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왔어요?'
퇴근 후 달려간 그의 집 현관 앞에서 그를 와락 안았다.
'보고 싶었어.'
한숨 가득히 그의 냄새를 담는다. 보고 싶었던 준영씨의 냄새. 내가 선물해 준 향수의 향이 폐 속으로 은은히 퍼져 들어온다. 사랑하는 그의 냄새와 내가 애정하는 튜베로즈의 내음.
내가 오는 동안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다는 준영씨. 그가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듯 말하며 내 손을 잡고 식탁으로 이끈다.
잠시 소란했던 마음은 뒤로 하고 지금은 이 좋은 사람을 내가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짜잔~ 오늘은 연어덮밥이에요.'
잘생겼는데 요리도 잘하고 심지어 다정한 이 남자.
콩깍지가 서서히 벗겨지면서 점점 단점이 보이겠지만서도 지금은 그저 지금을 있는 그대로 힘껏 즐겨보자는 마음의 나다.
식사를 마치고 오늘 점심에 있었던 일을 꺼냈다.
‘준영씨, 내가 회사에 말하지 않아서 서운하죠?
회사에 당당하게 못 오고 점심도 같이 할 수 없고..'
‘솔직히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이번엔 단순한 서운함은 아니야. 사실은..'
‘응 뭔데요.
무슨 일 있었어?'
‘사실 며칠 전에 친구한테 전화를 받았어요.
우리 영화 보러 간 날 있잖아. 그때 친구의 지인이 나를 봤더라고. 유튜브로 나를 알고 계셨던 거 같은데 마침 세연씨를 건너 알고 있는 사람이었나 봐요.'
‘아..?'
‘그 사람은 세연씨가 이혼했는지 모르니까 세연씨가 아이도 있고 결혼한 사람인데 나와 다정하게 데이트를 하는 게 당연히 이상했겠죠.
마치 우리가 당당히 불륜을 저지르는 것처럼 보였을 거야.'
‘아.. 그랬구나.. 준영씨..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친구한테 영화관에 간 적이 없다고 얘기했어요. 세연씨도 불편한 상황이 생길 것 같았거든.. 그때는 그게 최선인 것 같았어.’
멍해진다.
정신이 까마득해진다.
그와 내가 누군가의 시선에는 부정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인지하지 못했다.
밖에서 누가 날 알아보겠나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좁고 서울의 도심 한복판은 상상이상으로 더 좁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나는 우연히 곳곳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치기도 한다. 그런데 준영씨의 경우는 유튜브 때문에 알아보는 사람이 더 많다. 그의 채널이 커질수록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준영씨를 위해 주변인들에게 ‘나 이혼했어요’라고 편하게 밝히고 다닐 수 있을까.
그를 위해 나만의 사회에 이혼이라는 굳이 필요 없는 정보를 던져 여러 숙덕거림을 감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아니.. 필요라기보다 그게 과연 현명한 일일까. 미래의 나와 미래의 지한이를 위해서 말이다.
심지어 그는 나의 남자친구다. 아직 우리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이혼 후 각자의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 이현이는 나의 존재를 알지만 지한이는 준영씨의 존재를 모르지 않나. 언제 소개해 줄 생각이었는지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지한이에게 아빠가 아닌 다른 어른 남자를 엄마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언제 어떤 마음으로 시도할 수 있을지 나도 모른다.
이건 너무 위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내가 끝까지 나의 이혼사실을 주변에 편히 알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매우 자명하다.
희뿌옇고 불안한 마음인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너무 사랑하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