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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Mar 23. 2022

어떤 마음





 사랑한다는 말(A Word)



 6. 어떤 마음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들숨과 날숨, 그 쉼 없는 반복이 우리를 살게 한다. 뛰는 심장이 이곳에 머문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그것들 외에 우리의 삶을 증명해줄 무언가가 있을까. 반만 내려둔 블라인드 밑으로 거리의 네온사인 불빛이 비쳤다. 그 불빛은 파랗고 빨갛고 노랗게 변하며 내 쪽으로 돌아누운 그녀의 빈 어깨를 물들였다. 민소매 속옷 밖으로 튀어나온 그녀의 팔이 창밖의 불빛을 따라서 변색되고 있었다. 그것은 살빛이었다가 핏빛이었다가 물빛으로 변했다. 만일 그녀가 지금 눈을 뜬다면 그녀에게 보일 내 낯빛도 창밖을 따라서 변하고 있을 것이다.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은 정말 이것뿐일까. 나는 창틀에 비친 불빛을 보며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삶을 생각했다. 원인으로만 사는 사람들, 그저 태어났기에 사는 사람들. 이유 없이 나타나서 목적 없이 사라져 가는 삶을 생각했다. 그것은 너무 비참하고 슬픈 것이어서 나조차도 그렇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 삶에 예외는 없었다. 누구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구의 삶에도 목적이 없으며 단지 원인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시끄럽게 떠들며 지나가는 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살아짐 당하는 것이지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으로 우리의 삶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이제는 우리라는 단어조차 내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내 삶은 무엇으로 정당화될 것인가. 일상을 사랑하는 삶은 나뭇등걸의 삶이다. 차라리 저 불빛 사이로 뛰어내린 사람이야말로 자유로운 존재다. 어리석은 꿈을 품고 사는 사람들보다 내가 더 나은 것이 있을까. 모은 돈을 저축하는 사람보다 매일 한 장씩 복권을 사는 사람이 더 행복했다. 우습게도 삶의 비밀이란 그런 것이었다.

 사랑하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희망이 없는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평범한 이들의 사랑은 끝없는 출근과 퇴근을 예정할 뿐이었다. 우리는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난하다는 증거였다. 누군가는 기꺼이 결혼한다는데, 기꺼이 아이를 낳는다는데. 우리의 결혼에는 낭만이 없고 아이는 현실이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창밖을 노려보았지만 그곳에는 네온사인뿐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없었다. 책임이 없는 자유가 부러웠다. 그 일을 다 해내야 한다. 사랑도 욕망도 아쉬움도 모두 내가 견뎌야 한다.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았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을 통과하려면 무언가를 양보해야 했다. 선뜻 양보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을 얻을지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미 바라는 것을 그녀로부터 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화, 이해, 인내, 배려와 사랑. 나는 그녀로부터 모든 것을 얻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놀이공원 기념품점에서 상자 하나를 쥐고 악을 쓰는 아이처럼 버티고 있었다. 이미 오래 전 불꽃놀이는 끝났는데 떠미는 사람들 틈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다. 그때에도 내 곁에 그녀가 있어 줄까.

 그녀의 코를 보았다. 입술을 보았다. 귓가에 난 털을 보았다. 귓불에 난 솜털을 만졌다. 아기 냄새가 나는 그녀의 가슴 사이로 숨었다. 잠에서 깨지 않기를 바라며 그녀의 몸을 안았다.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리라. 누구에게도, 어디로도 그녀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 곁에 누운 여자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 말고는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 삶을 지켜내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까. 지금의 여유를 결혼식장에서 반납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얀 장갑을 낀 어머니와 아버지, 장인과 장모. 그들의 일상이 우리의 삶에 경계 없이 침범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 가족은 그녀와 나뿐이었다. 그녀는 모두를 보살피겠지만 나는 그녀만 보살필 것이다. 내가 인지할 수 있는 가족의 범위는 아내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 아직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리도 쉽게 떠오르는 아이들이라는 단어. 부모가 된다는 일. 남은 인생은 마치 폭력배처럼 내 삶을 강탈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루씩 늙어가는 삶은 빼앗길 것밖에 남지 않은 불행한 인간의 뒷모습이었다. 집을 사려고 저축하는 우리의 삶이 보였다. 아이의 유모차 브랜드를 올리기 위해서 맘카페를 뒤지는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 끝에서 다시 하얀 장갑을 끼고 마치 장례식을 하듯 내 아이를 결혼시키는 나와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삶도 우리와 같을 것이다. 그래서 내 어머니 아버지도, 장인과 장모도 엄숙한 표정으로 예의를 차리는 것이다. 이 삶의 희로애락을 겪을 이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그 모습에 이르러서 나는 잠시 삶의 의미를 되찾은 듯했다. 끝이 없는 순환과 반복, 세대의 이어짐과 뒤늦게 이루어진 앞선 이들에 대한 이해.

