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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Dec 02. 2022

군자는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맹자 말씀을 따르지 않아서 치른 대가  


공손추가 맹자에게 물었다.
"공자께서는 왜 직접 자식을 가르치지 않으십니까?"

맹자께서 답하셨다.
"교육하려는 목적은 본디 자식을 올바른 인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공부에 열중하지 않으면 화를 내게 되고, 성을 내게 되면 결국 아이와 사이가 나빠지게 될 것입니다. 아이 쪽에서는 '나더러 올바로 돼라 하시고 아버지는 올바르지 못한 것이 아니냐.'하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 아버지와 자식 사이가 의가 상하는 것이지요. 의가 상해서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자식을 바꾸어 가르쳤습니다.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 좋은 일은 강요하면 의가 상하는 것입니다. 의가 상하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논어>에 실린 <군자는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중에서



이 말씀을 일찍이 알았으면 난 남매와 집공부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맹자께서도 자기 자식은 가르치지 않으셨는데 난 주제넘게 초등 남매와 집공부 중이다.

그리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아끼는 세라믹 식탁에 만든 흠집이다.








식탁의 흠집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따끔하다.  

다른 가족들은 이 흠집이 있는지도 잘 모른다. 내 눈에만 띄이는 흠집이다.

 

내가 내리찍었다.

화를 참지 못하고 들고 있던 젓가락을 식탁에 내리찍어 만든 흠집이다.

아끼는 내 식탁에 상처가 남은 것도 속상하고, 고작 열살남짓 아들에게 화가 나는 걸 참지 못하고 식탁에 화풀이 한 못난 모습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매일 식탁을 닦을 때마다 그날의 내 못난 모습이 자동 재생된다. 눈을 감아버린다. 내 부족한 민낯을 마주하는 것이 괴롭다.
 

이게 다 그 대단한 집공부 때문이다.            


우리집 식탁의 이 작은 상흔은 내 눈에만 보인다



 





엄마인 내가 교사이니 남매를 공부시키는 건 어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남매가 어려서 학습 내용도 어렵지 않으니 더 만만하다 여겼다 (큰 오산임을 지금은 안다).

그리고 꼭 집공부를 해서 얻고자 하는 나만의 뚜렷한 목표가 있다. 맹자께서도 안 하신 자식 교육을 굳이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는 것은 이 과정을 통해서만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십수 년 고등학교 교사 생활하면서 얻게 된 이 깨달음은 다시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목표와 뚜렷한 의지는 실전에서 맥을 쓰지 못했다. 남매와의 집공부는 늘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날도 그랬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퇴근해서 쉴 틈 없이 저녁을 만들고 먹고 치웠다.

그리고 바로 집공부를 시작했다.

이미 하루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였으나 마지막까지 쥐어짜서 다시 식탁에 앉아 남매를 소환했다.

분명 시작하자는 말을 들었음에도 못들은 척 한다. 좀 더 큰 소리가 나야 미적거리며 움직인다. 온몸으로 짜증을 표현하면서.

몸이 힘들면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다. 아이들의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에서부터 화가 나기 시작한다.

자리에 앉아서도 모든 게 맘에 안 들었다. 연필 잡는 것도 맘에 안 들고, 집중 안 하고 딴짓하는 것도 꼴 보기 싫었다. 난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내 시간을 모두 남매에게 갈아 넣고 있는데 알아주기는커녕 하기 싫어서 베베 몸을 꼬는 모습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부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엄마의 화를 감지하지 못한 남매는 장난을 치며 희희낙락 중이었다.


별것도 아닌 것에 하나씩 적립한 화를 난 굳이 참지 않고 터트려버렸다.

쥐고 있던 젓가락으로 식탁을 내리찍었던 거다. 왜 젓가락을 쥐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암튼 아끼는 세라믹 식탁이 패인 걸 보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바로 후회했지만 늦었다.

장난치다가 깜짝 놀라 얼어버린 어린 남매를 보고 반성했지만 아이들은 이미 애미의 못난 모습을 보고 난 후다.

못난 행동이 창피했다. 

남매가 즐겁고 편한 분위기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돕지 못하고 사사건건 화를 내고 있는 내가 미웠다. 

 




 

        

점검이 필요했다.


난 왜 집공부를 시작했던 걸까?

그리고 집공부를 성공시키기 위해 난 무얼 바꿔야 할까?


다음날, 식탁에 흠집을 닦으며 남매와 엄마가 모두 행복한 집공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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