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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Mar 16. 2022

어떤 대화





 사랑한다는 말(A Word)



 3. 어떤 대화



 “이 시간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일까요.”

 “우리도 그러고 있잖아요.”

 “누가 봐도 우리는 직장인이고, 저 사람들 말이에요.”

 조 대리가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머리를 맞대고 각자의 휴대폰만 보는 연인, 친구의 이야기를 대충 흘려들으며 건너편에 앉은 여자를 몰래 훔쳐보는 남자, 바테이블에 앉아서 창밖을 구경하는 여자 둘, 지난 주말 클럽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는 남자 하나와 그 친구들 셋까지 훑어본 조 대리가 내게로 눈을 돌렸다.

 “마음에 안 들어요?”

 “어떻게 이 사람들은 이렇게 놀 수 있죠?”

 “우리가 알 게 뭐에요. 왜 이리 요즘 까칠해지셨을까.”

 나 혼자 툴툴대며 반쯤 남은 커피잔을 들었다. 아직도 점심시간은 이십 분이 더 남아 있었다.

 오전에 온 전화 이야기를 꺼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남들이 알아서 좋을 것은 없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요?”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생각에 빠진 나를 두고 조 대리가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 때문에 그러시는구나.”

 맥이 풀렸다.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결혼 때문인데, 마음이 싱숭생숭하네요.”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녜요?”

 그녀가 정곡을 찔러버렸다. 이런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 입사하자마자 가까워졌던 것이다. 직설적인 그녀의 화법은 능구렁이처럼 책임을 피하고 눈앞에서 입에 발린 말만 늘어놓는 밉상들에게 큰 효과를 발휘했다. 나 대신 속 시원히 할 말을 해주는 그녀가 없었더라면 직장 생활은 더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어요. 사랑하는데, 왜 결혼하는 걸까요.”

 “제가 정답을 알았으면 딱 말해줬을 텐데. 저도 결혼을 안 해서 모르겠네요.”

 “조 대리님 친구들 있잖아요. 많이들 결혼했을 거 아녜요. 그분들은 왜 하셨대요.”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대답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기는 한데, 내 편이 생겨서라고 대답하는 애들이 있고 안정감이 생겨서라고 말하는 애들도 있어요. 솔직히 특별한 이유를 찾아서 결혼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때가 되고 조건이 맞으니까 하는 것 같은데. 마침 좋은 사람도 곁에 있고 하니.”

 “연애할 때도 내 편이었을 거 아녜요. 그때도 변함없이 안정감을 주니까 결혼까지 생각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이미 그런 걸 충분히 누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러게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입에 빨대를 물었다. 나도 모르게 추궁한 것 같아서 재빨리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렇게 보면 결혼한다는 건 전부터 이 관계에서 누려오던 걸 조금 더 분명히 약속받고 싶다는 의미겠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요.”

 지나가듯이 던진 그녀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아름이한테 미안해요. 이제 와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어요. 그리고 결혼을 하기 싫은 게 아니라 결혼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이에요.”

 “이유가 없으면 안 해야죠. 나중에 가서 말하는 것보다는 지금 말하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아예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뚜렷한 이유 하나가 있었다.

 “아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걔가 바라오던 건데 이렇게 내가 모르겠다고,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아름 씨의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 셈이죠.”

 기분이 우울해졌다. 막연히 알고만 있던 걸 남의 입으로 한 번 더 확인하자 내 마음은 금세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다른 사람이 생긴 것은 아닐 테고, 감정은 그대로인데?”

 지혜가 떠올랐지만 그녀 때문은 아니었다. 그 전화가 오기 전에도 나는 이미 결혼을 주저하고 있었다. 나는 그 둘을 분명히 갈라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여전히 아름이를 좋아해요. 이상하게도 내가 결혼이란 걸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 친구 중에도 그렇게 깊이 고민하고 결혼한 사람은 잘 떠오르지 않아요. 남 대리님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아무튼 어떡해요? 아름 씨만 불쌍하게 됐네.”

 또 나를 놀리는 조 대리의 농담에 투덜거리자 그녀가 웃으며 빨대로 얼음 조각들을 휘젓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로 부딪치고 긁히는 얼음 조각들은 좁은 플라스틱 컵 안에 갇혀 서로를 갉아대고 있었다. 그들은 빠져나갈 길 없이 서로 엉키고 부대끼며 투명한 물빛으로 한데 녹아내릴 뿐이었다.

 “나는 지금도 아름이를 사랑하고 아름이의 편이에요. 아름이 말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준 적도 없고요. 속궁합은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어요? 규칙적인 게 중요하지 합이 맞는 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나는 이미 보통 여자들이 결혼으로 얻고자 하는 걸 아름이에게 주고 있는데 왜 그걸 한 번 더 약속하기 위해서 결혼해야 하죠? 그렇다고 해서 약속을 어길 수 없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결혼을 하고도 그렇게 바람을 피워대는데.”

 “지금이야 남 대리님이 그렇게 충실하지만 나중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안정감이라는 건 그런 약속의 더해짐과 두 분이 함께 보낸 충분히 긴 시간으로 뒷받침되는 게 아니겠어요? 아름 씨의 마음까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보통 제 친구들은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무언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과제를 이루어낸 느낌? 부모님과 친구들과 지인들 앞에서 그런 역할을 해내는 단계로 넘어갔다는 걸 인정받는 기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결혼하고 나서도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정작 하고 나서는 꼭 결혼이란 걸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모두 한 번쯤은 결혼해본 거 아시죠?”

 대번에 튀어나오는 그녀의 대답에 나는 빈 잔을 놓고 피식거렸다.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은 다녀오는 게 좋겠네요.”

 “오긴 어딜 와요. 가서 그곳에서 잘 살아야지.”

 어느덧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우리는 반납구에 컵과 쟁반을 정리해두고 카페를 벗어났다. 사무실 건물까지는 두 블록을 더 가야 했다.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는 커플 한 쌍이 우리의 곁을 지나갔다. 나는 그들의 여유가 돈에서 오는 것인지 나이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그건 그들도 모를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조 대리는 내게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하며 주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도 한참을 머뭇거렸다.

 “아름 씨 마음을 아프게 할 게 두려워서 그 이야기를 숨기면 안 돼요.”

 사무실로 향하는 문 앞에서 그 말을 곱씹을 동안 그녀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의 말뜻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내가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는 쉽게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이유를 아는 척한 게 부끄러웠지만 사실 내가 한 행동은 그녀를 속이는 것이었다. 잠깐의 감동으로 대답을 피한 것이 내가 한 일이었다. 양옆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지나갈 동안 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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