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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Oct 11. 2021

세 살 연상의 남자





 여름이라는 섬(Leave Me in Summer)



 7. 세 살 연상의 남자



 이른 아침부터 두 사람은 다람쥐처럼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 시간 단위로 일정을 짠 사람은 서혜였고 그 일정을 따르는 사람은 성현이였다. 둘은 오래된 부부처럼 서로의 동선을 피해 나갈 준비를 마쳤다. 일찍 일어난 서혜가 먼저 씻을 동안 성현이는 마루에 놓인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졌다. 씻는 시간이 짧은 서혜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성현이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동안 서혜는 식탁에 우유 그릇과 시리얼을 올리고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친 서혜가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말리는 동안 나는 잘못을 저지른 강아지처럼 그릇 속 우유를 소심하게 핥고 있었다. 바빠서 나를 무시하는 건지 더러워서 나를 무시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맛없는 시리얼을 뒤적거리던 중 펜션 밖에서 자동차 엔진음이 들렸다. 이윽고 시동이 꺼지더니 초인종 소리와 함께 소파의 맞은편 벽에 붙은 인터폰으로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성현이가 저걸 못 봤을 리가 없는데.

 “오빠가 나가줄래요? 아마 렌터카 업체일 거예요.”

 문을 열자 현관 앞에서 기다리던 직원이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신서혜 고객님 차량 서비스입니다.”

 “맞아요. 안에 있는데 저한테 말씀하시면 돼요.”

 비로소 알았다는 듯이 직원은 흐뭇한 얼굴로 내게 안내 사항을 설명했다.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어젯밤부터 이유 없이 힘이 없었다.

 “여기 차 키를 드릴게요. 안전하게 타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안전을 바라는 건지 차의 안전을 바라는 건지 모호한 문장이었다. 아무튼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려던 직원이 내 차의 앞 범퍼를 보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뭘 박으셨나 봐요?”

 “노루요. 제주도에 고라니는 없죠?”

 “이야, 요즘은 박는 사람도 없는데 그걸 박으셨네요.”

 “예.”

 한숨을 쉬며 문을 닫았다. 서혜는 머리를 다 말렸는지 옷도 갈아입지 않고 화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옆으로 손을 뻗어 살며시 자동차 열쇠를 내려놓았다.

 “고마워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 없었다. 성현이가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은 듯했다. 어쩌면 못 봤을지도 모른다.

 못 봤을 리가 없었다. 휴대폰 옆에 보란 듯이 놔둔 콘돔 상자인데 그녀가 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식탁이 꺼질 듯 한숨을 쉬고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아직 피곤하죠.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

 화장대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서혜가 말을 꺼냈다.

 “괜찮아. 너는 어제 잘 잤니?”

 “저는 가끔 성현이랑 놀러 다녀서 그런지 둘이 자는 데 익숙해요. 서로 오래 알고 지내다 보니 불편한 것도 없고요. 울산에 갔을 때는 좀 달랐는데, 그때는 민박집 이 층을 빌렸거든요. 원래 우리가 이 층에 있는 방 두 개랑 거실 하나를 다 쓰기로 했는데 갑자기 저녁이 되어서는 커플 한 쌍한테 방 하나만 내어줄 수 있느냐고 주인이 묻는 거예요. 그럴 거면 처음부터 방을 나누어 빌려주든가요. 저희도 그런 걸 가지고 다투고 싶지는 않고 어차피 하루만 묵고 나갈 거니까 좋은 마음으로 방 하나를 내어줬죠. 물론 돈은 주인이 벌었겠지만요. 사실 그렇잖아요? 조금 더 벌자고 손님한테 양해를 구하고 방을 비워달라는 건데 우리한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고요. 근데 하필이면 그날 밤.”

 괜히 물어본 것 같았다. 우연히 울산에서 건너편 방을 쓰게 된 커플의 새벽 신음에 밤새 잠도 자지 못하고 고생했다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물에 젖은 골판지처럼 흐물흐물해진 시리얼을 미음처럼 씹어 삼켰다. 그녀는 내 속도 모르고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 처음으로 안 거예요. 제가 피곤하면 코를 곤다는 걸. 열 시인가 열한 시쯤에 간신히 일어났는데 성현이가 눈이 빨개져서는 새벽에는 커플 때문에 아침에는 나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네가 정말 피곤했나 보다. 성현이는 그런 잠버릇이 없대?”

 시리얼을 우물거리며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그녀가 화장을 멈추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거울 속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제 말이. 오사카에 갔을 때는 어땠냐면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긴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성현이는 가끔 불안한 듯 끙끙대며 잠꼬대를 한다고 했다. 옆에 누운 서혜가 잠에서 깨어 안아주거나 그녀의 손을 잡아주면 비로소 잠꼬대를 멈추고 잠든다고 했다.

 “평소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나 보다.”

 화장을 하던 서혜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그러게요.”

 우리의 대화가 끊김과 동시에 샤워를 마친 성현이가 화장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식탁까지 풍겨온 향기는 어제 차에서 맡은 그것이었다. 먹다 남은 우유와 시리얼 조각을 싱크대에 붓고 흐르는 물에 그릇을 씻었다. 올라오는 우유의 비린내가 다가오는 그녀의 향기를 잠시나마 가려주었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지만 이내 그녀의 향기는 식탁을 넘어 싱크대까지 점령해버리고 말았다.

