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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Mar 11. 2022

어떤 말





 사랑한다는 말(A Word)



 1. 어떤 말



 “자, 이제 말해 봐. 우리가 왜 결혼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당당하게 대답을 요구하는 그녀의 태도에 내심 놀랐지만 여기서 또 말을 잘못 꺼냈다간 언제 다른 이유를 들어서 나를 괴롭힐지 몰랐다.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오늘따라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문득 현기증이 돌았다.

 나도 질문하면서 살고 싶다. 대답을 요구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하지만 내 앞에 놓인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할 말이 쉽게 떠오르지 않나 보네.”

 “기다려 봐. 잠깐 생각 좀 해보자.”

 “그동안 연습한 거 다 어디로 간 거야. 우리 엄마 아빠 앞에서도 이렇게 머뭇거릴 거야?”

 그보다도 그녀 앞에서 머뭇거리는 게 더 무서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분위기를 바꿀 만한 새로운 화젯거리가 필요했다.

 “쉬운 것부터 시작해보자.”

 “너한테 뭐가 쉬운데?”

 “우리 엄마 아빠한테 이야기하는 건 편하지. 너네 어머니 아버지는 약간, 딸을 내어 주는 입장이니 더 엄격하시지 않을까?”

 내준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딸밖에 없었다. 아들에게는 그런 표현이 쓰이지 않았다. 마음에 걸렸지만 그녀도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딸 부모보다는 아들 부모가 더 흔쾌하지 않을까. 결혼하겠다는 나와 아름이 앞에서 역정을 내시는 부모님의 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를 내보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분들이었다. 결혼은 됐고 아이부터 데려오라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나서 숨이 막혔다. 부모가 쿨한 것을 떠나서 일단 그건 내가 싫었다.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로 구체적인 이야기다. 아이가 생기려면 우선 섹스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날따라 콘돔을 쓰지 말아야 한다. 피임약도 실수로 먹지 말아야 한다. 그 묘한 생리 주기에도 들어맞아야 한다. 그리고 삽입 섹스를 한 뒤 질 내에 사정을 해야 한다. 체외사정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시간 순서에 맞춰서 일일이 해내야 한다. 그래도 임신이 안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아이가 생기는 것은 실수일 리가 없다. 이 작업을 실수로 해낼 수 있다면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반드시 아이를 갖겠다는 목적 없이는 이 중 한두 과정이 탈락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것이다. 아이를 데려오라는 말은 말 그대로 아이를 만들어서 데려오라는 뜻이다. 나는 그런 일을 해낼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남은 생 전부를 아이들 뒷바라지와 가계를 꾸리는 데 쏟아붓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보상을 해주는 일도 아니었다. 결혼은 한다손 치더라도 아이를 갖는 것은 조금은 다른 일이 아닐까. 이런 고민도 없이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네 부모님은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셔.”

 황당했다. 나를 부모도 없는 자식으로 만들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천륜인데 천륜, 하늘이 내린 연인데 우리 엄마 아빠가 왜 너를 더 좋아하니.”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듯했다. 부아가 치밀었지만 이런 것을 가지고 다툴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나한테 따로 문자도 해주시던데.”

 귀를 의심했다.

 “우리 엄마가 연락하면 불편하지 않아?”

 “별것 아니야. 생일이라고 축하 메시지랑 이모티콘 보내주신 거야. 네 생일 때도 이런 거 보내주셔?”

 그녀가 보여준 휴대폰 화면에는 귀엽게 생긴 양 한 마리가 목장을 뛰어놀며 콩그레츄레이션을 외치는 이모티콘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한테는 가족 대화방에서 한두 줄 말로만 건강하게 지내라는 것이 전부였는데.

 어머니가 나보다도 그녀를 더 좋아한다는 것은 사실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들만 둘이 있다 보니 평소 이야기를 할 상대가 없다며 투덜거리는 게 어머니의 버릇이었다. 아름이가 불편하지 않다니 다행이었지만 괜히 나는 두 사람이 따로 연락망을 유지하는 것이 썩 좋지 않았다. 드라마를 보면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에 끼인 남편의 모습이 클리셰처럼 나오는데 나는 아직 결혼도 하기 전인데도 어머니와 여자친구 사이에서 무시당하고 있지 않은가.

 “불편하면 말해. 자주 연락하지 말라고 전할게.”

 “아니, 괜찮은데. 그런 말 좀 하지 마 제발. 생일이라서 연락하신 건데 도대체 뭘 들은 거야?”

 꿍한 마음에 카페의 다른 테이블로 고개를 돌렸다. 저마다의 이야기에 빠진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보지 않았다. 비슷한 나이대에 비슷한 이야기들, 똑같은 고민과 마찬가지의 인생 과업들. 이제는 그런 것들에 싫증이 났다.

 “결혼을 꼭 해야 할까?”

 “그걸 내 앞에서 고민하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서야 말을 잘못 꺼냈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한테나 말할 것을 그녀에게 해버렸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애썼다.

