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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Jun 09. 2024

나잇값 해야 하는 나이

40대의 강박

근처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필요한 것만 몇 개 사고자 들른 마트에서 역시나

소비 요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카트 가득 반찬거리

담아 버리고 말았다.

나오려던 찰나  양념 불고기까지 사람 발목을 잡으니 지나치지 못하고  젊은 직원 앞으로 걸어가 조금만 담아 봐 달라고 요청했다.


때마침 5분 후에 할인 행사를 진행하니 그때 팀장님이 와서 고기를 담아 줄 거라고 했다.

직원은 20대 초반의 어린 남자였고 고기를 달라는 손님을 앞에 세워 둔 게 어색했는지 이말 저말 붙여 보는 초보티 나는 청년이었다.


잠시 후 팀장이라는 사람이 왔다.

팀장 역시 아주 젊어 보였지만 할인 판매 멘트는 랩을 하듯 빨랐다. 

한두 번 할인 판매 행사를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 15분만 30프로 할인된 가격으로 100g에 3850에 판매합니다. 몇 명 드실 건가요? 애들이 큰가요? 무슨 날인가요?

냉장은 일주일 냉동은 이주일 소분해서 드시라고

봉지도 넣어드리겠습니다."


설명하고 묻고 답하고 고기를 담는 이 모든 과정은 찰나의 순간만큼 순식간에 지나갔다.

바로 직원은 저울에 고기를 담아 올렸지만 의도적이었는지 봉지에 가려져 가격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예요?라는 내 물음에 직원은 총가격은 알려주지 않고 그램당 가격만 재차 알려주며 결정타를 날리듯 바코드가 찍힌 가격 스티커를 뽑아 들고 노련하게 그것을 봉지 밑바닥에 붙였다.


와우~ 

이 직원은 진정 이 바닥의 고인 물 같았다.

가격 바코드를 봉지 밑에 붙이는 신공을 보이는 직원의 행동이 수상했지만 그 앞에서 고기를 높이 들어 확인하기도 뭣해서 계산대로 가져왔다.


난 100g이 항상 헷갈린다. 총가격을 말해 주면 되는데 100g당 얼마라고 하면 그때부터 계산이 안 된다.

100g 이 문제


허걱 12만 4천 원...

식구 한 끼 먹을 고기 값 치고는 과했던 봉지 속 불고기 홀린 듯 호구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대 앞에서 양념 불고기를 뺄까 말까 하며 줄 서 있는 내내 고민을 하다 결국 불고기를 제하고 계산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호구가 된 듯한 불쾌감을 느끼기보다

사지 않고 돌아온 것에 더 마음이 쓰였다.

젊은 직원은 고기를 팔려고 속사포처럼 말하는 연습도 했을 것이고 바코드를 밑에 붙이는 전략도 짜냈을 텐데 속는 셈 치고 그냥 계산하고 올 것을 괜히 두고 왔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 수록 더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인색하지 않아야 할 것 같고 더 좋은 사람이 돼야 할 것 같은 이상 심리가 발동한다.


대학교 때 옆에 앉아 내 미래를 걱정해 주는 듯 원치 않은 조언을 해 주는 선배보다 말없이 술값을 내주고 가던 선배가 더 멋져 보였다.

나도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 했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고 보니 돈은 없고 오지랖은 많아졌다.




악설을 믿는다.

인간은 날 때부터 어미를 아프게 하고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바락바락 울어 대며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자 하는 이기적인 존재다.

시기와 질투를 부러움으로 표현하며 이기적인 마음을 감추려 노력하지만 나 역시

어떤 면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완벽한 축하도 완벽한 위로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 동의의 한 표를 던지는 나는 어쩌면 뼛속까지 검은색 인간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불혹에 접어 드니 나잇값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밥 술 더 먹은 내가 좀 더 이해해야지

밥 술 더 먹은 내가 좀 더 양보해야지

착하게 살아야지

너그러워야지

인색하지 말아야지


경우에 따라 위 다짐들은 이불킥으로 

경우에 따라 호구 잡히는 것으로 보상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중년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손해 보는 것은 죽어도 싫어 보험사에는 진상 마냥 조목조목 따지기도 하니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해야 하는 건지

때론 아이러니 하다.



우리 집은 고층이다.

아침 등교 시간 위층 꼬맹이들이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는 날이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들의 푸념 섞인 한마디가 날아들었다.

"엄마, oo층 또 엘베 잡고 있어"

"네가 일찍 나갔잖아 ~~ 이해해 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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