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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 보수가 필요해

세월 앞에 장사 없다.

by 송주

#1

몸은 너무나 정직하게 대세를 따르는 느낌이다. 노화라는 자연스럽고 공평한 과정을 몸소 느끼고 있다.

진시황의 불로장생초도 그에게 불멸의 삶을 선사하지 못했 듯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의 섭리이다.

신체 각 기관들은 출생과 동시에 쓰이고 닳고 닳는 과정을 겪는다.

굳이 공평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는 거부감 마저 드는 노화는 어느 날부터 내게 동네 의원에서 날아오는 문자 한 통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보톡스 할인 이벤트 문자이다.

주름이라는 노화가 데려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내 미간에 찾아왔다. 미간에만 온 것이 아니다. 눈가에도 찾아왔다. 이 손님은 얼굴에 붙어 영원히 돌아갈 생각이 없고 점점 깊어지는 양상을 띤다.


엎드려 머리를 감고 난 후 미간에 생기는 두 줄과 웃을 때 생기는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을 보다 못한 난 보톡스라는 젊음의 신이 내린 물질을 처방받기에 이르렀다.

보톡스는 효과가 보통 4개월 정도 지속 된다. 고로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간격을 두고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띵똥~

동네 의원에서 문자가 왔다.

○○이벤트

보톡스 30% 할인

난 쪼르르 동네 의원으로 가 보톡스 맞으러 왔어요를 접수했다.


"마취 크림 발라 주세요."

"보통 보톡스는 그냥 하시던데.."

"그래도 발라주세요."


경험치로 미뤄 보아 짧은 순간 시술이 끝나는 보톡스 주사라 해도 마취 크림 없이 덤볐다가

발꼬락이 꼬부라 드는 고통을 맛봐야 한다. 그래서 난 마취 크림을 발라 줄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곤 한다.

침대에 누운 후 배 위에 올려주는 예쁜 인형을 손으로 잡았다. 주삿바늘이 얇고 볼품없는 내 피부에 구멍을 내는 순간 본능적으로 인형을 움켜쥐게 된다.


이 순간의 고통을 주름 완화로 맞바꾸고 약간의 멍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록 돈은 썼지만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누군가 그랬다. 보톡스는 늪이라고..


이제 주기적으로 맞지 않으면 주기적으로 주름이 깊어질 것이다.

난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하지만 주변에 아주 많다.나처럼 그 강을 건넌 사람들이 말이다.

난 그들의 동의와 무관하게 나만의 끈끈한 유대를 그들과 형성하며 다시 한번 시간의 공평함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느낀다. 시간은 공평해서 좋지만 때론 악착같이 공평해서 씁쓸하기도 하다.


#2

확연하게 드러나는 세월의 흔적은 비단 겉보기 등급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애석하게도 신체 내부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몸의 하향 곡선이 그간 젊음이라는 방어막을 뚫고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 날 티브이 건강 프로그램을 넋 놓고 보고 있는 사람이 다른 아닌 이 몸이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여기저기 옛날 같지 않은 몸..

어머니 왜 날 이렇게 낳으셨나요? 묻고 싶을 만큼 곳곳에 포진해 있는 각종 병력들과 신종 병력들

갑상선 기능 저하, 연 4회 거르지도 않고 찾아오는 감기, 정상 수치를 넘나드는 혈당, 심한 저체중, 약간의 불안. 요즘 제일 걱정인 망막박리까지...

구질구질하게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비타민을 필두로 각종 영양제를 거르지 않고 먹어주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는 이중적인 인간이 요즘 내 모습이다.

막을 수 없는 가는 세월 앞에 행여나 아파 골골 되며 민폐 중년, 더 나아가 민폐 노년이라도 될까 싶어 걱정이 앞선다.

아직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해 보고 싶은 것도 많다.이대로 가는 세월에 수동적으로 휩쓸려 가기 싫다.

팔이 라도 젓는 노력은 해 보고 싶다.


선물 받은 영양제가 버려지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한 알이 아쉽다.

젊을 때는 귀찮아서 있어도 안 먹다 결국 유통기간이 지나 버리곤 했던 영양제들을 철두철미 하게 챙겨 먹는 걸 보면 나란 인간은 역시 똥줄 정도는 타 줘야 뭔가 하는구나 싶다.


유지 보수가 필요한 나이가 되었고

주기적으로 보톡스를 맞고 매일 영양제를 챙겨 먹는 중년이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돈이 든다.


#3

나와 다르게 아직 눈에 띄는 흰머리가 없는 남편의 머리카락은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남편의 짧고 검은 머리카락들이 베개, 하수구 등 집안 곳곳에서 푸지게 발견된 지는 꽤 됐다. 탈모라는 녀석이 세월과 함께 남편에게 온 것 같다.

탈모의 원인이 꼭 나이 때문은 아니겠지만 40대 후반의 남편의 탈모에는 나이라는 것도 기여도가 없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또 많은 중년 남성과 여성들이 탈모로 고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젊은 시절 줄다리기 밧줄 같던 머리숱이 온데 간데 없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편은

부러○○이라는 샴푸와 모○○이라는 영양제를 사야겠다고 했다.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부럽게 날 것 같은 이 탈모예방 샴푸는 일반 샴푸 보다 무려 3배 이상의 사악한 가격으로 구매를 망설이게 만들었다.머리카락이 빠지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예방 샴푸까지 비싸다니...

하지만 샴푸 효과가 좋아 더 큰돈 들어가기 전에 잘 예방이 되기를 바라며 주문과 결재 버튼을 눌렀다.



매달 들어가는 영양제 구입 비용은 젊은 시절 지출 목록에는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

그다지 건강체질이 아닌 나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물로 들어온 비타민제나 관절 영양제 등을 신경도 쓰고 있지 않다 유통기간이 지나 버리거나 부모님들께 드리는 등 챙겨 먹는 것 자체를 귀찮아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속된 말로 없어 못 먹는 게 영양제가 되었다. 오메가 3는 기본으로 항산화제, 비타민제, 망막 혈관 순환제, 밀크씨슬 등등 매일 아침 챙겨 먹는 영양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이 영양제들은 항상 짠 듯이 한꺼번에 똑 떨어진다. 번씩 적지 않은 돈이 영양제

구입 비로 들어가고 있다.


영양제 구입에만 돈이 드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드니 추위에 더위에 더 취약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추울 때 난방 온도를 올리고 더울 땐 에어컨을 못 참고 튼다. 옛날에는 셋이상 모여야 트는게 에어컨이었는데 이제는 참을 수 없다. 갱년기가 오는 건지 안 그래도 더운데 몸도 뜨겁다. 장판 틀고 추위를 버텨보고 샤워를 몇 번 하면 에어컨 전기세를 줄여 보는 건 이제 가능하지 않다.

히트텍도 어느새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누가 그러더라 내복을 입지 않는 건 젊다는 뜻이라고

나도 젊은 시절에는 내복 따윈 내 인생에 없는 아이템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없으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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