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혼했습니다.

#28

by Liz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준영씨와의 문자가 매끄럽지 않은 느낌이다. 나는 촉이 꽤나 좋은 편이라 미세한 변화와 뉘앙스를 잘 캐치하는 편인데 지금 무언가가 이 사람 마음속에 있다. 제발 이 불편한 마음이 오래가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내 잘못된 예감이길.


'준영씨 오늘 점심은 뭐예요?'


'오늘은 운동하고 간단히 순댓국 먹으려고요.

사실.. 아까 산책했는데 꽃집에 꽃이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서프라이즈로 세연씨 회사에 꽃배달하고 싶었어요.'


'아 정말? ㅠㅠ 감동이야.'


'응 그런데 그러면 안 되겠죠?

세연씨 회사사람들은 아직 이혼사실을 모르니까'


아.. 이 지점이다.

이게 불편했구나 이 사람.


나는 12년 차 직장인이다. 입사 후 몇 번의 부서이동이 있었고 몇 번의 이직제안이 있었으나 회사를 옮기는 선택은 하지 못했다.


이직을 생각하면 늘 무언가가 두려웠다.

이 안정감을 뒤에 두고 새로운 길을 또다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도전을 해볼까 하지 말까 고민하던 중 운명처럼 지한이 아빠를 만나 결혼을 했고, 내 몸이 십개월간 아이를 품다 어떤 생명체를 낳았고, 지금의 회사를 다니는 도중에 이혼을 했다.


그러나 준영씨는 다르다.


현재 준영씨는 프리랜서로 부동산업을 하고 있다. 주변에 이혼사실을 알리는 것도 현재 삶에 대해 공유하는 것도 아무래도 어떤 체계 안에만 살아왔던 나보다는 조금은 편할 것이다.

나는 남의 눈에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괜한 이혼사실로 회사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어떤 이야깃거리를 그들에게 남기는 것이 불편하다. 이혼이 어떠한 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도 아니지 않나 싶었다. 그저 내가 먼저 앞서서 주변사람들에게 신나게 알릴 사건은.. 적어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준영씨 내가 회사에 얘기하지 못해서 많이 불편하죠?

우리 만나서 얘기해요.

찾을 수 있을 거야. 뭔가 우리가 서로 편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거.'


업무 중 창밖을 바라보니 오늘은 꽤나 날이 좋았다. 친구와 점심 메뉴를 고르다가 문득 지금의 날씨를 최대한 즐겨야 한다 싶었다. 조금 걸어서 삼청동 근처로 나와 점심을 먹자고 하고 들어갈 음식점을 신나게 찾는 중에 기분이 좋은 친구를 옆에 두고서 나는 준영씨의 문자를 받았다. 이후로는 점심이 말 그대로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수준이다.


이런 무거운 이야기가, 이혼 전에는 고민거리였던 적이 없었던 그런 이야기가, 앞으로도 참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고민들이 한 움큼의 우박처럼 내게 돌진하겠구나 싶었다. 그 결정체들이 새로 만난 대상자를 아주 신나서 사방으로 때려주겠구나 싶었다. 괴롭지만서도 내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이 고민이 도대체 왜 나의 고민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뜨거운 국물을 기계처럼 마시며 또 나는 그런 생각에 빠진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져 나는 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전혀 하고 싶지 않았던 이런 거지같은 경험 말이다.


만약 삶이 어떠한 도화지 위에 있는 게임이라면 도전자들은 이미 정해져 있던 퀘스트를 깨 가며 또 다른 퀘스트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늘의 나는 몇 번의 퀘스트를 성공했을지 모르겠다. 도착 지점으로 가기 위해 지금 가는 길이 지름길일 수 있는 건지, 아니면 혹시 이미 잘못된 길을 택한 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테이크 아웃잔에 담긴 커피를 시원하게 한 번 흔들어보았다. 얼음들이 맞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낸다. 짜증 나고 갑갑한 상황을 테이크아웃잔에 풀어내며 친구에게 내 감정을 감춘다. 커피잔을 시원하게 흔들어보며 속 시끄러운 소리를 밖으로 끄집어낸다.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나도 나의 사회생활이 있을 뿐이라고 속으로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입장이 이해가 되기에 그저 풀어내지 못한 이 마음이 답답하다.


프리랜서답게 소셜미디어 활동을 충실하게 하는 준영씨.

아마 그는 나와의 연애도, 나와의 이야기도 그의 소셜미디어에 당당하게 밝히고 싶을 것이다. 본인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캡션에 가득가득 눌러 담아 표현하고 싶을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현재의 나와는 할 수 없는 일이라 그도 그 나름대로 갑갑한 까만 벽에 부딪혔음을, 속이 많이 상했을 것임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숙제는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