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배우자가 외도를 할 경우 남은 상대가 받는 스트레스의 수준은 가족이 사망한 정도라고 한다.
내 정신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처참히 죽었고 내 몸은 내가 정해놓은 루틴에 맞춰 겨우 움직이고 있다. 긴급구조가 필요한 비상상황. 영혼 없이 움직이는 좀비와 같은 나.
새 아파트로 이사 후, 이사초기에는 기존 짐들을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회사와 육아, 그리고 집정리를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아이 아빠가 지한이를 볼 때는 송장처럼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잠만 자기도 했다.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전남편을 대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의 눈을 마주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눈이다. 수도 없이 사랑을 속삭였던 입술이다. 온 마음을 다해 안아줬던 몸이다.
순식간에 잃어버린 사랑의 절망은 우물과 같았고, 그 때문에 나는 그에게 아이에 대한 이야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소소한 하루의 일상과 감정은 그에게 공유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대하는 태도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본인이 피해자처럼 군다. 그 자신도 본인이 외도를 했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나고 견딜 수가 없어서 나를 보면 위축이 된다고 했다. 매일 밤 잠이 오지 않고 공황장애가 생겨 정신과 약을 먹는단다. 정신과 약을 먹음에도 그는 매일 밤 알 수 없는 사람들과 모임을 가지고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다녔다. 매일 새벽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거실 밖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토악질 소리, 변깃물이 내려가는 소리, 코 고는 소리에 내 세상은 잔잔해지기는커녕 계속 끔찍이도 어지러웠다.
우리 집에는 피해자가 둘이 있었다.
그랬다. 우리는 서로 피해자였다.
사실상 누가 하나라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회복될 수 없는 관계다. 깨진 신뢰를 오로지 아이를 위해 다시 연결하는 것, 그 하나만을 위해 달려가야 하지만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남편이 말을 걸어온다.
'저녁 먹으러 갈까?'
'아니 나는 괜찮아. 지한이랑 둘이 다녀올래?'
'당신도 어차피 저녁 먹어야 하잖아. 나가서 같이 먹고 들어오자.'
더 거절하기도 싫었으며 사실 그 당시 배도 고프기도 했었고 엄마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지한이게 미안하기도 해서 단란한 가정 코스프레라도 해보자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지한이의 양손을 하나씩 맞잡고 셋이서 단란하게 저녁을 먹으러 갔다.
집 앞 맛있기로 소문난 고깃집에 들어가 지한이의 유아 의자를 빌리고 내 옆 자리에 둔다. 지한이는 보통 계란찜을 잘 먹는데 오늘은 입맛이 아닌지 잘 못 먹고 있다. 딱히 나도 배가 많이 고프진 않아 적당히 먹고 있는데 남편이 고기를 추가로 시킨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가 싫다. 그가 먹는 모습이 달갑지 않다.
'나 용서해 줄 거야?'
갑자기 들려온 그 문장에 나는 굳었다.
그때였다. 이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시점이.
더 이상 싸우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은 닫혔고 닫힌 마음을 풀기 위해 일말의 노력조차 하지 않은 남편의 입에서 용서란 단어가 나온다. 이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뭐가 어찌 됐던 아이를 위해 같이 붙들고 살아보자고 고민한 일 년 반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찰나에 마음정리가 된다.
그래 지한아빠. 우리 이제 그만 이혼하자.
서로 놔주자.
그동안 우리 서로 지독히도 힘들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