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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Sep 17. 2020

우린 모두 일요일을 기다린다, 일요일의 화가이야기

앙리 루소_그의 그림 속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이 들어있다

         

“소박파(Navie Art)"를 들어보셨나요?     

미술사 속에는 소박파라고 불리는 화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아마추어로서 활동하는 화가들로, 어떤 미술사조에 속한 이들이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나름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화가들입니다. 처음부터 화가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닌 다른 일에 종사하면서 예술의 길에 뒤늦게 뛰어든 화가들이죠.

대부분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노력과 예술에 대한 예정으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이들. 늘 아마추어이자 아웃사이더로 미술사에 존재했지만 결국 그들이 있었기에 현대미술은 더욱 다양해지고 풍성해졌습니다.


앙리 루소는 소박파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그의 작품 속 에는 다른 예술가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벌써 9월의 반이 지나고 있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2020년,  나는 얼마나 성실과 열심히 살았는가를 되돌아보며 예술 앞에서 늘 성실했던 앙리 루소의 작품을 소개할까 합니다.       


앙리 루쏘, 자화상, 1890


파리 세관원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던 앙리 루소는 7살 때, 아마추어로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예술에 매료된 그는 화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했지만 고된 현실은 그에게 화가가 되는 것은 사치이자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루소에게 화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현실보다 강했고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루소는 25세 때 10년 아래인 15세의 크레망스와 결혼하여 일곱 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평일에는 일을 하고 돈을 벌었고 주말이 되면 근교에서 자연을 관찰하며 수천수만 장의 그림을 그리며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주말마다 그림을 그려나갔던 시간만 무려 '22년'이었습니다.

앙리 루쏘, The Artist Painting his Wife , 1905


주말이면 이렇게 아내와 함께 나왔을까요?

아내와 자식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버리지도 못했던 그의 마음속은 많은 갈등과 괴리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7명의 아이를 낳았으니 화가로서의 꿈을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었을 것 같네요. 안타깝게도 키우던 자녀 중 다섯 명이 죽고 크레망스마저 1888년 34세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 후, 홀로 지내던 루소는  55세 때인 1899년 미망인인 조세핀누와 재혼했는데 조세핀누도, 4년 후인 1903년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루소는 1890년에 그린 ( 자신, 초상 : 풍경)이란 작품 팔레트 뒷면에   여인의 이름을 써넣어 먼저  크레망스를 추모하고, 재혼한 조세핀누의 건강을 빌었다고 합니다.

(맨 처음으로 소개해드린 자화상입니다)


여러 가지 역경 속에서 그가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림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일요화가라고 불리는 멸시적 호칭에도 꿋꿋이 그림을 그려나갔는데 오히려, 혼자서 그려나간 그림을 통해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고 마침내  화가로서 정식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49세였습니다.      


“자연을 관찰하고 본 것을 그릴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야외에서 태양과 초목과 꽃피는 것을 볼 때마다
‘그래, 저 모든 것은 내 것이야.’ 하고 혼잣말을 하곤 한다.”

  -앙리 루소-


햇빛과 나무, 바람, 꽃들.. 신이 창조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그의 그림 속에서 그만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의 현실은 가난했지만 그의 예술은 그만의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림 속에는 그의 상상력까지 더해지는데, 작품 속에 원시림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동물들과 자연은 사실 그가 실제로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파리의 식물원과 동물원에서 본 것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 그림을 그린 것이지요.


앙리 루쏘, The Dream, 1910


앙리 루쏘, Exotic Landscape, 1908


이국적이면서도 원시적인 그의 화풍은 매우 독특했지만, 당시에는 큰 호응은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피카소를 알게 되고 루소는 피카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원시미술에 매료돼 있었던 피카소는 루소의 그림에서 순수성과 원초적인 에너지를 느끼고 그의 작품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간성까지도요. 예술 앞에서 늘 진지하고 당당했던 루소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으로 19~20세기의 여러 유파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었습니다.


루소의 대표작 <잠자는 집시 여인>은 지금 보아도 매우 신선하지요.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1897년, 캔버스에 유채, 129.5 X 200.7cm, 뉴욕 현대미술관


환상적이면서도 불안한, 신비하면서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이전에는 없던 낯선 화면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예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루소의 그림은 20세기 초에 등장한 초현실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독특한 화풍을 넘어 무엇보다 그의 그림이 가슴 깊이 다가오는 이유는,

예술 앞에서 늘 성실했던 그의 자세, 가난 속에서 자연과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그의 여유,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표현할 수 있던 열정과 즐거움이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루소 작품의 컬렉터였던 바로네스 폰 외팅겐은 그가 사랑하는 화가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돈벌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희망의 원천이자 위로의 수단이며 일상의 압박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보호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일요일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다른 생각과 다른 활동과 다른 삶이 있는 세상을 깨달을 수 있는 여가다. 노동자가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발판은 그를 억누르는 가난과, 낙담하게 만드는 정부의 기만에 반항하는 것이다. 루소는 가난에 대한 원망 없이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일요일을 기다렸다. 일요일에 전 세계에 걸쳐 기쁨이 두 배가 되고 이 기쁨이 바로 생의 기운이 된다.”      

  

제가 좋아하는 그의 작품들을 좀 더 소개해드릴게요.

앙리 루쏘, The Happy Quartet, 1902

행복한 4중주. 그림도 제목도 맘에 들어요.

인간과 동물, 그리고 자연까지도 모두 하나가 되는 느낌이랄까요?

앙리 루쏘, Centennial of Independence, 1892
앙리 루쏘, The Pink Candle, 1910


앙리 루쏘, rabbit, 1908


참으로 사랑스러운 그림들입니다.


 

iberty Inviting Artists to Take Part in the 22nd Exhibition of the Society of Independent Artists
앙리 루쏘, The Eiffel Tower


일요화가였던 앙리 루소.

차근차근, 꾸준히, 성실하게, 조급하지 말고.

저는 그의 그림에서 자신의 꿈에 충실했던 위대한 예술가의 내공을 느낍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삶 자체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지 않을까요?

평범했던 화가의 작품은 그와 같이 일상을 고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특별한 일요일로 다가옵니다.


온전히 내 것인

일요일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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