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종 Apr 27. 2022

사람들





 사랑한다는 말(A Word)



 21. 사람들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휴대폰에 뜬 영상과 사진들은 이미 다 본 것이었다. 아무리 화면을 내려도 새로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려면 아직도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노래를 틀었지만 이미 들은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울리는 음악은 내 마음과는 너무 달라서 나는 그만 휴대폰을 덮어버렸다.

 누구의 책도 읽고 싶지 않았다. 내 속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나 노래는 나를 설명해줄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나는 전적으로 무기력했다.

 내게도 감정이란 것이 있을까. 어떤 이들은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언어가 그 증거였다. 그들은 말이나 글로 그들의 감정을 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게도 그런 것이 있을까. 자기 감정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특권이었다. 그런 힘을 가진 이들이 부러웠다.

 내 삶에는 하염없는 불만과 매일 같이 되풀이되는 낙담, 반복되는 일상밖에 없었다. 삶은 좀처럼 기회를 보여주지 않았고 내가 쏟아부은 노력과는 무관히 약속된 대가만을 돌려줄 뿐이었다.

 나는 삶을 통제하지 못했고 내 감정이나 의견도 가지지 못했다. 누군가 텔레비전이나 영상에 나와서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면 거기에 마음이 이끌리며 잠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이 내 감정이었다.

 누군가 말이나 글로 세상을 비판하고 올바름에 관한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면 나도 거기에 동의하며 그런 견해를 가진 것처럼 행세했다. 그것이 내 의견이었다.

 나는 특별하지 않았고 감정을 표현할 말이나 의견을 내세울 능력도 권위도 없었다.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로만 존재하는 대중이었다. 누구인지 모르고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어디엔가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통계에 잡혔다는 의미일 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어줄 만한 것이 없었다. 나는 가난한 축에 속하지 않았지만 내 삶은 빈곤했다. 나는 유명하지 않았고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옮겨 나르며 서로의 화젯거리로 삼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바로 그 옮겨 나르는 사람들에 속했다.

 어떻게 이런 삶을 서로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나와 함께 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한 사람의 용기로 극복될 수 있는 일일까.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걸음 나아가서 그녀에게 손을 뻗는 정도로 해결될 일일까.

 내 얼굴을 향해 주먹질을 하고 싶었다. 내 무능력이 너무 밉고 싫었다.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삶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분노하게 했다. 내 안에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계속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나를 몰아세웠다. 나는 그에게 변명하려 했지만 단 하나도 내게 유리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부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구차한 일이었다. 그저 나는 무능했고 달리 방어할 수단이 없었다. 나는 내면에서부터 철저히 무너졌다. 삶을 재건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기력했다. 나는 이길 수 없었다. 내 삶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다른 수많은 이들처럼.






이전 20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