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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Apr 25. 2022





 사랑한다는 말(A Word)



 20. 길



 내가 걷던 길은 가로등 사이로 이어졌다. 노란 불빛은 나더러 밟으라는 듯이 녹색 보도블록을 비추었지만 나는 그 테두리로만 돌고 있었다. 슬픔은 한참 전에 가셨고 나는 그 이유를 찾는 일마저 포기한 상태였다. 분명 이 감정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알아낼 자신조차 없었다. 무언가에 쫓기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미 그런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내가 선택한 일만 책임지고 싶었다. 그런데 누군가 나 대신 선택을 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보잘것없었고 평범했다. 내게는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녀와 내 삶도 그렇게 일상적으로 나타나 사라질 뿐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살아갈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사람과 결혼할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을 텐데. 아무도 기념해주지 않을 텐데.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작 이런 삶을 살자고 사랑한다는, 함께 하자는 약속을 요구하다니. 어떻게 이런 삶에 다른 누군가의 인생까지 끌어들일 욕심이 났을까. 아무것도 부끄러워하지 않고서.

 하지만 어떤 이에게 결혼은 이유를 물을 것이 아니었다. 이미 답을 내렸기에 그에게 결혼은 어떻게 해나갈지의 문제에 속했고 누구와 할 것인지가 중요했다. 어쩌면 왜 결혼하는지에 관한 질문은 이미 모두가 속으로 대답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자연스럽게 아름이와 나 사이에 서 있는 둘이나 셋쯤의 아이를 그려온 것처럼 나도 이미 답을 내리고 혼자 두려워했던 걸지도 모른다.

 어느덧 가로등이 사라지고 횡단보도가 보였다. 좁은 도로를 따라서 차들은 내 앞을 오가지만 그 어디에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인도의 끝에 붙어선 나를 향해 경적을 울릴 동안 나는 그저 멈춰 선 사람의 모습을 닮은 붉은 신호등을 보며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우리는 왜 서로를 선택했을까. 내가 그 정도로 믿음직스러웠을까. 내가 그녀에게 필요한 모든 확신을 아낌없이 주었던 것일까.

 나는 왜 그녀를 선택했을까. 느닷없이 찾아올 불행을 예고하고 시련을 받아들일 준비를 요구하며 결국에는 자연스러운 마음의 움직임마저 견뎌야 하는 이 일을 어떻게 그녀와 함께하려 했을까.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서로를 선택했지만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것은 오랜 시간과 기다림, 서로를 향한 신뢰와 각자의 인내가 더해져 생겨난 것이었고 만약 누군가 그것을 말이나 글로 풀어낼 수 있다면 아마도 거짓에 더 가까울 것이다.

 왜 사랑하느냐는 좋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마음먹은 결혼에 이유를 묻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에 이미 한 사람과의 삶이, 그 사람과의 아이들이 그려져 있다면 그에게 결혼의 이유를 묻는 것은 한번 내린 대답을 되풀이해보라는 의미일 뿐이지 않을까.

 나는 왜 그 사람인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그리도 어려운 일을 해내려는 까닭을 묻지 않고 비로소 그 일을 함께해내려는 그 사람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섰다. 결혼은 누군가와 함께일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는 그 사람과 함께 하기에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위태로운 확신에 가까운 마음이 결혼일지도 몰랐다. 지난 몇 주간 내가 해온 고민은 잘못된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을까.

 신호가 바뀌고 사람들 한둘이 길을 건너 사라질 동안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깜박이는 불빛을 보았다. 내가 그리던 미래의 삶에 조금씩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떠하든 분명히 그려져 있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히려 마땅히 그 삶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에 불필요한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쓸모없는 고민과 두려움을 안겨줄 뿐이었다. 결혼에 대한 이유를 물으면서도 나는 내 마음에 선명하게 그려진 그녀와 나,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을 외면했다.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이유를 요구하고 변명을 찾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방법이지 이유가 아니었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누구와 함께라면 그 삶을 이룰 수 있을까.

 그녀는 왜 나를 선택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이 모든 일을 예정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바뀐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명쾌했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들과 오랜 시간이 서로를 가리키고 있었고 우리는 여기에도 질문을 던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결혼을 고민해온 것은 내 두려움 때문이었다. 결혼에 이유를 물어온 것은 그저 내가 그것을 걱정하고 어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을 해내려면 너무 많은 것을 잃어야 했기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삶의 모습을 그리며 내가 그리로 가야하며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답을 알면서도 재차 질문을 던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내가 처한 현실과 납득할 수 없는 분노가 계속해서 내게 질문을 던지게 했다. 하지만 누구도 대신 대답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세상은 계속해서 내게 대답을 요구해왔다. 어떻게 할 것인지, 누구와 함께 해낼 것인지, 정말로 그럴 자신은 있는지를 말이다.

 결혼은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용기를 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결혼보다도 사람을 선택했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결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아무나 사랑할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 또한 그랬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결혼이 아니라 서로였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결혼이라는 일에 함께 해줄 서로가 필요했다. 사랑은 우리 가운데 있었고 내게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랑은 우리의 일이었고 나나 그녀의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는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었다. 내게는 한 사람이 필요했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분명했다. 그럼 나는 왜 머뭇거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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