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식, 주
#1
아들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옷에 그리 관심이 없었다. 나 역시 금방 자라는 아이들에게 굳이 비싼 옷을 사 줘 뭐 하겠나 싶어 이월 상품이나 대형마트 속 주니어 매장을 주로 이용했었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얻어 입히든 사서 입히든 주는 대로 입고 다녔다. 특히 둘째는 첫째의 작아진 옷은 물론 동네 이웃 형아들의 작아진 옷까지 물려받아 옷 값 절약에 큰 공을 세웠었다.
그놈의 사춘기가 뭔지
아들들은 어느 날부터 천편일륜 적인 사춘기 패션을 적극적으로 따라가고자 노력했다.
이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툭툭 던지는 말투와 싸늘한 눈빛을 내게 쏘며 본인이 사춘기가 왔음을 필터링 없이 보여주면서도 옷은 사달란다.
그래 낳은 게 죄지..
다시 무를 수도 없는 인생 최대 비가역적 난제인 이 자식 놈의 의식주는 책임져 준다는 심정으로 백화점으로 향해 간다.
홈플**가자니 죽어도 싫단다. 하지만 사춘기 자식을 잘못 건드리면 낭패를 볼 수 있는지라 꾹 참는다. 명절선물로 양말 사러 갈 때 아니면 갈 일도 없는 백화점을 아들 덕에 가다니 이런 감개무량할 때가..
아들이 패딩을 하나 고른다. 무의적으로 평소 하던 습관이 자동으로 나온다. 나는 옷 뒤쪽 택을 더듬더듬 찾아 흘깃 가격을 본다.
'뜨아 36만 원!!!'
바지도 고른다. 15만 원
나는 살짝 점원을 본다. 이 정도야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합리적 소비를 위해 소비자라면 할 수 있는 질문을 당당하게 해 본다.
'세일은 안 해요?'
아쉽게도 세일도 안 한다.
나는 무척이나 마음이 떨린다. 이 자식 놈이 티까지 사달라면 어떡하지?
내 지갑 사정을 얘기하면 살살 달래서 일단 티는 다음번에 사기로 한다.
이제 나이* 매장으로 간다. 이 브랜드 로고는 사춘기의 상징이다. 옷이며 신발이며 이 브랜드 제품을 하나 이상 갖고 있지 않은 아이가 없다.
하얀 에어** 디자인을 을 고르고 만족 해 하는 자식 놈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야 맞지 싶어 웃어 보았다.
집에 돌아오니 앞 머리가 눈을 덮고 있는 또 한 명의 사람 자식이 자기 점퍼는 언제 사주냐고 묻는다.
인생 참 쉬운 게 없다.
#2
마라탕에 중독된 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마라탕을 먹고자 했다.
마라탕은 자기가 원하는 재료를 담으면 요리해 주는 음식이라 무턱대고 담았다가는 그 가격에 놀라고 만다. 이 마라탕을 아들은 한번 먹을 때마다 2만 원 이상의 지출을 감내하면서까지 먹어대니
지 용돈이 남아나질 않는다.
돈 아끼느라 두 번에 한번 정도는 살살 달래서 집밥을 먹이긴 하지만 한창 먹을 사춘기에 아예 안 사주는 것도 부모 된 입장에서 못할 짓인 것 같아 몇 번 사주긴 한다.
마라탕에 후식 탕후루까지 먹는 날이면 허리가 휜다.
누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거만 봐도 배부르고 좋다고 했나?
그 밥은 분명 집밥 일 것이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외식이 하고 싶은 날이면 8000원짜리 한식 뷔페로 향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3
큰 아이가 안과 정기검진을 받던 7살 때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는 안경을 써야 되겠어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굴절도가 어쩌고 하며 안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집에 돌아오면서 울었다.
안경을 낀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시력이 좋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나는 눈이 나빴던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특히 사우나나 수영장에서 눈 뜬 장님이 따로 없었던 내 모습을 생각했다. 아들이 나처럼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니 걱정이 앞섰다.
아들 라식 할 때까지만 참자 라며 마음을 다독이던 지난날이었다.
아들 둘은 자라면서 점점 눈이 나빠졌고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좋은 건 안 닮고 나쁜 건 모조리 닮은 듯해서 한숨만 나오던 차 안경값에 또 한 번 미간이 구겨졌다.
남자 애들은 활발해서 좋은 거 필요 없다는 말에 저렴한 테와 렌즈로 구매했다. 그래도 기본 9만 원 돈이었다.
아들들은 계속 자랐고 시력도 계속 나빠져 주기적으로 안경을 새로 맞춰 주어야 했다.
그리고 아들들이 친구들과 모여 축구를 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안경점 문턱이 닳듯 드나들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한 달에 세 번 안경테를 바꾼 적도 있었다. 특히 큰 아들은 운동도 좋아하고 장난도 좋아했다.
큰 아들은 중학교 3년 동안 안경점 VIP에 등극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 이후
지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렌즈를 맞추었다. 양심은 있는지 안경과 렌즈 값을 본인 용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제 돈이 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기에 속이 터진다.
둘째는 안경을 맞춘 지 한 달이 안되었다. 퇴근할 때쯤 둘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안경 부러졌어."
쌍욕이 튀어나왔다.
내 반응에 놀란 둘째가
"맨 앞자리라 안경 안 써도 돼."
확 그냥~~
안 그래도 공부도 못하는데 제대로 보이지도 않으면 수업을 어떻게 한단 말인지...
퇴근 시간 번화가에 위치해 있는 안경점 근처에는
주차할 곳도 마땅지 않아 짜증이 머리꼭지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간신히 주차를 하고 안경점에 들어서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를 못 알아봤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마법 램프의 지니가 있다면 "쥐구멍을 만들어 주세요."했을 것이다.
그래요, VIP 모친 또 왔어요.
"죄송합니다. 안경이 또 부러졌어요."
내 얼굴은 이미 울기 직전이었다. 정말 울고 싶었다.
"너무 힘드네요."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한숨과 함께 불쑥 튀어나왔다.
안경점 선생님은 한지 얼마 안 됐으니 이번에는 무료로 테를 교환해 주겠다고 하셨다.
울기 직전의 내 얼굴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안경점에서 펑펑 우는 이상한 아줌마를 볼까 봐 두려웠던 안경점 선생님의 빠른 조치로 난 울지 않고 안경점을 나올 수 있었다.
안경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들들이 독보적이네요."
맞다. 안경점 매출 증대에 일조를 독보적으로 하고 있다.
아들이 안경을 쓰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울었던 그때는 내가 안경값에 우는 엄마가 될 줄은 몰랐다.
"아들들 시력이 나쁜 게 엄마 탓인 것 같아 미안해. 이다음에 꼭 라식 수술 시켜 줄게. 안경 안 부러지게 조심 좀 하자. 그리고 너희가 안 다쳐 정말 다행이야." 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고 글로 배웠다.
하지만 현실은 힘들어 죽겠고 아들들을 후드려 패버리고 싶었다.
이 외에도 운동하거나 친구와 장난치다 안경을 망가트려 온 일도 부지기수
축구하다 다쳐 정형외과 행
장난치다 다쳐 정형외과 행
이 자식 놈은 내 속도 모르고 내 지갑과 멘탈을 탈탈 털어가고 있다.
이렇게 돈 많이 들고 돈 안 되는 자식이 우리 집에 무려 둘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