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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May 02. 2022

변한 것





 사랑한다는 말(A Word)



 23. 변한 것



 “좋은 일이라도 있나 봐?”

 “왜 그런 생각을 하셨죠.”

 “얘가 또 따지듯이 묻네. 아니 표정이 어제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폈는데? 몸은 왜 안 좋았던 거야.”

 “모르겠어요. 몸살인지 무기력증인지. 혹시 이런 식으로 반차를 쓴 것에 은근한 압력을 가하시는 거라면.”

 “그만하자.”

 강 차장은 내 상태가 정상이라는 것만 확인하고 돌아가 버렸다. 카누 스틱 두 개를 들고 탕비실로 향하는 내 뒤로 조 대리가 따라왔다.

 “제 것도 하나 타주세요.”

 “조 대리님은 카누 안 마시잖아요. 거름망 같은 거에다 내려 드시지 않았어요?”

 “드립백 말하는 거죠? 새로 주문하는 걸 깜박해서 없어요.”

 돌아가 스틱을 더 가져올까 하다가 귀찮은 마음에 그만두었다. 오늘의 내 커피는 묽게 타기로 하고 그녀에게 종이컵에 담긴 커피 한잔을 건넸다.

 “한잔하세요. 감사합니다.”

 “제가 타달랬는데 왜 남 대리님이 감사하다고 해요?”

 “이상하죠? 어제 반차 내고 옆에 있는 절에 갔는데 거기 있던 자원봉사자분도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커피 한잔 건네고,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가는 그녀의 뒤로 그날의 풍경이 떠올랐다.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그 일은 분명 내 마음에 변화를 일으켰다. 그것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뚜렷한 형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조금은 장면 같기도 하고 약간은 분위기인 듯도 하며 기분이나 감정 같기도 한 무언가였다. 혹시나 싶어서 조 대리에게 말해보았지만 그녀 역시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요즘 변한 것 같아요.”

 “제가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많아지고, 불평불만도 많고. 예전이랑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

 생각이 많아서인 것 같다고 대충 둘러대며 자리로 돌아왔다. 옆에 앉은 그녀가 업무에 열중할 동안 나는 지난 몇 주간의 일을 돌이켜보았다. 내가 바뀐 걸까. 바뀌었다면 언제부터 바뀐 걸까. 그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금요일 연차를 내자 빛의 속도로 강 차장이 모니터 옆으로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향해 눈을 돌렸다.

 “개인적인 사유라는 게 어떤.”

 “여행입니다. 미래의 배우자와의 가을 여행입니다. 순천만 습지로요. 아주 소중한 사람입니다. 둘도 없는 사람이지요.”

 그녀가 멍하니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던 일들만 잘 정리해놓고 다녀와. 그때는 별일 없을 것 같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별일 없겠지?”

 “요즘 들어 자꾸만 사무실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 같네요. 좋은 자세가 아닌데.”

 “법률이 정한 권리입니다. 마땅히 사용해야지요. 다들 바쁠 때 후다닥 다녀오겠습니다.”

 “함께 하는 정이 있어야 하는데 남 대리님은 그런 게 없어서 아쉽다.”

 “괜히 있어봤자 걸리적거리기만 할 텐데 제가 잠시 사라지는 게 효율적인 일 처리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조 대리도 나를 이겨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모두가 바쁠 때 나 혼자만 잠시 여유를 찾은 때였다. 이 시기를 놓치면 별다른 일도 없이 자리만 차지한 채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시간을 흘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럴 단계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근무가 끝나고 퇴근하는 시간이었지만 조 대리는 여전히 일어날 생각도 없이 자리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집에 가려다 말고 일에 열중하는 그녀에게 슬그머니 질문을 던졌다.

 “소개팅 어플은 써 봤어요?”

 “아, 그거.”

 조 대리가 화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적당히 꾸며서 올리니까 금방 메시지가 오던데요? 근데 아직 답장은 안 해봤어요. 왠지 모르게 걱정스러워서.”

 “역시 먼저 행동하는 건 남자 쪽이겠죠?”

 “당연하죠. 저를 어떻게 보시고. 저는 기다렸다가 선택만 하는 게 좋아요.”

 “부럽네요. 저는 살아오며 먼저 행동하도록 훈련받은 터라.”

 “관심이 있으면 남자가 먼저 해야죠. 거절은 제 몫이지만.”

 나는 우리 사이에 흐르던 묘한 기류가 약간은 흩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먼저 들어갈게요. 적당히 하시고 퇴근하세요.”

 “적당히 하면 대신해주기라도 할 거예요? 아무튼 잘 가세요.”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출입구에 카드를 찍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미 한 차례 퇴근 행렬이 지나간 터라 엘리베이터 안은 한산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이미 해가 져 있었다. 어두운 하늘 아래로 불이 켜진 빌딩과 사람들이 북적이는 호프집이며 족발집, 음식점들이 보였다. 다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그 풍경에 속해 있다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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