 그럼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이 한순간의 뭉클함을 이끌어 내니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값싼 감동으로 자신을 속여가며 남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가?

 다른 길이 있었다면 그곳으로 갔으리라.

 “뭐해.”

 나도 모르게 힘주어 안은 탓인지 그녀가 잠에서 깨어 있었다. 졸린 듯한 눈가로 아직 덜 지워진 반짝이가 보였다. 손으로 지워주려고 했지만 잘 떨어지지 않았다.

 “뭐 묻었어?”

 모든 것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화장실에 가려는 듯 일어나는 그녀가 안은 내 팔에 눌려서 끙끙거렸다.

 “놔 줘.”

 웃으며 그녀를 놓자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살폈다. 그녀도 손으로 문질러보지만 여의치 않은 듯했다. 이내 포기하고 돌아와서 내 곁에 누웠다. 이번에는 그녀가 내 허리를 잡아당겼다.

 “집에 가서 떼야겠다.”

 “벌써 시간 됐나.”

 “아홉 시쯤 되지 않았을까.”

 휴대폰을 보니 어느덧 열 시를 넘은 시간이었다.

 “가야겠다. 먼저 준비할 테니까 조금 더 누워있어.”

 그녀가 일어선 나를 잡아서 침대에 뉘었다. 생각보다 강한 힘에 움찔했다.

 “조금 더 있다가 가자.”

 “너 생각보다 힘이 세다.”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반에서 싸움 제일 잘했는데.”

 화려한 과거를 회상하던 그녀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초등학생 때는 남자애들보다도 강한 힘과 큰 키를 자랑하던 그들을 떠올리며 나도 옛 기억을 떠올렸다. 주로 장난을 치다가 얻어맞는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나도 여자애들한테 엄청 맞고 다녔어.”

 “오빠는 맞을만하지.”

 “이유 없이 때렸다니까.”

 “맞을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한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며 다시 시간을 살폈다.

 “너 진짜 가야 해. 지금 출발해야 사십 분쯤에 도착할 거야. 그래도 이 시간이면 길은 안 막히겠다.”

 “좀 더 있자고 해도 자꾸 보내려고 하네. 그래, 가자. 가버리자.”

 기지개를 켜는 시늉만 하며 일어나지는 않았다. 포기하고 혼자서 나갈 준비를 했다. 바닥에 떨어진 팬티를 주워 입고 양말을 신었다. 청바지와 후드티, 남색 바람막이를 걸치자 얼추 옷차림이 갖추어졌다. 차 키를 주머니에 넣고 한 손에 휴대폰을 쥔 채 신발장 앞에 섰다.

 “그래 봤자 내가 안 가면 그만인데.”

 그녀가 베개 아래에서 양말을 찾아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더니 밖에 있던 내게 소리쳤다.

 “밑에 속옷 좀 찾아줘.”

 “벗긴 기억이 없는데.”

 “그랬나?”

 “씻고 나올 때부터 없었던 것 같아.”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화장실로 들어간 그녀가 선반에서 구겨진 속옷을 찾아냈다. 그녀가 옷을 입을 동안 나는 좁은 원룸의 한쪽 벽에 기대어 있었다. 자는 방과 주방이 나뉜 것으로도 사람들은 투룸이라고 소개했다. 이것이 기만적이라는 걸 아는 이들은 분리형 원룸이라고 불렀다. 다시 생각에 잠긴 사이 그녀가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 됐다.”

 돌아갈 준비를 마친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서 차로 향했다. 항상 가는 길의 노래는 그녀가 틀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휴대폰보다 그녀의 휴대폰을 빨리 잡아내는 자동차 블루투스가 이상하게 느껴지던 터였다. 이번에도 녀석은 나를 무시했다. 청량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가벼운 비트와 함께 그녀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듣네. 누구 노래야?”

 “윌로 스미스, 웨이러 미닛.”

 “간절한가 보네.”

 “뭘 잘못하지 않았을까.”

 강변북로로 빠지는 큰길가에 접어들었다. 그녀를 보내는 길은 막히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 말을 할까 했지만 옆에서 리듬을 타는 그녀의 몸짓이 우스워서 그저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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