 있는 구조였다. 실제로 그러한가?

그렇다. 내가 사는 아파트 구조는 두 세대가 공존해 있지만 정윤이네 아파트는 세 세대로 구성 된 아파트였다.


3. 정윤이는 17층에 사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왜 하필 17이라는 숫자가 나왔을까? 


나와 정윤이와의 연결고리를 떠올려보니 우리는 열일곱에 처음 만났다. 교실에서 말이다. 꿈에서는 대놓고 '우리는 17살에 만났어요'라고 말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17층이라고 표현되었던 것이다. 


4. 고양이는 다섯 마리였다. 무슨 의미일까?

정윤이네 식구는 다섯 명이고, 우리 식구도 다섯 명이다. 그런데 다섯 마리 중 마지막에 보았던 축 늘어진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기억에 남는다. 물에 젖은... 힘이 없는... 그 작은 아이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정윤이에게는 동생이 두 명 있었는데 오래전에 물에 빠진 동생이 생각이 났다. 한참 내 꿈에 그 동생이 나올 만큼 나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 후로 몇 년 동안은 정윤이 동생이 사고가 난 즈음에 가끔씩 생각이 났었다. 그에 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낼 때면 정윤이는 "가족들이 잊고 지내고 있어서 따로 기일을 챙기지 않아"라고 얘기했다. 늘 마음속으로 '자신의 힘듦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정윤이 동생'과 '자신의 진짜 힘듦을 꺼내지 못하는 정윤이'에 대한 안쓰러움이 자리 잡고 있었던 듯하다. 


5. 정윤이 엄마의 등장. 그리고 그녀의 말 "내가 다 씻기고 젖도 줘"라는 말은?

우리 엄마나 정윤이 엄마는 공통적으로 자식에게 헌신하는 어머니들이다. 그 모습이 참 많이 닮았다고 느꼈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나와 정윤이의 답답함과 미안함은 늘 우리의 수다 주제였다. 정윤이 엄마의 등장은 우리 엄마의 모습 같기도 하고 나의 모습 같기도 하다. 


6. '자기만 좋아하는 거였네'에 담긴 나의 감정은 무엇일까?

정윤이는 육아가 힘들 때나 마음이 힘들 때면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또한 정윤이 전화가 반가웠고 통화를 하다 보면 힘들어하는 정윤이를 '웃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래서 정윤이는 통화의 마지막 멘트로 "너랑 통화하고 나니 좀 살 것 같다"였다. 그 말은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라서 뿌듯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이야기도 좀 들어주지.' 하는 아쉬움도 컸다. 나라고 왜 육아며 사는 게 힘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나의 힘듦을 얹어주는 건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친구의 의무 같은 거였다. 그래서인지 꿈속에서 나는 '정윤이 너는 좋았겠지' 하는 볼멘소리가 이렇게 표현된 듯싶다. 


7. 나는 나의 고통을 털어놓는 친구가 있는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없다.

나는 친구와의 관계에서 늘 '듣는 입장'이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의 아픔과 비밀을 나에게 털어놓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에게 "너는 힘든 거 없어?"라고 되물어오는 친구도 없었지만 나조차 나의 비밀을 말하기 어려워했었다. 


왜였을까? 내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간 학교가 생각이 난다. 그 시절에는 학교에서 부모님 직업을 적어서 제출하는 서류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부모의 직업란에 늘 내가 써야 하는 공식이 있었다. 아빠의 직업. '사업가'

"엄마, 그런데 사업가가 뭐야?"라는 나의 대답에 엄마는 "그냥 그렇게 쓰면 돼"가 전부였다. 그래서 새벽에야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아빠가 내 눈에는 '잘 모르지만 사업가'이신 분이었다. 아빠는 365일 중 설날과 추석 딱 이틀만 일을 쉬었고, 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오후에서야 집을 나섰고 학교를 가려고 일어날 때쯤 아빠는 집에 돌아오셨다. 우리 부녀는 그렇게 바통터치 하며 스치듯 서로를 지나쳤다. 

