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11곳만 투고한 것을 후회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신 확인은 했는지, 돌아오는 메일이 없어 며칠을 하릴없이 F5를 거듭 눌렀다.
갖고 있는 출판사 메일 주소를 모두 사용해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일 다시 투고하자' 결심한 그날,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
마지막에 따듯한 기운에 끌려 투고했던 출판사로부터의 답장.
따로 제목 없이 내가 보낸 메일에 대한 Re : 답장으로 보내온 메일.
긍정인지 부정인지, 단순히 앞서 보낸 메일에 대한 수신 확인 정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우 쫄려.
투고 원고를 긍정적으로 보아서 출간 관련해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올레.
씩씩하게 투고하고 나서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사르륵 녹았다.
이후에도 순조로웠다.
일주일 만에 만남이 성사됐다.
나와 결이 같은 교육 철학을 갖고 있는 대표님과 인간 온풍기 같은 팀장님을 만나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대화였다.
알고 보니 이미 인연이 있었던 출판사였던 것도 신기했다.
작년 가을, 친한 후배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었다.
"언니가 좋아할 것 같아서 보냈어. 언니 블로그 쓰니깐 시간 되면 읽고 서평도 써주면 좋고. "
그때는 누가 쓴 책인지, 왜 서평까지 부탁하지는 캐묻지 않았었다.
그리고는 읽었으나 서평까지 작성하지는 못하고 미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출판사 대표의 책이었다.
만나기 전날이 돼서야 뒤늦게 깨닫고 아차 싶었다.
쓸걸.
후회는 왜 매번 지각인지.
엄마 표현을 빌려보자면 이미 꿩새울었고 다행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 끝에 계약하자는 제안을 들었다.
정말?
바로?
첫 투고에, 첫 미팅에, 바로 계약이라니.
사실 이런 장면을 상상하며 미리 가방 구석에 도장을 준비한 나.
김칫국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필요한데 없으면 안 되지 싶어 히죽히죽 웃으면서 가방에 넣어왔다.
계약을 하자는 제안에 신나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종이를 쓰윽 내밀 것으로 기대했는데 계약서는 이메일로 보내준다고 했다.
'어? 도장 안 찍었어요?'
다행히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약서가 이메일로 오면 도장은 어떻게 찍고 그것도 아니면 서명은 어떻게 하지? 싶었다.
궁금하지만 아닌 척, 당황했지만 괜찮은 척 연기하고 헤어졌다.
알고 보니 전자서명 시스템이 있었다.
종이계약이 존재하고는 있지만 스마트하게 전자서명 메일이 날아왔다.
그렇게 도장 없이 출판계약이 성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