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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Mar 21. 2022

어떤 사랑





 사랑한다는 말(A Word)



 5. 어떤 사랑



 “오빠는 어떤 사람이 좋아?”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너 같은 사람이 좋지.”

 “그런 거 말고 솔직하게.”

 정말 솔직해도 될까. 눈치를 살폈지만 아무래도 아닌 듯했다.

 “키는 나만 하고, 약간 까무잡잡한 얼굴에 어깨가 좀 있는 사람?”

 “나 말고 말이야.”

 슬슬 짜증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속도를 줄이며 살짝 눈을 돌리자 이미 그녀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죽고 싶어?”

 내게 이상형이란 게 있을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이상형을 두고 사람을 만난 적은 없었다. 이상형이란 건 말 그대로 이상형이니 세상에 없는 것이 아닐까. 이상형이란 걸 말해보자면 연예인도 그 기준에는 맞추지 못할 것이 아닌가.

 “정말 네가 이상형인 것 같은데?”

 “됐어.”

 안도의 한숨을 쉬며 깜빡이를 켰다. 이차선으로 피하자마자 뒤에서 상향등을 켜고 시위하던 녀석들이 쏜살같이 내 옆으로 지나갔다. 제한 속도 팔십 킬로로 정속주행을 시작했다. 분당에서 돌아오는 길은 막히지 않아서 좋았다.

 “너를 데리러 가는 길이 제일 좋아.”

 대답이 없기에 돌아보니 삐진 듯이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네가 이상형이라니까. 만나는 사람이 이상형이지 다른 게 뭐가 있겠어.”

 “나 만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이 이상형이었구나.”

 그녀는 전생에 자객이거나 연쇄 살인마였으리라. 저격수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누군가의 숨을 멎게 하는 사람이었음은 분명하다. 이것도 내 업보일까.

 “그 사람들 이야기 좀 해봐. 어떤 사람이었는데? 그럼 나 만나기 전에 이상형을 알 수 있겠네.”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 여자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그럼 내 이상형은 논리적인 여자가 아닌가. 유레카라도 외칠 기세로 그녀를 보았지만 그런 농담이 먹힐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너 전에는.”

 반짝이는 두 눈이 내 입술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주 나쁜 년이었지.”

 금세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나도 오빠 전에는 나쁜 놈이었어. 자꾸 대답을 피하니 수상하네. 이러면 끝까지 물어볼 거야.”

 “사랑한대도.”

 “아니, 그거 말고.”

 그 말을 좋아하면서도 그녀는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우리는 청담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햇살이 물결을 따라 흩어진 한강의 풍경이 우리의 양옆으로 펼쳐졌다. 말을 멈춘 그녀가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흔들리는 물살과 쏟아지는 바람을 따라서 강물은 쉼 없이 흘렀다. 그녀가 강을 보는 걸 좋아했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허벅지에 놓인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녀를 사랑해서 좋았다.

 “결혼하는 게 부담스러워?”

 흥분이 사그라지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녀가 내 감정까지 책임지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해결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나름의 책임감을 보이려 한 말이었지만 뜻밖에도 그녀의 표정은 쓸쓸해 보였다.

 “그게 나한테 남 일이 될 수는 없잖아.”

 “나도 알아. 알지만 너한테 떠넘길 수는 없어.”

 차마 나오지 못하고 목 끝에서 걸린 것이 있었다. 머뭇거리다 그 말을 해버렸다.

 “이건 내 몫이야.”

 “어떻게 그게 한 사람 몫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울고 있었다. 그녀가 왜 우는지 몰라서 내 머릿속은 하얘져 버렸다.

 “어떻게 그게 한 사람 몫이야.”

 어쩔 줄 몰라 하며 급히 성수 쪽으로 차를 돌려 강변북로를 빠져나왔다. 인적이 드문 길가에 차를 세웠지만 그녀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수납장을 뒤져서 휴지를 찾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겨우 찾아낸 것은 주유소에서 받은 얇은 물티슈백 하나였다.

 “이거라도 쓸래?”

 “아이씨.”

 어쩔 수 없이 젖은 물티슈로 눈가를 닦는 그녀의 손 밑으로 씰룩거리는 입가의 근육이 보였다.

 “울다가 웃으면.”

 “그만해.”

 운전석에 앉은 채로 그녀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렸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예전에 해결했어야 할 일인데 아직까지 끌고 와서 너를 힘들게 해 미안해.”

 “정말 모르는구나.”

 그녀가 다 쓴 물티슈를 건네자 나는 그것을 받아서 수납장 한 틈에 구겨 넣었다. 아직은 잠긴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이토록 오래 만났어도 우리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무슨 말을 해도 내 부족함만 드러날 것 같아서 대답하기를 그만두었다. 내 말을 기다리던 그녀가 그것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하던 말을 이었다.

 “가자. 너무 늦으면 길 막히잖아. 오빠는 길 막히는 거 싫어하잖아, 그치.”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피식하더니 다시 내 손을 잡았다. 한참을 울어 혈액순환이 잘 된 탓인지 그녀의 손은 아까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또 장난을 치려다가 억지로 참았다.

 “오빠는 가이드를 해줄 사람이 필요해.”

 “혼자서도 잘해.”

 “그럼 평생 혼자서 잘해보든가.”

 나를 팽개치는 그녀의 손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결국 그녀의 손을 찾아냈지만 그녀가 내어주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나를 잡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의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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