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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Jun 16. 2024

오늘은 뭐 해 먹지

먹고사는 문제보다 사랑

남편이 물었다.

집에 맛있는 거 있나?

아들이 물었다.

엄마 오늘 밥 뭐야?

식(食)은 먹고사는 문제라 매우 중하지만

말은 쉽고 행하기도 싶고 단지 해 먹이는 사람만 죽어난다. 


한 끼의 밥상을 위해 치르는 노고는 일종의 전쟁 같은 것이었다.

특히 뭔가 뚝딱뚝딱 만들어 내기가

변비 상황의 대장 운동처럼 힘든 내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장을 보고 재료를 정리하고 다듬고 한 끼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어느 하나 사소한 것이 없다.

씻고, 깎고, 썰고, 치우고, 버리고, 닦아야 한다.

에 들어가 씹고 목구멍으로 넘기면 사라지는 음식들이 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를 거쳐야 하는지 직접 해 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전쟁의 장수 마냥 칼을 빼들고 난 후 칼갈이에 가는 것으로 한 끼의 전쟁을 시작한다.

전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부 경력 18년 차

공중으로 던져진 야채가 12조각 나 내려오는 신공은 보이지 못할지언정 도마 위에 놓인 재료들을 알맞은 크기로 썰어 내는 정도는 가능하다. 

코인육수라는 반가운 신종 msg가 나오면서 그나마 내 요리도 먹고 을 정도는 아니게 되었다.


들을 그릇에 담아내고 식사를 한 후 다시 식사 준비만큼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타일도 닦고 여기저기 널리 양념들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기름과 국물이 튄 인덕션도  닦아 준다. 어질러진 식탁과 주방 곳곳도 정리해 주고 설거지를 하며 마무리를 한다.



나는 한 때 음식을 만드는 것에 부침을 느껴 대량 조리 마인드를 장착한 적이 있었다.

나의 대용량 요리들을 본 아들이 어느 날 물었다.

"엄마 이건 또 며칠 먹어야 해?"

한때 아들은 요리에 재능이 없는 엄마를 만나 

일식일찬 삼일동찬을 경험하게  비운의 남아였다. 요즘도 가끔 있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대용량 요리들은 결국 못 먹고 오래되어 버리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얼마 전 소천하신 할머니가 부엌에서 보낸 세월은 돌아가시기 몇 달 전까지였다.

사는 동안은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매일 사 먹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원치도 않는 일이다.


나이 들어서 까지 무엇을 만들어 먹으며 생명을 부지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지금부터 밥을 제공하는 어딘가를 알아봐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이가 들면 기력이 하여 지금보다 식사 준비가 더 힘들지 않을까?

삼시 세끼 밥이 나오는 곳은 바로 실버타운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의지만 있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패널의 첫마디가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되는 건 아시죠?"였다. 곧 포기하게 되었다.



흘려듣던 '오늘은 뭐 해 먹지?'가 무수한 고민과 번뇌를 집약한 물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밥 한 끼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지친 몸과 마음을 소생시켜 주는 것이

바로 따뜻한 한 끼 밥이다.



한 끼를 위해 들이는 공은 단지 입으로 들어가 씹고 맛보고 위장으로 내려 보내는 물리적 행위에 앞서 정성 가득한 사랑을 담는 과정이 존재한다.


"엄마 배고퐈"

한 마디면 아무리 피곤해도 몸이 자동기립 하는 이유는 설명해 뭣하겠는가?

나는 엄마이기에 따뜻한 밥 한 끼의 중요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설령 먹고 소화되면 그만인 것이라도 수저가 움직이는 그 순간을

먹는 이의 마음은 기억할 것이다.



냉장고를 열어 필요한 재료들을 꺼냈다.

그날 저녁은 김치찌개와 야채 전을 만들었다.

휴일이라 낮에는 김밥도 말았는데 돌아서니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오징어, 애호박, 부추, 양파

아둔한 칼질로 재료들을 썰어 부침 가루에 잘 버무려 부쳐냈다.

제대로 뒤집지 못한 전의 찌그러진 비주얼에 퍽 난감했다.

하지만 아들들은 전과 보글보글 김치찌개가 맛있다며 엄지 척과 함께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그거면 됐다.


엄지 척 김치찌개와 찌그러진 전이 먼 훗날 나를 떠올리게 할 매개체 되길 바라본다.





맛만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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