 화장을 마친 서혜가 방으로 들어가자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성현이가 화장대 앞에 허리를 숙이고 거울을 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원피스 차림이던 그녀는 허벅지 위까지 올라오는 짧은 반바지에 흰 단추가 서너 개 달린 까만 블라우스를 입은 모습이었다.

 눈이라도 마주칠까 무서워 얼른 고개를 돌렸다. 서둘러 이 층으로 올라가려는 찰나 그녀가 나를 붙잡기라도 하듯 말을 건넸다.

 “어디 가요?”

 “옷 갈아입으러.”

 “옷 다 입었네. 어제 입었던 그대로잖아요.”

 우물쭈물하다가 소파에 앉았다. 여기라면 화장대 앞의 그녀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베이스와 파운데이션, 파우더를 주섬주섬 챙겨 오더니 내가 앉은 소파 옆에 떡하니 주저앉아 버렸다.

 “이야기 좀 해요.”

 “무슨 이야기?”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 감정이 두려움인지 흥분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입술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어제 편의점에서 뭐 했어요.”

 “칫솔을 샀지. 라면을 먹고 싶었는데 못 먹었어. 나와서 깨달았거든. 다시 들어가 라면을 사고 물을 받는 게 너무 귀찮더라고. 그리고 개구리가.”

 “개구리?”

 “요 앞에 개구리가 엄청 많았던 거 알았어? 어제 들어오며 봤거든. 차로 올 때는 몰랐는데 걸어서 다녀오니 도로에 엄청 많이 있는 거야. 더러는 타이어에 깔려 죽기도 하고.”

 그녀가 손을 멈추더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뜨끔한 마음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런 이야기를 왜 해요.”

 “미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앉은 자세를 바로 잡았다. 허리를 곧게 편 채 어서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콘돔 왜 샀어요.”

 “무슨?”

 파우더 케이스에 붙은 동그란 거울과 나를 번갈아 보는 성현이의 눈이 시계추처럼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괴기스러운 모습이 내게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휴대폰 옆에 있더만.”

 혹시나 하는 바람으로 품고 있던 얼마 안 되는 희망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구원처럼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옷을 차려입은 서혜가 여전히 화장 중인 성현이를 재촉했다.

 “아직 덜 됐어? 좀 있으면 나가야 해.”

 “잠깐 기다려 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는 얼굴로 대답한 성현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음에 마냥 기뻐하던 서혜는 저벅저벅 방으로 걸어가는 성현이와 소파에 망부석처럼 앉은 나를 보며 의아해했다.

 “무슨 이야기라도 했어요?”

 “아니, 아무것도.”

 “저한테 비밀이라도 있어요?”

 “아니야. 하루 만에 무슨 비밀이 생기겠어.”

 눈앞이 캄캄했다.

 “너네가 나갈 때 같이 가야 하지?”

 “그래야죠. 여기 혼자 있으려고 했어요?”

 괜한 질문을 던지며 소파에서 일어섰다. 적어도 서혜에게는 말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둘이 있을 때만 나를 압박할 거라면 그 순간만 잘 넘기면 될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라도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분명해지는 것이 좋았다. 최대한 셋이 있는 상황을 만들며 제주도에서 만난 약간 이상한 사람으로 잊히는 게 최선인 듯했다.

 그냥 연락을 씹고 안 보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서울은 인구 천만의 도시였고 그중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칠 확률은 얼마 되지 않았다.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은데.”

 현관 앞에서 성현이를 기다리던 서혜가 나더러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투덜거렸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파란색 줄무늬 양말과 회색 체크무늬 스커트, 흰색 반 팔 티셔츠와 그 위에 걸쳐 입은 얇은 여름용 카디건. 여전히 그녀의 취향이 마음에 들었다.

 “어제랑 느낌이 다르네.”

 “어제가 더 나은가?”

 “지금도 잘 어울려.”

 그녀를 지나쳐 펜션 밖으로 나왔다. 제주도의 여름 하늘은 넓고 깊었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 아래 숨은 이마를 들추었다. 가르마를 타듯 머리칼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은 고민에 빠진 머릿속 곳곳을 차갑게 식혀 주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한 게 아닐까. 그리 문제 될 일도 아니었다. 나는 서혜의 번호를 가지고 있었고 내일은 둘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차를 바꾸어 오기는 해야 하지만 그것도 오늘 중으로는 마무리되리라.

 노루는 어떻게 되었을까. 누군가 녀석을 치웠을까. 그곳에서 썩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법처럼 부러진 뼈와 망가진 근육이 회복되어 다시 일어선 것은 아닐까. 예전처럼 숲 속을 뛰어다닐 녀석은 나를 기억이나 해줄까. 분명한 것 하나는 내가 녀석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일 봐요!”

 문을 잠근 서혜가 멀찍이 선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자기네 차 쪽으로 걸어가는 성현이는 이번에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와 내 인연은 여기까지인 듯했다. 하루 재워줬더니 밤에 편의점에 나가 콘돔을 사 오는 세 살 연상의 남자.

 펜션을 나오는 길에 창문을 모두 닫고 차 안에서 악악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솟구치는 쪽팔림을 견딜 수 없었다.

 아무튼, 그녀와의 인연은 여기쯤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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