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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Mar 25. 2022

어떤 생각





 사랑한다는 말(A Word)



 7. 어떤 생각



 아파트 후문 언저리에 차를 세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내 볼에 입을 맞추었다. 뒤늦게 입술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모르는 척했다.

 “너무 자주 키스해주면 안 된대.”

 “훈련시키는 거야?”

 “묶었다 풀었다 하는 거지.”

 그리고는 내게 입술을 가져다주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몸으로 손이 들어갔다. 키스를 하다 만 그녀가 조수석 끝으로 도망쳐 내 손을 벗어났다. 사냥에 실패한 엽사처럼 아쉬워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집에서 많이 만졌잖아.”

 “차에서 만지면 또 느낌이 달라.”

 “난 갈 거야.”

 버튼을 눌러 잠긴 문을 열었다. 평소보다도 늦은 시간에 도착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렇게 늦어도 돼?”

 “우리 엄마는 이제 나 신경 안 써. 동생 안 들어오는 거만 족치고 있어.”

 동생 이야기를 하며 웃는 그녀의 눈썹이 가로등 빛에 희게 물들었다. 매일 같이 보는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미소는 항상 아름다웠다. 조수석에 앉아서 앞을 보며 딴 생각에 빠진 그녀의 얼굴은 나로 하여금 말을 걸게 하고 손을 뻗게 했다. 나를 다가서게 하는 힘은 그녀에게서만 나왔고 나는 그런 본능에 충실하게 행동했을 뿐이다. 사랑에 비밀이 있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사랑에는 진실뿐이었고 용기와 솔직함이 필요할 따름이었다. 그것들 외에는 거추장스러운 포장지에 불과했다. 벗기고 나면 버려야 할 것들, 오래 간직해도 별 의미 없는 것들.

 그때 나는 부엌 찬장에 숨겨둔 편지통을 떠올렸다. 어릴 때부터 받아온 편지를 넣어둔 작은 편지통. 그 통에는 나름의 봉투에 담긴 편지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그들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잠시나마 지나간 추억에 젖는 일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으리라.

 “내 말 듣고 있어?”

 방금까지 그녀가 하던 이야기를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동생이 늦게 들어온다며.”

 “그건 아까 지나갔고, 내 친구 유안이가 이제 막 입국해서 시댁에 일주일 동안 머무를 예정이란 말이야.”

 그녀의 페이스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언제 이야기가 거기까지 흘렀단 말인가. 날카로운 눈초리를 바보 같은 웃음으로 흘려보내며 못 들은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그래서 오는 주말은 걔랑 놀아야 할 것 같아.”

 주말에 지혜를 보기로 한 것이 떠올랐다.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오랜만에 친구들이나 보지 뭐.”

 “태영이? 형진이?”

 “걔들 말고 누가 있겠어.”

 말을 얼버무렸지만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저번에 본 후배는 누구였지? 이름이 특이했는데.”

 “기호, 유기호.”

 “왜 요즘은 친구들 만난 이야기 안 해줘? 예전에는 가서 뭐하고 놀았다 무슨 이야기했다 시시콜콜 다 말해주더니.”

 “그냥 사는 이야기나 하는 거지.”

 그녀도 더 묻지 않았다. 일어나기 전 그녀가 나를 불렀다. 차가운 손이 다가와서 내 뺨을 어루만졌다.

 “잘 들어가.”

 “조심히 가, 졸지 말고.”

 오솔길로 이어지는 작은 문 너머로 그녀가 멀어졌다. 어느 정도 걷다가 멈춘 그녀가 돌아서 손을 흔들었다. 나도 그녀가 볼 수 있도록 창가로 몸을 숙여 한 손을 뻗었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남은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결혼하면 이렇게 헤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집으로 보낼 때의 아쉬움도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감사하게 여기지 않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곁에 머무른 그나 그녀가 실은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결혼이란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 배경이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곁에 있고 집에 머무르며 하루의 안부를 물어주는 일. 그것은 내일을 약속하지 않을 때 더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유달리 격조 높은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느끼는 감정의 깊이가 남들보다 더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인적이 없는 도로를 가로질러 유턴을 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동부간선도로로 차를 올려야 했다.

