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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Nov 20. 2023

내가 죽였냐?

예비비가 없다.

매달 정해진 경조사나 큰돈 드는 때는 모두가 아는

부모님 생신, 어버이날, 명절 등이 있으니

이때는 미리 월급에서 경비를 빼놓곤 했다.

나는 프리랜서라 당연히 명절 상여금 같은 건 받아 본 적이 없고 아쉽게도 남편 역시 연봉제로 급여 체계가 바뀌면서 매달 고정급을 받았고 명절에 따로 나오는 떡값 같은 건 다.

명절이든 생신이든 부담이 안 된다면 새빨간 거짓말일 터

하지만 자식 된 도리로 부모님께 이 정도도  못하면 안 되지 싶어 양가 어른들을 공평하게 챙겨 드리고 있다.


모두가 아는 저런 연례행사를 제외한

30대에 경조사비는 대부분 돌잔치와 결혼식이었다면 지금은 부고장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우리나라 장례는 대개 삼일장이라

발인이 있는 삼일째 되는 날 전에 미리 조문해 슬픔을 나눠야 한다.

슬픔을 나누기도 하지만 얼굴을 비춰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달은 유독 부고장이 쉴 새 없이 날아왔다.

우산 없이 맞는 비처럼 날아드는 부고장을 나와 남편은 맞고 있었다.

대부분이 남편의 지인 또는 회사 동료의 부모님 부고였다. 남편의 회사 내 직급으로 봐서 어쭙잖은 금액을 봉투에 넣어다가는 체면을 구기게 될 수도 있으니 봉투 속에 들어가는 금액은

항상 10만 원부터다.

상무님 아버지 부고, 여직원 아버지 부고 등

날짜가 정해진 결혼식이나 돌잔치라면 미리 청첩장이나 초대장 받아 마음의 준비라고 할 수 있고 여유가 된다면 물질적 준비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부고장 같이 별안간 통보되는 조사의 경우 슬픔에 앞서 돈부터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건 아주 솔직한 내 마음이다.



그  달이 그랬다.


10만 원 20만 원씩 나가던 부조금이 100만 원을 찍던 날, 난 죄 없는 남편에게 볼멘소리를 해 댔다.

남편도 연타로 날아드는 부고장에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지만  내가 대뜸 싫은 소리를 해대자

기분이 상했는지 되받아치며 내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죽였냐?"

순간 어이없는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꾹 참았다.


방으로 들어가 검은 양복을 챙겨 입고 나온

남편은 체념한 듯 내게

'이제 죽지만 않으면 된다.'라는

씁쓸한 말을 남기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 뒤  경조사비로 100만 원까지 지출되는 경우는 아직  없지만 예비비가 단 한 푼도 없는 프리랜서인 나와 월급쟁이 남편은 경조사비에 늘 무방비 상태가 되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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