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
아들이 어느 날 꿈속에서 말했다
"어머니 그간 학원비 대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이제 저 혼자 공부해서 성공해 볼 테니
제 학원비로 어머니 배우고 싶은 거 배우며 즐겁게 사세요." 라며 1등급 성적표를 내밀었다.
이 꿈같은 얘기는 그냥 꿈이었다.
아이들도 엄마 배속에서 온 힘을 다해 나와 울음을 터뜨리는 그 순간부터 경쟁상황에 놓이게 된다.
보통 3 ~4살부터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사설 기관에 맡겨져 거의 다 자랄 때까지 배우고 익히게 되며 그 후에는 또다시 재사회화를 위해 배우고 익히기를 반복하며 일생을 보낸다.
초등 저학년 시기에는 예체능 관련 사교육을 받고 초등 고학년이 되면 본격 입시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여기서 보통 특출난 떡잎들은 다 가려진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자식은 포기가 되는 않는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고' 다.
대개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금수저 집안이 아니고야 거의 비슷한 수준의 교육비가 지출된다.
아이들이 공교육 외에 받는 교육은 예체능, 수학, 영어 학원 정도이고 혹시나 아이의 특기를 살려주겠다는 명목하에 예체능 중 하나의 전문 사설 기관에라도 보내게 된다면
상상 이상의 교육비가 수반될 수도 있으니 잘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
야구를 좋아하던 남편이 둘째의 정서 함양과 더불어 아이가 크면 같이 사회인 야구를 할 큰 꿈을
품고 지역 리틀야구단에 아이를 입단시켰다.
리틀야구 시스템에 관해서는 무식자였던 나와 남편은 교육비 이외 그렇게 많은 부대 비용이 들어갈지는 생각치 못했다.
아이가 정규 리틀 야구단을 졸업할 때까지 이년 동안 월급쟁이 남편과 프리랜서 아내인 나는 둘의 월급 내에서 충당하기 버거운 비용을 자식의 특기를 위해 열심히 벌어 아낌없이 바쳤다. 돌이켜 보면 특기가 된 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경험에 많은 돈을 투자한 거라 쳐야 될 것 같다.
중학생 이상이 되면 아이는 보통 네가지 부류로 나눠지게 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중간쯤 하는 아이
열심히 하는 아이
아예 안 하는 아이 네 부류로 나눠진다.
본격적인 교육비 지출은 지금부터다.
잘하는 아이는 과목 선행 과외 나 학원은 기본이고 본인의 꿈에 맞는 고등학교나 대학 진학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게 된다. 교육 컨설팅, 자소서 컨설팅, 면접 준비 학원 등 여러 곳을 거치며 도움을 받고 스펙도 쌓아 간다.
개천에서 용 안 나온 지 오래됐고 강남 사는 아이의 인서울 진학률이 높은 건 다 나름에 이유 있는 통계라 할 수 있다.
공부를 중간쯤 하는 아이와 열심히 하는 아이 아예 안 하는 아이 역시 공부를 잘하는 아이 정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수 있겠지만 유의미한 수준의 교육비가 지출되는 건 마찬가지다.
이유는 조금만 더 하면 잘할 것 같아서 또는 너무 못하니 학원이라도 안 보내면 이 정도도 못할까 봐 교육비 지출이 가성비면에서 좋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포기가 안 되는 것이다.
또 학원을 안 보내면 그 시간 아이가 빈둥거리며 놀거나 휴대폰만 들여다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 귀로 듣고 흘리는 한이 있어도 학원을 보내는 선택을 하는 경우를 다수 본다.
부모들은 아이의 성적을 위해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써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교육비 지출이 줄어들 수는 없게 된다.
안타깝게도 내 아들은 후자의 경우다.
부모만큼은 할 줄 알았더니 어디서 집안 꼴통 철수, 영수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놀 때도 놀고 공부할 때 도 놀며 사람을 미치고 환장하게 만든다.
시험 후 상상 이하의 점수 들이 문서에 타이핑 되어 성적표라는 보고서로 내 앞에 나타나면 갑자기 사는 낙이 없어지곤 한다.
자존감은 끝도 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아이의 성적이 대부분의 얘기 주제가 되는 또래 모임에 나가기가 극도로 싫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입장에서 자식의 학업은 미치도록 포기가 되지 않는 영역이다.
그래서 슬프고 괴롭다.
얼마전 아들이 체대 입시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사실 아들은 체육 활동에 진심이었고 '체대''체대' 노래를 불러 댔었다. '안돼' '안돼' 답가를 부르던 나는 결국 아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자식을 이길 수 있는 부모는 없다.
집안에 예체능 하는 자식이 있음 기둥 뿌리 정도는 가뿐히 뽑힌다더니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몸을 쓰다 보니 체력이 중요하다. 아들을 볼 때 마다 짠해 흑염소라도 해 먹여야 될 것 같다.
누구 집은 러닝 트레이닝도 받고 자세 교정도 하고 하던데 그 정도 여유는 없고 먹이는 거라도 제대로 먹여야 될 것 같다.
둘째는 날 때 부터 입이 짧았다. 분유를 한번에 원샷 하는 일이 없었다. 자라는 내내 둘째 밥 먹이기는 내 일상의 스트레스거리였다. 둘째 아침을 먹이고 나면 점심 때였을 정도 였으니...
도를 닦는 심정으로 어르고 달래다가도 등짝 스매씽이 절로 발사되기도 했다.
그런 둘째는 역시나 키가 작았다. 늘 반에서 가장 작았고 영유아 검진 시 10%로를 나가 본 적이 없었다.(생일이 똑같은 100명을 세워 놓으면 10명 안에 드는 난쟁이 똥자루란 말이었다.)
때 되면 큰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초조함을 삭히며 기다렸다. 초등학교 5학년 다른 집 아이는 1년에 10센티도 큰다는데 우리 아들은 기껏 해야 5센티가 최대였다. 더이상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일단 몸보신 차원에서 키 성장 한의원을 찾았다. 뼈나이를 검사 한 후 선생님께서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 봤다.
"최종키가 160cm 입니다."
"네? 남자 앤데요?"
나는 일단 한약 값을 지불했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성장 클리닉 세군데를 찾아 다시 검사를 했다.
"성장 호르몬 문제는 아닌 걸로 보이구요. 원하시면 성장 호르몬 주사 처방 해 드릴께요."
나는 고민없이 성장 호르몬 주사를 처방 받았다. 성장 호르몬 주사 자체도 비쌌지만 주기적으로 아이의 건강 상태가 괜찮은지 체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이 모든 비용은 다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성장 호르몬 주사 보험 적용 요건 1. 키 백분위 3프로 이내 2, 성장 호르몬 결핍 판정 3, 뼈 나이가 실제 나이 보다 어려야 함 4. 기타 질병으로 성장 지연을 보이는 경우)
안경, 치아 교정, 성장 호르몬 주사
이 세 가지가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트리플 악셀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세개 중 치아교정은 빠졌으니 우리 아들은 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