 앞 유리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비는 금세 가랑비에서 소나기로 변했다. 움직이는 와이퍼가 빗물을 튕겨낼 동안 뜻밖에 도로로 향하는 길목에서 길게 늘어선 차들을 발견했다. 한 바퀴씩 굴러가는 차들은 어디서부터 정체된 건지도 모를 만큼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한 뼘도 안 되는 틈을 두고 다닥다닥 붙은 채로 누구 하나 끼어들지 못하도록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오솔길 너머로 사라지며 끊긴 블루투스는 내 휴대폰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듣던 노래를 틀고 싶었지만 대부분 내가 모르는 제목뿐이었다. 내가 아는 노래라고 해봐야 브라운 아이즈, 브라운 아이드 소울 같은 것밖에는 없었다.

 취향이 어울린다는 것은 하찮은 일이었다. 더러는 노래로 어울리고 영화로 어울렸지만 그런 것은 사랑의 이유가 되지 않았다. 이런 생각에 이를 때마다 나는 내 안에 숨은 사랑의 기운을 느꼈다. 그것은 이유 없이 떠올라 목적이 되어 주었다. 산다는 것이 원인뿐이라면 사랑한다는 말에는 목적을 이루는 힘이 있었다. 사랑은 이유를 묻지 않고 오로지 방향만 제시할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것이 없는 삶에서는 아무런 목적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멀찍이 보이는 터널 끝으로 도로 공사에 쓰이는 거대한 기계가 보였다. 교통량이 적은 밤 시간을 골라서 온 듯한데 운도 없이 이리 된 것이다. 빗줄기는 그칠 기색이 없었다. 그것은 내 귓등을 두드려 잠들지 못하게 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들리는 그 소리가 나를 더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했다.

 거치대에 올려둔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 화면으로 잘 들어갔냐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평소 같으면 이미 도착할 시간이었다. 바로 답장을 하려다가 잠시 미루었다.

 집을 사고 유모차를 검색하는 삶을 경멸한 기억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허무하게도 그들이야말로 삶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었다. 우리가 함께 잠들 집, 우리의 방, 우리의 침대, 우리의 아이를 앉힐 무언가. 슬프게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질 내 삶의 목적이었다. 그것이 결혼이고 생활이고 여생이었다. 나는 그것들에 몸 바쳐 살아가야 한다.

 오늘 그녀를 데려다줄 때 나는 행복했다. 옆에서 아무렇게나 추는 그 춤이야말로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오늘 그녀와 헤어질 때 나는 외로웠다. 지금도 옆자리에 누군가 있어야만 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내 결핍과 사랑의 증거일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그리움 속에서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불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여전히 느슨하게 결속되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초조하고 외롭게 만든다. 그래서 빈틈없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어찌할 수 없는 논리적 귀결로 나는 한 가지 사실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루어진 결혼은 행복을 약속하지 않을 것이다. 연애는 행복하지만 결혼은 그렇지 않았다. 모든 연애는 행복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결혼이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온전히 행복한 관계에서 불행할지도 모를 관계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주사위 던지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결혼은 내게서 행복까지 앗아가려 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행을 견디게 할 것이다. 서로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관계가 끝날 것이다. 사랑은 목적이 될 것이기에, 결혼 또한 원인이 아닌 목적이므로 마땅한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 필요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택한 것이었다. 결국 가진 것을 내놓을 수밖에 없으리라.

 이 긴 생각을 내가 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내린 결론을 받아들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시간 가까이 서행한 도로에서 나는 결혼이 연애의 연장이 아님을 알았다. 그것은 새로운 삶이었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관계였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인 불행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느끼는 자유로움과 희망, 기대, 아쉬움, 그리움, 외로움, 심지어 행복마저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비로소 결혼은 막연히 꺼리는 것에서 진실로 두려운 것으로 변했다. 마치 그걸 해낼 것처럼 행동해온 게 미친 짓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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