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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Aug 13. 2023

나 지금 말실수한 거 맞지?

퇴근하면서 쓰는 일기

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수직 관통한다고 한다. 서울을 지나가는 시간에는 내가 출퇴근하는 시간과 비슷하다.


서울 변두리에 살고 있어서 내가 타는 전철은 땅속에 있는 지하철이 아니다. 지상으로 달리는 전동 열차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태풍이 오거나 아니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자주 멈추고 지연된다.


전날부터 범상치 않은 바람 소리에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출근을 서둘렀다. 내가 일찍 나와서 그런가 기상 악화로 다들 재택근무를 하나 전동 열차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덕분에 편하게 출근했지만 이제 퇴근이 걱정되었다.


업무 중간에 계속 1호선을 검색했다. 운행 중단되나 지연되나 그럼 나는 빙빙 돌아가는 지하철 여행을 해야 하나 종일 신경 쓰였다.


와!
태풍 덕분에 조기퇴근을 실시한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퇴근까지 1호선은 잠잠했다.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퇴근하는 만큼 일도 열심히 했다.


4시가 되자마자 튀어 나갔다. 가득 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침을 삼킨다. 회사가 고층이다 보니 귀가 먹먹하다. 빠르게 1층에 도착하고 빗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오늘 조기퇴근 하나 봐."
"장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장님이다. 이 회사에 11년 다니면서 부장님 같은 상급자는 처음 만났다. 회사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건강과 가족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작년에 간암으로 의심되는 혹이 발견되어 힘들 때 위로해 주신 분이다. 덕분에 자유롭게 연차를 쓸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른 센터로 이동하셔서 같은 층에서 만나기 힘들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 존경하는 상급자 1위다. 오랜만에 뵌 부장님은 엄청나게 날씬해지셨다.


"엄청나게 날씬해지셨네요. 건강해서 보기 좋아요."


라도 말하며 부장님 얼굴을 보는 순간.
아.
나 말실수한 거 같은데.
현재 담당하시는 센터는 바쁜 곳이라 아주 힘들어 보이셨다. 그 증거로 입술이 터져 상처가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실수를 감지한 사이 회사 밖으로 나왔고 나는 지하철역으로 부장님은 흡연구역으로 향했다.


퇴근하는 내내 부장님의 얼굴이 생각났다. 다음에 만나면 작년처럼 나도 위로가 되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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