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 Sep 15. 2020

Viva la Vida!

그녀의 인생에 만세를! _ 프리다 칼로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죽기 전에 “인생이여, 만세!”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았기에 그렇게 외칠 수 있는 걸까요?

아마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비록 그 삶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

혼신을 다해 살아왔다면 죽기 전에 인생이여! 만세!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살아왔던 한 화가가 죽기 8일 전 자신의 유작에 Viva La Vida라고 적었습니다.

누군가는 고통스러웠던 삶이라고 말하는 자신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화가는 그녀의 마지막 작품에서 자신의 현실과는 달리 빨갛게 익은 탐스러운 수박으로 생명력 느껴지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삶을 찬양한 예술가, 아름답고 강인한 여인, 바로 멕시코의 국보급 화가

프리다 칼로입니다 (Frida Kahlo, 1907~1954)


viva la vida,1954,  메소 나이트에 유채, 멕시코시티 프리다 칼로 박물관d

저는 프리다 칼로를 참 좋아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화풍이나 표현이 싫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삶이 너무 아파서, 그녀의 아픔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잘 보게 되지도,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그녀의 삶과 작품.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립니다.

프리다 칼로, 부서진 기둥 , 1944, 캔버스에 유채, 40 x 30.5cm,   Dolores Olmedo 컬렉션

그녀를 생각하면 저는 이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숨이 턱 막혀버렸습니다. 여전히 볼 때마다, 늘 그렇습니다.

그녀는 6살 때 소아마비를 겪으며 육체적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치명적이었던 것은 1925년, 하굣길에 일어난 교통사고였습니다.

철 파이프가 그녀의 척추와 골반을 관통해 허벅지로 빠져나왔고 소아마비로 불편했던 오른발은 짓이겨졌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이 그녀의 삶을 모조리 흔들어놨던 그때, 그녀는 18살이었습니다. 그 끔찍한 사고 앞에서 그녀는 기적처럼 살아났고 사고로 누워있던 침대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다친 것이 아니라 부서졌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은 행복하다’


그녀는 자신이 느꼈던 온전한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예술가로서의 또 다른 세상을 열었습니다.

<상처입은 사슴> 역시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자유롭게 뛰노는 사슴이 부러워 자신을 사슴으로 표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는 사슴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는데 그녀는 그 화살을 모두 맞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적어도 자신에게 들이닥친 고통의 현실을 외면하지도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받아들였고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그게 바로 프리다 칼로지요.

프리다 칼로, 상처 입은 사슴, 1946, 22x30cm , 캔버스에 유채 , 캐롤린 휴스턴 컬렉션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 그녀가 살아난 이유는, 결국은 우리에게 이러한 예술적 유산을 남기기 위한 그녀의 숙명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프리다 칼로의 삶과 예술을 이야기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꼭 함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영원한 사랑이자 동경의 대상, 그리고 어쩌면 고통의 원천이었던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입니다.

디에고와 나, 1931,1931 캔버스에 유채 99 x78.7 샌프란시스코 모던 아트 뮤지엄

"일생 동안 나는 두 번의 심각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하나는 18살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입니다. 부서진 척추는 20년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죠. 두 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와의 만남입니다."


둘은 21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함께 하며 사랑과 예술을 함께 나눴습니다.

프리다 칼로가 꿈꾸는 모습은 평온하고 온전하고 영원한 사랑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시대의 혁명적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천재들의 예술적 광기 때문인지 사랑은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그녀의 가장 큰 꿈은 디에고 리베라의 아기를 갖는 것이었지만 그녀는 세 번의 유산을 겪고 몸과 마음의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유산의 고통을 핸리포드 병원이라는 작품 속에 고스란히 표현하였습니다.  삭막하고 황량한 곳 한가운데에 놓인 침대와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동생인 크리스티나와도 깊은 관계를 맺었던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다 칼로는 죽기 전 엠마라는 여인에게 자신이 죽고 난 후,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하여 그를 보살펴달라고 부탁까지 하였습니다. 실제로 프리다 칼로가 죽고 디에고 리베라는 엠마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프리다 칼로, 헨리 포드 병원, 1932



 “ 왜 나는 그를 나의 디에고라고 부를까? 그는 한 번도 나의 것이었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그는 그 자신의 것이다”


살아 생전, 늘 이런 의문을 갖고 있었던 프리다 칼로.  하지만 디에고 리베라는 후에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프리다에 대한 사랑이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뒤늦게 진실한 사랑을 깨달은 디에고 리베라는 자신이 죽고 나면 자신을 그녀가 묻힌 곳에 묻어달라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프리다 칼로, 디에고와 나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좋은 이야기이든 나쁜 이야기이든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는 늘 함께 묶여 사람들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둘은 묶여 있어요.

프리다 칼로는 이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할지 모르겠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자화상을 참 많이 남겼습니다.

어쩌면 고흐보다 더 많이 그렸는지도 모르겠어요.


<희망의 나무>라는 작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 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누워있는 여성도, 당당히 앞을 보고 있는 여성도 모두 프리다 칼로입니다.

희망의 나무, 1946 Oil on masonite. 55.8 x 40.7 cm. Private collection.

웃음기 없는, 강인한 표정의 자화상.

무언가 심연 깊은 곳 큰 웅덩이를 가진 표정.

그녀는 분명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는 깊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삶의 고비를 넘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무언가 일까요?


제가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뒤 쪽의 배경을 보고 난 후였습니다.

왼쪽에 밝은 태양 아래 누워있는 여인과 오른쪽의 어둠 속에 앉아있는 당당한 여인.

세상에는 두 가지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밝은 태양 아래 있어도 빛을 보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

어둠 속에 있어도 빛을 발하며 어둠을 뚫고 나가는 사람.

그녀는 후자이겠죠?



제가 소개할  마지막 작품은 버스 안의 풍경을 그린 작품입니다.

희망의 나무, 1946 Oil on masonite. 55.8 x 40.7 cm. Private collection.

버스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가로로 긴 캔버스, 개성 있는 사람들. 참 밝은 분위기의 작품이지만

이 그림, 그녀가 1925년의 사고를 회상하며 사고가 나기 전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버스 안 손잡이가 달려있는 파이프가 그녀의 몸을 관통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녀가 이 작품을 어떠한 심정으로 그렸을까, 참 아팠겠다 싶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1964년 7월 13일 그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그녀가 떠나던 날을 가장 끔찍한 날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외출, 행복하겠죠?

늘 자신에게 당당했고, 사랑 앞에 솔직했으며, 삶에 진실했던 그녀가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 "치유의 예술"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미술이 가진 치유라는 기능을 설명하는데 가장 잘 맞는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그런데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 프리다 칼로를 설명하기엔 너무 가볍지 않나요?


그녀가 느꼈던 아픔을 가슴 절절히 느껴보지 못하고서야 저는 저렇게 만은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사고로 인해 아름답지 못할지도 모르는 육체, 세 번의 유산이라는 여자로서는 상처투성이인 삶. 그녀는 고통 속에 있었지만 우리는 그녀를 아름답게 기억합니다.

그녀의 작품만이 예술로 남은 것은 아닙니다.

그녀의 삶이, 그녀의 사랑이 모두 예술로 남았습니다.

그녀에게 인생이여! 만세!라고 외칠만한 삶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Viva la vida!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