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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Nov 29. 2022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당신입니다

집공부 시작하고 만나게 된 그녀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집공부를 시작했다.


한동안 집공부 관련된 블로그, 유튜브, 초등 교육서를 잡히는 대로 보고, 읽었다. 난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다. 초등은 아니지만 엄마가 현직 교사라는 경험치에 다양하게 섭렵한 실전 이론까지 더했으니 집공부는 제법 우스워보였다. 내가 시작만 하면 무척 잘할텐데 이걸 어떻게 자랑해야 하나 미리 심각하게 고민도 했었다. 모두 그녀들과 마주하기 전까지 이야기다.


집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녀들과 만났다. 나와 남매의 집공부에 느닷없이 난입한 그녀들을 소개한다. 그녀들은 내 안에 산다.



 





첫번째 그녀 

“처음 뵙겠습니다. 잔소리쟁이 인사드립니다. ”


난 내가 이렇게 잔소리가 많은 인간인 줄 몰랐다. 집공부를 위해 아이와 나란히 앉으면 내 눈은 뭔가 트집을 찾아내고자 혈안이 된 듯 바삐 움직였다. 지금 생각하면 고작 8살이 공부하겠다고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특한데 당시에는 칭찬은커녕 잔소리로 아이를 몰아세우기 바빴다.  


‘글씨 또박또박 써야지’

‘허리 세워 앉아’

‘연필 제대로 잡아라’

‘멍 때리지 말고’

‘다리 떨지마’     


한참 지적에 몰두하다가 아이 얼굴이 일그러져 있음을 알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곤 했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면 다시 잔소리를 반복했다. 지금 당장 뜯어고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처럼 집요하게 굴었다.  








두번째 그녀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어요. ”  


아~! 넌 또 누구니 ㅠ 난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 인간인 줄 몰랐다. 원래의 나는 내향적인 성격 탓에 본능적으로 큰소리 내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연애 10년, 결혼 11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한 남편과도 큰소리 내서 싸워본 기억을 떠올리는데 손가락 두어 개면 충분하다. 18년 교사 생활하면서도 아이들과 늘 평화롭게 대화하고 소통했다. 학생을 존중하고 충분히 소통하는 교사라는 자부심으로 생활하는 나다. 평소에는 이게 나다.


그런데 집공부를 시작하면서 유독 아이에게만 쉽게 화를 내고, 가득 찬 화를 아이에게 마구 터트리는 몰상식한 나를 만나게 됐다. 공부를 시작하지 않고 한없이 미적거리는 아이를 보면서 슬슬 화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겨우 앉았지만 진득하지 못하고 자꾸 엉덩이가 들석이고, 집중하지 않으면 이미 화는 임계점에 도달한다 (고작 이 정도로 한계점에 도달한다니 말도 안되지만 처음 집공부하던 그때에 나는 그랬다). 그러다 학교 숙제를 하려고 노트를 찾았는데 노트가 가방에 없을 때는 결국 화가 폭발해버렸다. 아이는 무방비상태로 그 폭격을 받아낸다. 치사한 건 남편이 없을 때 더 아이를 공격했다는 점이다. 악랄한 애미다.








마지막 그녀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는 욕심이에요. ”  


이쯤 되면 거의 다중이 수준이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난 K 장녀다. 자라면서 갖고 싶은 걸 사달라고 졸라본 적 기억이 거의 없다. 나만의 꿈을 향해 매진하기보다 현실적인 걸 추구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성취욕이나 소유욕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또 집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내가 보였다. 아이와 관련된 일에서는 제대로 욕심쟁이가 된다.


수학 기본을 시작으로 응용, 준심화, 심화까지 쭉쭉 들이댔다. 사고력도 풀게 하고 연산도 빼놓지 않았다. 아이가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남들이 하는 건 다 시켰다. 처음 영어책을 한 줄 읽어낸 다음부터 소문난 챕터북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지금 읽는 것보다 AR지수 높은 책을 찾아 아이에게 들이댔다. 아이가 질리거나 말거나 안중에 없었다. 아이의 하루를 엄마의 욕심으로 가득가득 채워 넣었다.  







그렇게 내 안의 그녀들 함께 집공부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집 집공부는 산으로 가고 있었다. 우당당탕!

그렇게 4년이 흘렀다.   



다중이 엄마와 집공부하는 이 아이들. 지금은 과연 무사할까요?

 

(사진출처 : 픽사베이,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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