어느날, "그런데 네가 지금 3학년인가? 4학년인가?" 하고 물어보실 때면 "아빠가 어떻게 그것도 몰라"하며 화를 내고 절대 답을 가르쳐 드리지 않았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렇게라도 아빠가 나에게 매달리길 바랐던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아빠의 직업공식은 변함이 없었고 나는 엄마의 바람대로 아빠가 어떤 일을 하시는지 절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왜 그렇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는지 그녀의 상황도 이해가 된다. 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아이큐도 뛰어나서 같은 반 학부모들 뿐 아니라 옆반에 있는 학부모들까지 엄마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학원을 한 군데도 안 다니고 공부를 잘하다 보니, 그 비법이 궁금했던 그녀들은 "혹시 아버지가 교수예요? 아님 의사?"라는 레퍼토리로 엄마의 입을 닫아버렸다. 큰 기대와 궁금증 너머에 '바라는 대답을' 가지고 접근하는 그녀들이 다가올수록 엄마는 살아남기 위해 나의 입도 닫길 원하셨다. 그게 1990년대의 분위기였다. 적어도 내가 사는 동네는 그러하였다. 


그렇게 털어놓지 못한 것들이 쌓인 채로 성년을 맞이한 나에게 "너는 어때?"라고 물어온 유일한 친구가 생겼다. 그게 내 나이 26살이다. 나의 손을 잡아준 친구에게 하나씩 꺼내보았고 우리는 꽤 오랜 시간 같이 울었다. 마음을 터 놓는다는 게 이렇게 시원하고 편안하다는 맛이 들리자 정윤이가 나한테 그러하듯, 나 또한 유일한 친구의 사정을 듣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하기 바빴던 것 같다. 그래서 2년 전부터 새로운 직장에서 바쁘게 일하는 친구의 상황을 배려하고, 그로 인해 연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서 생일과 같은 큰 이벤트가 아니면 연락을 못하게 되었다. 일 년에 4~5번 하는 전화 인사가 고작이지만 '때가 되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멀리서 응원하는 중이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는 예전엔 있었지만 현재는 없다.


8. 고양이라는 상징이 '털어놓는 마음'이라는 건 어떻게 들리는가?

조금 수긍이 간다. 꿈속에서 정윤이가 내가 싫어한다는데도 고양이를 내 쪽으로 자꾸 들이미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이제 너의 고통을 그만 듣고 싶다'라고 이야기하는데도 '조금만 더 들어봐. 나 이만큼 들려줄 이야기가 많아'라며 들이미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꿈속의 고양이는 '소름 끼치고 무서운 존재'로 표현되었는데 그 안에는 '털어놓고 싶지만(혹은 듣고 싶지만) 말할 때(들었을 때)의 두려움과 공포'가 내 무의식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가지 더, 고양이는 '털'이 있는 존재다. 나는 꿈속에 특히 고양이가 자주 나온다. 어놓고 싶은 마음이 무의식 안에 존재하다 보니 '털'이 있는 존재인 고양이가 꿈에 자주 나타났던 게 아닐까?


9.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다. 무의식 속에 있는 진짜 나의 꿈이 아닐까?

정윤이는 다른 친구와 떠나고 나는 새로운 두 친구를 만나게 되며 그들에게 "같이 등산하고 점심도 먹자고" 제안을 한다. 


나의 소원은 끝나버린 과거의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최근에 참여하고 있는 수업에서 두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꿈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역시 나의 민낯을 내보이고 과감 없이 표현해 봐도 되는 안전한 공간이라 가능한데, 꿈을 작업해 본다는 자체가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요새 다시 활기차다. 




<꿈 실천>

내가 털어놓고 싶은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버킷리스트"처럼 쭉 적어봐야겠다.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른 창구를 통해 이야기해 볼 기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지금처럼 일기나 브런치를 이용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꿈 작업을 해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한 Tip>

첫째. 머리맡에 필기도구 및 핸드폰 녹음기어플을 깔아놓는다

둘째. 꿈에서 꺠자마자 필기 및 음성녹음을 한다

셋째. 꿈 일기를 작성한다 <날짜와 내용>

넷째. 꿈 배경을 작성한다 <최근에 있었던 일 중심으로>

다섯째. 꿈 분석을 한다. <인상 깊은 장면이나 언어(단어, 사물 등)에 대한 자유연상, 꿈이 나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여섯째. 꿈 실천을 한다. <앞으로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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