 “지금도 우리가 이렇게 잘 지내는데 결혼 준비니 뭐니 해서 또 돈은 들어갈 거고, 조금만 있으면 애까지 낳으라고 압박까지 들어올 텐데.”

 갑자기 그녀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너랑 같이 살 거라고만 생각하고 지금까지 만나왔는데 이제 와 네가 이렇게 말하면.”

 “어허, 그런 게 아니고.”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읊어댔다.

 “우리가 만난 시간이 몇 년인데 그동안 나는 늙고 예쁜 시절 다 지나서 홀랑 버려지면 그만이지만 자기는 남자니까 아주 자신만만하네.”

 다행히 나를 놀리는 것이었다. 차라리 충혈되었으면 좋았을 새하얀 눈자위와 검은 눈동자가 희롱이라도 하듯이 그녀의 옅은 미소 위로 떠올랐다.

 “나도 걱정이 돼. 돈도 그렇고 부담도 있고, 가족이 늘어나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야.”

 “여러 번 말했지만 내 가족은 너랑 나야. 나는 우리 부모님까지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내가 남자라서 그런가?”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겠어. 아무튼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혹시라도 어머니한테 가서 아름이한테 자주 연락하지 말라는 둥 이딴 이야기하면 죽을 줄 알아.”

 놀이공원에 나온 아이처럼 아이스 초코에 꽂힌 빨대를 쭉쭉 빨아당겼다. 고개를 들자 어느새 엄마 미소를 지은 그녀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문제가 나한테까지 진지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어. 연애를 할 때만 해도 그냥 너랑 있는 게 좋아서 지내왔으니까.”

 “다들 겪는 일이잖아.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잔 테두리를 훔치는 그녀의 손가락이 머뭇거리는 말끝을 가려주었다. 오래 봐왔기에 나는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선택을 하려는 것이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아니고. 너랑 사는 것 말고는 다른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혼은 다른 문제 같아. 우리가 같은 집에서 함께 사는 거랑 결혼은 정말로 다른 일 같아.”

 “당연하지.”

 그녀가 눈을 흘기며 손을 내밀었다. 차가운 잔을 쥐고 있던 탓에 그녀의 손바닥에 닿은 손끝이 시려왔다. 그녀를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 양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등에 대고 비비기 시작했다.

 “때 나온다.”

 “때 안 나와.”

 오후의 거리는 시끌벅적했다. 저녁 장사를 준비하려고 길가에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를 내려놓는 가게 직원들의 모습이 창밖으로 지나갔다. 나는 모두가 활발히 움직이는 이 시간대의 도심지를 좋아했다. 지금 이곳에 있으면 내 모든 감각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생각은 방금 지나간 사람이나 멈춰서 다투는 사람들 사이의 말로 쏟아져 내가 모르는 새로운 일을 상상하게 했다. 그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

 그에 비하면 결혼과 육아란 죽은 사람의 삶이 아닌가. 헤어질 때 위자료나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외에 결혼 제도가 한 연인에게 주는 이득이란 무엇이 있을까. 법이라는 창끝으로 바람을 피우지 못하게 위협하는 것 말고 결혼의 의미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심지어 아이는 나한테 의지까지 하려고 한다. 월급도 못 벌어오는 녀석이 남은 삶의 에너지와 재산을 모두 자기에게 쏟아붓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아직 내가 대답하지 않았잖아.”

 “뭘?”

 “왜 결혼하려는지.”

 “아, 빨리 말해봐. 잊을 뻔했네. 그렇게 가르쳐줘도 자꾸만 말을 더듬고 생각에 잠기기만 하면 어쩌자는 거야.”

 “중요한 일이니까 그러지.”

 “오늘 서운한 거 벌써 몇 개 있었는데 자꾸 이러면 한 번에 다 터트려 버릴 거야.”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녀는 작정하면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와 결혼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너랑 결혼하려는 이유는 직장이 생겨서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서도 아니야. 나이가 들어서는 당연히 아니고. 물론 그럴 나이가 됐지만 아무튼.”

 “계속해봐.”

 그녀는 웃으며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웃게 해서 행복했다.

 “내가 너랑 결혼하려는 이유는 너를 사랑해서야. 삼 년 동안 너를 만나며 너 없이 사는 삶을 상상하기가 어려워졌어. 이렇게 나랑 말이 잘 통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은 여지껏 없었거든. 너와 먼 미래를 계획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지금 내 삶에 더 소중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녀는 감동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내가 한 말이 그렇게 의미 있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남자라면 으레 여자친구에게 이런 말쯤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하면 돼.”

 정말 사랑해서 결혼하는 걸까. 왜 사랑하면 결혼해야 하는 걸까. 더러는 사랑하지 않고도 결혼을 하는데, 사랑하면서도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그녀와 두 손을 맞잡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오후의 햇살을 등지고 걸어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연인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그나 그녀의 손을 쥐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나 그녀가 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라는 것을.

 왜 결혼하는 걸까. 왜 결혼을 해야 하는 걸까.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말은 올바른 대답이 아니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한 이유는 그래야만 그녀가 웃어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기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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