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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Mar 18. 2022

어떤 술자리





 사랑한다는 말(A Word)



 4. 어떤 술자리



 “형은 담배를 안 폈나?”

 “피운 적이 없지.”

 “한 번도?”

 “술자리에서 친구 걸 빌려서 빨아본 거 한 번?”

 “어땠어.”

 “어땠긴, 기침하면서 돌려줬지.”

 전자 담배를 문 기호가 표정을 찌푸렸다. 그게 녀석이 웃는 방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로 독일제 수입차들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어떤 바보 같은 자식이 전동 킥보드를 도로 쪽에 세워놔서 지나가는 차들이 모두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전동 킥보드를 길가로 빼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나가며 힐끗거리거나 우리처럼 가게 앞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도 저걸 치우지 않으니 밤새 길이 막히겠다, 그치?”

 “뭘요?”

 기호는 전동 킥보드를 보던 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엠블럼을 살피며 가격을 따지고 있었다.

 “저건 중고로 잘 사면 삼사 천이면 되는데.”

 “사게?”

 “그냥 그렇다는 거죠. 형은 차 안 바꿔요?”

 “바꿀 일이 뭐 있냐. 굴러만 가면 되지.”

 “신기하게도 형은 차 욕심이 없네. 주변 애들은 다들 원하는 모델이 하나씩은 있던데.”

 “너는 뭘 갖고 싶은데?”

 녀석이 또 얼굴을 찌푸렸다. 즐거운 상상을 하는 듯했다.

 “벤틀리?”

 “담뱃값 아껴서 사보자.”

 이번에는 소리 내 웃으며 끝이 다 탄 꽁초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연기가 자욱한 양꼬치 가게 안으로 그가 먼저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내 잔에 연태를 따랐고 그의 잔은 이미 채워져 있었다. 건배도 생략하고 우리는 술을 마셨다. 처음 알았을 때야 매잔마다 건배를 했지만 이제는 그럴 사이가 아니었다. 어느덧 밤이 추워지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형이 결혼을 다 하네.”

 마음이 무거워졌다. 왜 저 말만 들으면 부담스러워지는 걸까. 괜히 흡입구를 내려서 불씨를 살렸다. 숯불에 붙은 재 찌꺼기들이 바람에 휩쓸려 은빛 환기구 속으로 사라졌다. 금세 달아오른 열기가 우리의 얼굴을 달구었다. 사우나에서 인생을 보내는 중년의 아저씨처럼 나는 그곳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와 내 쪽으로 번갈아 놓은 양꼬치가 한 방향으로 굴러갔다. 그들은 끝에서 잠시 멈추더니 이내 시작한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또 굴러가고 돌아왔다. 끝없는 반복이 그들의 일생이었다. 한 걸음도 숯불 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검게 타들어갈 뿐이다. 저들과 나 사이에 다를 것이 있을까. 대답할 말이 없어서 나는 그만 울적해졌다.

 기호는 내 기분을 눈치챈 듯했다.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 그가 여자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연애 이야기는 매번 들어도 새로웠다. 이번에는 또 어떤 사람을 만났을지 궁금했다.

 “어떻게 만난 사람인데?”

 “소개팅 어플 써 봤어요?”

 고개를 저었다.

 “신세계에요. 필요한 게 있는 사람만 사용하니까 솔직하기도 하고요.”

 “가까운 데 있는 사람부터 추천해주는 거야?”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요. 운 좋게 저는 가까운 데 사는 친구랑 이야기가 잘 되어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봐요.”

 “만나면 뭐 하냐.”

 그의 눈이 딴 곳을 향하자 나도 씨익하고 웃었다.

 “여자랑 남자랑 특별히 할 게 있겠어요? 카페 갔다가, 영화 봤다가, 자고.”

 “괜한 걸 물었네.”

 익은 꼬치를 골라내 거치대에 올렸다. 기름이 떨어질 때마다 숯불은 타들었다 식어가기를 반복했다. 조금씩 재 찌꺼기들이 숯 주변에 엉겨 붙기 시작했다.

 “어차피 오래 만날 건 아니니까요. 걔들도 그렇게 진지하게 뭘 하려고 어플을 쓰는 것은 아니거든요. 솔직히 서로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다 알고 하는 거겠지?”

 “당연하죠. 그거 쓰는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적당히 식은 꼬치를 집어서 젓가락을 대고 고기를 빼냈다. 앞접시에 떨어진 고기 아래로 노란 기름 자국이 배였다. 고춧가루와 쯔란 위로 한 점을 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들러붙는 향신료의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양고기의 노린내는 어느새 맡을 수 없을 만큼 희미해져 있었다. 어쩌면 술에 취하기 위해서 고기를 먹는 걸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양꼬치 같은 것은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어때?”

 “깊은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아니라서. 걔가 먼저 연락할 때도 많아요.”

 “외로워서 그런 거겠지?”

 “외롭다기보다는.”

 그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몸이 원하니까요. 형도 그럴 때가 있잖아요, 땡길 때. 진지하게 만나는 분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안 하시겠지만 저는 그렇거든요. 아직 깊이 만나는 사람은 없지만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것은 외로움과 분명 구분되는 것이었다. 욕구가 맞는 사람과 잔다고 해서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내 빈 곳을 채워주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모든 욕구가 해소되는 것도 아니니까.

 결혼이 해소해 줄 수 없는 욕구가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그것은 한 사람을 향한 성실과 배려, 충실한 마음가짐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결혼이 한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필요 없는 것이자 필요 이상의 것이었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누구의 것도 아니고 아직 누구도 소유하지 않은 그가 부러웠다. 그는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았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무언가에 매여 있었다. 그것은 나를 자제시키고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일순간의 흥분으로 섣부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내 앞을 가로막았다.

 “너는 지금이 좋아?”

 막 양꼬치를 추가로 주문한 그는 내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한 듯했다. 열심히 꼬치 굽기에 열중하던 그가 내 시선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가게 안은 점점 더 시끄러워졌다. 소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더 큰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혼자서 자유롭게 지내는 게 좋냐고.”

 “나쁘지 않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약간 중독된 것 같아요. 근데 형은 만날 분이 이미 정해져 있잖아요.”

 그는 나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 소개팅 어플로 만난 섹스 파트너 이야기를 하며 신나게 떠들던 그가 갑자기 저런 자세로 말을 잇는 것이 이상했다.

 “뭘 잘못 생각하는 거 아냐?”

 마치 시장판처럼 소란스러워진 가게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아무튼 부럽다고요.”

 “나는 네가 더 부럽다고.”

 내 마지막 말은 가게 안의 소음에 가려 그에게 들리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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