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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Apr 29. 2022

결혼





 사랑한다는 말(A Word)



 22. 결혼



 “목소리가 많이 가라앉았네.”

 내 왜소함과 자신 없음을 어떻게 하면 좋은 말로 포장할 수 있을까. 그녀는 내 심정을 이해해줄까. 부족한 부분만 보여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녀가 그동안 품어온 기대가 깨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은 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별일 없었어.”

 내 말을 믿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대안도 없이 그런 말을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의도도 분명하지 않은데 어떻게 아무런 말이나 그녀 앞에서 내뱉을 수 있을까. 결론이 없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너는 어땠어.”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익숙한 말투로 하루 내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매일같이 하던 것처럼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녀의 말이 끝나고도 한참을 조용히 있던 나는 내가 말할 차례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몸이 안 좋아서 반차를 냈어. 집에서 쉬려는데 조금 걷고 싶어서 사무실 옆에 있는 절에 잠시 다녀왔지. 나이가 있는 여자분들이 많더라고. 수능 시즌이라서 그런가. 벤치에 앉아서 그 모습을 보는데 자원봉사자 한 분이 와서 커피를 건네주는 거야. 당연히 믹스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절에서도 아메리카노를 돌리더라. 그리고 집에 돌아왔지.”

 “수능 때 우리 엄마도 어디 바위 한번 다녀오셨는데.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이모랑 같이 어느 산에 있는 큰 바위에 다녀왔다고 했어. 효험은 그다지 없었던 것 같지만.”

 십수 년이 지나서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고등학생 시절과 수능, 갓 대학에 입학하던 때의 초라한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는 한동안 통화를 했다.

 “논술 학원을 갔는데 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떨어진 거야. 결국 재수하겠다는 두 명만 빼고 나머지는 다 같은 델 들어간 거지. 그 둘은 원하는 곳에 갔지만 부럽지는 않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재수하거나 초과 학기를 다닌 게 모두 인생 낭비처럼 느껴져.”

 “일찍 나오는 것도 좋지. 직장에 다니면서 배우는 게 훨씬 많아. 학생 때는 어차피 그 수준에서 겪는 일이니까.”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덧 잘 시간이었다. 전화를 끊기에 앞서서 그녀가 다시 내게 물어보았다.

 “아까 맨 처음 전화할 때는 왜 기분이 안 좋았던 거야?”

 “지금은 괜찮아졌어. 몸이 안 좋아서 그랬나 봐.”

 “말 안 해주면 나는 몰라. 네가 먼저 이야기해야 해.”

 마음 한편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내게는 대안이 없었다. 결론도 없었다. 그냥 하소연이었다. 그런 걸 어떻게 그녀 앞에서 꺼낼 수 있을까.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그냥 감정만 드러내는 일을 누가 좋아해 줄까.

 “괜찮아. 얼른 자. 나도 곧 잘게.”

 이내 통화가 끊기고 휴대폰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창밖에서 들어온 불빛이 천장을 비추고 있었다. 이불을 덮어도 나는 추웠다. 떠들썩한 소리가 지나고 고요가 찾아올 때쯤 내려둔 휴대폰을 다시 집어 올렸다. 그녀와의 통화 기록에는 우리가 오십 분 동안 대화했다는 사실이 표시되어 있었다. 무슨 할 말이 있어서 그리도 오래 이야기를 했을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몇 번 이어진 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랑 이야기하다 방금 들어왔어. 무슨 일 있구나.”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흉내 내고 싶었다.

 “너는 두려운 게 없어?”

 그녀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는 자신이 없어. 너무 무섭고 힘들어. 나는 너한테 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네 삶을 특별하게 해줄 수도 없을 거야.”

 내 모습이 멍청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마저 할 말을 해야 했다.

 “바보 같은 약속들 말고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지만 나는 너무 두려워. 사랑하는데 너무 두려워.”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울음이 나왔다.

 “미안해.”

 “괜찮아.”

 이제 뭐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제 다 했어?”

 “아까부터 네 말을 기다리고 있었지.”

 “이게 대답이 필요한 거였어?”

 휴대폰 너머의 그녀가 웃었다.

 “나한테 물어본 게 아니잖아. 자기 혼자만 이야기해놓고.”

 나는 떨떠름했다.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거야?”

 “질문이 아닌데 무슨 대답을 해. 아무튼 잘 들었어. 네가 무서워하는 건 잘 알겠어. 너무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잘 될 거야. 지금처럼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한 단계씩 지나가게 될 거야. 혼자서 다 하려고 하면 어려워.”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대답 안 해?”

 “무슨 대답?”

 “내가 말한 거에 반응이 있어야지.”

 “수긍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어.”

 “전화로 내가 어떻게 알아.”

 “알겠어.”

 “그래.”

 당당한 자세로 그녀는 말을 마쳤다. 나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잘은 몰랐지만 아무튼 방금의 이야기는 끝난 것 같았다.

 “엄마랑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결혼하면 이제 떨어져 살아야 하는데 벌써 삼십 년을 그렇게 지내왔으니 보고 싶어서 어떡하냐, 어차피 집에 늦게 와도 문자 하나 안 보내면서 뭘 보고 싶다고 거짓말을 하냐, 그래도 딸자식 둔 부모의 심정을 네가 알기는 하냐.”

 주절대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시간은 또 쏜살같이 흘렀다. 천장을 비추던 노란 불빛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엄마랑 더 놀다 자겠네.”

 “몰라. 알아서 먼저 주무실 것 같은데.”

 전화를 끊으려던 그녀가 잠시 머뭇거렸다.

 “가을인데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생각해둔 곳이라도 있어?”

 “유안이가 한국에 있는 동안 여기저기에 다녀왔더라고. 순천만에 갈대밭이 있는데 거기도 좋았대.”

 “가보지 뭐. 날짜만 맞춰서 하루씩 휴가 내면 되잖아.”

 “금요일이나 월요일 껴서?”

 그녀는 금세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날짜는 나중에 맞추기로 하고 우리는 전화로 여행지를 결정했다. 결국 또 운전은 내가 해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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