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격무 후 가까스로 이어진 퇴근이다. 요 며칠은 저녁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야근이 이어지고 있다. 허기에 빠른 걸음으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이 와중에도 문득 우리의 벚꽃사진이 생각난다. 차에 앉아 검은색 가방 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고 사진첩에 들어간다. 벚꽃나무 아래서 환히 웃고 있는 우리 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꽤나 어울리는 한쌍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체가 비슷한 우리 둘.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서로를 닮아있어 사랑스러운 마음이 피어오른다. 그저 그 사진 속 그때로 다시 돌아가 또다시 손잡고 학교를 거닐고 싶은 그런 마음.
'준영씨 나 퇴근~~~~'
퇴근길에는 종종 준영씨와 통화를 하곤 한다. 보통 그 시간에 준영씨는 저녁 준비를 하거나 이현이와 놀고 있거나 하는데 오늘은 이현이와 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
'세연씨~ 일 잘 마무리했어요?
뭣 좀 먹었어? 배고프죠.'
'너무 배고파요ㅠ 진짜 모든 다 먹어치울 수 있을 거 같아 ㅎㅎㅎ'
'ㅎㅎㅎ 나는 지금 이현이랑 파스타 만들어서 먹고 있어요.'
'아아 그럼 어서 먹어요. 이따가 시간 될 때 연락 줘요~.'
'아니에요. 지금 방으로 잠깐 들어왔어요.'
'응? 밥은?'
'난 다 먹었지. ㅎㅎㅎ 이현이는 먹고 있고.'
'아~ 같이 안 먹어줘도 되는 거예요? ㅎㅎ'
'그럼 이현이 혼자 잘 먹죠.
엣헴. 지한이와는 다르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누나라고요.'
육아는 본인이 선배라며 으스대며 말하는 귀여운 준영씨. 오늘 나의 퇴근길 하루도 준영씨 덕분에 달콤하게 저문다. 사랑의 힘이란 세상의 참 많은 것을 부드럽게 만들고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퇴근길 이 짧은 전화에 회사격무로 지친 체력이 빠짐없이 회복되는 듯하다.
단지 아쉬운 건 이 길의 끝에 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내가 도착하는 집에 그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다. 함께 있으면 온몸이 부서지게 행복하다가도 돌아서면 그새 어딘지 모르는 우리의 결승점에 마음이 어둡다. 우리의 목표지점은 어디인 것일까.
이 사랑의 종착지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세연씨 다음 주 면접교섭이잖아요. 뭐 할 거예요?'
'나? 나는 준영씨와 시간도 좀 보내고 친구들도 만나고 그러고 싶은데요.
준영씨 시간 언제 돼요?'
'음 나는 토요일 오후시간 괜찮을 거 같아요.
일요일은 이현이 봐주고. 어때요?'
'좋아요~ 우리 그럼 영화 보러 갈까.
나 보고 싶은 영화 생겼어요.'
'오~~ 좋죠. 영화 뭔데요?'
기분이 좋아진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주차장에서 영화관 어플을 찾는다. 들뜬 마음으로 보고 싶었던 영화를 예약하며 영화관에 갔었던지가 참 오래되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다.
전남편의 그 사건 이후로 그저 일상의 소소한 데이트를 강제로 못하게 된 지도 몇 년이 지났다는 것을 말이다.
가슴속 공기가 적막하게 가라앉는 느낌이다. 눈 아랫부분부터 따듯한 무언가가 스며 오른다.
일상이 내게 돌아왔다.
일상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