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과정에서 언젠가까지 '100'이라는 수는 완벽하게 큰 수다. 그래서 개수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개 아이들은 '100개보다 더요?'하고 묻는다.
지난 제주 여행길,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아이는
"엄마, 택시는 비싸지? 한 100만 원쯤 해?"하고 물었다.
기사님이 아이의 말이라 이해하며 들으시겠지, 하면서도 나는 왠지 모르게 아이가 계속 100만 원이라는 금액을 묻는 것이 민망했다.
아이들에게 '경제'교육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에는 용돈 먹는 호랑이가 생겼다. 아이들은 저금통에 작은 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돈을 어디에 쓸지, 언제부터 돈을 쓸 수 있는 건지에 대해서는 나와 아이들 모두 생각해보지 못했다.
몇 주 전, 아이는 학원에 다녀오는 길에 혼자 빵집에 들러 가족이 먹을 빵을 직접 사 오는 경험을 했다. 갑작스러운 시도라 나는 아이에게 현금과 카드 중 무엇을 줘야 할지, 현금을 준다면 얼마를 줘야 할지 빠르게 결정해야 했고 첫 시도가 편리해야 아이가 자신감을 가질 것 같아 카드를 줬다. 그날 아이는 가족의 취향에 맞는 빵 4개를 사 왔다.
"엄마, 근데 이거 살 때 쫌 떨렸어. 근데 잘 사 왔어?"
떨림의 고백과 아이의 뿌듯한 표정이 전해져 덩달아 나도 뿌듯해졌다.
다른 날, 방학이라 심심하던 터에 나는 아이들에게 제안한다.
"돈 쓰러 갈까?"
둘은 직접 현금을 써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 저금통에서 만원씩을 꺼낸다.
돈을 꺼내며 둘째는 "너무 많아. 이거 다 쓰는 거야?" 하며 묻고 첫째는 "그거 10개랑 만원 하나랑 같은 거야"한다.
첫째는 주머니에, 둘째는 가방에 돈을 정리하여 넣는다.
"근데 돈이 있으니까 불안해. 잃어버릴까 봐"
"돈이 없을 때는 어때?"
"그때는 괜찮지. 그런데 그때는 원하는 걸 살 수 없지. 그래서 돈이 있는 게 좋은데 주머니에 손을 계속 대고 걸으면 괜찮아.(안 잃어버려)"
걷는 동안, 아이의 손은 겉 주머니에 붙어있다.
각자 만원씩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금액과 물건의 가치를 함께 생각할 기회를 제공했다. 9900원인 천도복숭아를 보고 "너무 비싸. 그러면 백원 남네.", 3890원인 초코과자를 보고 "너무 비싸. 왜 이렇게 비싼 거야?" 하며 물건을 교환하고 남는 금액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되새긴다.
마트를 몇 바퀴 돌고 나서야 아이들은 1000원짜리 음료 각 1병, 700원짜리 요구르트 한줄(5개에 700원이라며 너무나 득템한 표정을..^^), 990원짜리 왕꿈틀이 젤리 한 봉지, 모둠 젤리 봉지 1200원, 3개 묶음 과자 한 세트 3200원(깨알같이 유통기한도 확인), 5700원짜리 크리스피도넛 3개를 샀다. 그리고 각자 2100원과 4110원이 남았다. 짤랑짤랑거리는 동전의 부딪힘이 유쾌하게 느껴지는지 주머니 속 동전의 존재를 알리며 아이는 웃는다. 마트를 나오는 길에 두 아이는 커피가게를 보며,
"커피 한 잔 사줄까?" 하며 엄마의 마음을 녹인다. 마트를 몇 바퀴 돌며 돈을 계산했는지 알기에 아이들을 빈털터리로 만들 수는 없어 커피는 내 돈으로 산다.
집에 돌아와 과자를 정리하고, 남은 잔돈을 호랑이 뱃속으로 다시 넣는 아이의 즐거움이 느껴진다. 어린이 경제교육이 돈을 잘 모아야 하는 교육인 건지, 돈을 잘 쓰는 교육인 건지, 소비는 어느 선에서 절제해야 하는 것인지... 현명한 소비가 어떤 것인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아이들이 자기 돈을 쓰며 느끼는 것들이 성인이 돈을 쓸 때의 마음과 별로 다르지 않음은 알겠다. 그래서 아이들도 자기 돈을 써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각자의 경제관념을 키워가는 것에 경험보다 정확한 길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