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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을 더 자주 가는 40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새치

by 송주

미용실에 앉아 있는 시간은

겪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꽤나 지루하고 피곤한 시간이다.

젊을 때야 예쁘게 나를 꾸미고 싶으니 머리를 볶아도 보고 펴도 보고 그런 날이면 화장까지 예쁘게 하고 룰루랄라 약속을 잡곤 했다.


펌 이든 뭐든 요즘 미용실에 생각 없이 앉으면 커트비 추가에 영양 추가 등등 20만 원 정도는 우습게 든다. 잘못하면 호구가 되기 쉬운 곳이 미용실이다.

또한 2시간 또는 길게는 한나절 정도는 기본으로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고충도 있다.


나이를 먹고 나니 펌을 한다거나 헤어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 위해 미용실을 가는 일은 나에게 연례행사가 되었다.

아이 키우며 바쁘게 살다 보니 치렁치렁 내려오는 머리카락도 귀찮아 질끈 묶고 다니는 게 일상이 된 마당이다. 머리카락이야 그냥 기를 수 도 있는 거고 머리 못 한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니 가끔 커트나 하면서 살려고 했다. 솔직히 머리를 하는데 20만 원씩 쓸 돈도 없을뿐더러 미용실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내가 미용실을 무려

한 달에 한 번씩이나 간다.


새치가 이 몹쓸 새치가..

머리카락은 왜 또 이렇게 빨리 자라서 염색 한 지 조금만 지나도 희끗희끗, 반짝반짝 흰머리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흰머리가 이렇게 많은 이유에 내 지분은 단 0.1프로도 들어 있지 않다.

단지 나는 아빠를 닮은 거고 아빠 역시 원치 않은 흰머리와 20대 초반부터 조우했고 그때부터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선을 보러 온 아빠의 하얀 피부와 새까만 머리카락이 좋았다고 했지만 그 검은 머리카락은 사기였다. 엄마는 그 후로 여태껏 아빠 머리카락에 염색약을 발라주는 신세가 되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30대 초반부터 염색을 했으니 내가 좀 낫다.

30 중반을 못 채운 그때

어린 아들들 눈에 내가 제일 미인이던 그때

해외로 여행을 떠나던 날이었다. 촌스럽게 해외여행을 간다고 안 하던 네일도 받았다. 어차피 비행기에서 자다 피곤에 절어 내릴 텐데 그럼에도 평소보다 좀 더 진하게 화장도 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얼굴을 살피려 룸미러를 내렸는데 귀밑에 흰머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 나이에 귀밑 흰머리라니.. 나는 적잖이 당황했고 적잖이 좌절했다. 그리고 누가 볼세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흰머리를 뽑아냈다.

네일하고 화장하면 뭐 하나 머리가 하얀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흰머리를 뽑았다가 대머리가 될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그때부터 새치 염색을 시작하게 되었다.


참 이상하다. 은색은 예쁜데 그 비슷한 흰머리는 거칠고 투박해 보일까?

결국 그렇게 시작된 흰머리 염색을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하고 있으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귀찮음을 상상할 수 없을 거다.

나는 머리 손질이 서툰 편이라 긴 생머리가 편하다. 따로 관리가 필요 없고 스타일링도 필요 없다.

감고 말리고 빗으면 끝이다. 가끔 안 말려도 자동 건조 되니 바쁠 때는 대충 빗고 나간다.

한 겨울에는 고드름처럼 머리카락이 길게 얼기도 하는 과학적인 일이 생기곤 하지만 한 여름에는 돌아서면 말라 있다.


그런 내가 매달 미용실 예약을 잡고 뿌리 염색을 위해 들이는 시간과 비용은 그저 아깝다.

의무는 아니지만 의무처럼 한 달 정도 되면 염색을 해야 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격월로 셀프 염색을 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염색약을 구매했다.

어디서 본 건 있어 이마 라인을 따라 테이프로 붙여 염색약이 살에 염색되는 것을 나름 막았다.

하지만 뭐가 문제였을까?

염색약은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염색되지 말아야 할 곳까지 색을 바꿔 놓았다.

염색약은 강력했다. 어떤 세제를 사용해도 지워지지 않고 염색의 흔적 남겼다.


남편에게 사진과 함께 큰일 났다며 카톡을 보냈다.

"구레나룻 멋지네."

남편 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흰머리 없는 지천명 남편이 내 마음을 알 턱이 없다. 남편은 또래에 비할 것도 없이 검은 머리를 잘 유지하고 있다. 타고난 것 같다. 더 나아가 아들들이 검은 머리만큼은 남편을 닮았으면 한다.

나는 그 후 머리카락을 습관적으로 귀 뒤로 넘겼다가 화들짝 놀라 내리기를 반복하며 며칠을 보냈다. 누가 이 어수룩한 염색의 흔적을 봤으면 어쩌나 하면서 말이다.


흰머리를 그냥 둘까도 생각해 봤으나

사회생활 하면서 더군다나 아이들 만나는 일을 하면서 하얗게 샌 머리로 철없는 아이들에게 할머니 같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또한 흰머리를 그대로 둔 채 사회생활을 할려니 자기 관리를 안 한다는 느낌을 주게 될 것도 같고

이 흰머리가 나이를 더 들어 보이게 만드는 몹쓸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이 들어 보이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나도 위에 이유로 결국 염색이란 걸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몇년 전부터 단골 미용실을 정해 새치 염색을 한다.

새치 염색은 색깔이 정해 져 있다. 가장 밝은 색을 고른다 해도 일반적으로 멋을 내기 위해 하는 염색과 차이가 많다.

내 또래 많은 분들이 흰머리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내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40대가 되니 희긋희긋 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들 역시 만날 때마다 조금씩 흰머리가 많아 지고 있었다. 나 처럼 흰머리 염색을 하는 친구도 있고 아예 밝은 색으로 염색을 해 상대적으로 색깔 차이를 줄이는 염색을 하는 친구도 있다.


흰머리만 아니었음 머릿결 상하고, 안 좋은 염색 하러 굳이 돈을 들여 미용실을 갈 일도 없었을 텐데 나이가 드니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한다. 나이 들어 좋은 건 하나도 없다는 친정아버지의 말이 떠오른다.

그렇게 나는 새치 때문에 매달 미용실에 앉아 신선 놀음 하는 신세가 되었다. 흰머리가 많아도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 나는 염색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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