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주 Jan 02. 2024

엄마 이야기

엄마도 나처럼 뛰쳐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는 시골 출신의 곱디 고운 처녀였다.

육남매 중 첫째 였던 엄마는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 슬하의 일을 끝내주게 잘 하는 큰 딸이었다.

그 말은 어릴 때 부터 일 복이 많았단 뜻이다.


엄마는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집 남매의 둘째였던 아빠를 중매로 만났다. 엄마는 아빠가 훨칠한 외모에 술 담배를 안 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찢어지게 가난 하다라는 건 다른 의미로

먹고 살기 위해 노동력을 필사적으로 제공해야 된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게 엄마의 일복은 차다 못해 철철 넘치게 되었다.

숟가락 하나부터 벌어서 마련해야만 했던 가난했던 엄마와 아빠는 아빠의 남동생이자 엄마의 시동생 까지 단칸방에 함께 귀거하며 그렇게 결혼 생각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 엄마는 농사를 짓던 시댁에서 조차 일을 끝내주게 잘하는 일꾼이 되었다. 시댁을 제집 드나들듯 오가며 농사일은 물론, 시부모님 공양 과 더불어 줄줄이 딸린 아빠의 형제들가지 건사하며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냈다.

엄마는 결국 시댁일에 매여 딸의 유치원과 아들의 사교육을 과감히 포기 하면서 열과 성을 다해 시댁에 충성했다.  

엄마의 헌신적인 시댁공양은 안타깝게도 시댁 식구 어느 누구의 입에서 조차 치사 되지 못했다. 고생스러웠던 30년 간의 시댁 공양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하늘 나라로 가신 후 조금 편해지나 싶었다.


이제 엄마의 딸이 문제다.

뭐하나 내세울 거 없는 딸이 아이를 낳고 자꾸 아프단다.

엄마는 딸을 살리고자 아빠 손을 잡고 그 당시 본인의 직장과 한시간 거리에 있던 딸의 집으로 , 딸의 가족과 합가를 결정했다.

다시 엄마의 일복 지수 슬슬 오르고 있었다.

정녕 자식은 끝이 없는 존재인가..

그렇게 엄마의 딸 시집살이가 시작 되었다.


이 철없는 딸이 이번에는 둘째까지 출산 했다. 아들 둘 키우랴 일 하랴 살림하랴 고생하는 딸 때문에 엄마는 또다시 꼼짝 없이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큰 외손자가 초등학교를 졸업 할 무렵 엄마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겠노라며 합가를 할 때 처럼 아빠 손을 잡고 엄마의 진짜 집으로 분가를 했다.

이제 좀 편해 지나 했다.


 

이번에는 엄마의 88살 노모가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는 얼굴만큼 마음씨도 고운 사람이다.

엄마의 형제, 자매들 모두 그들의 노모를 돌볼 여유가 없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다. 엄마가 딸인 나를 위해 희생 했던 것 같은 전처를 밟고 는 자매들도 있다.

거동이 불편한 엄마의 노모는 엄마의 여린 마음을 계속 후벼판다. 엄마는 그렇게 노모의 수족이 되어 기저귀를 갈아주며 그녀의 노모를 공양하고 있다.


가끔 엄마가 가엽다. 엄마의 인생을 들여다 보면 나처럼 집을 뛰쳐 나가고 싶은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을듯 싶다.


엄마라는 이름 하에

며느리라는 이름하에

딸이라는 이름하에 당연시 여겼던 희생들이 엄마는 얼마나 야속했을까?


하지만 모진 세월과 가난 속에서도 엄마의 자식 사랑은 대단했다. 엄마는 시골에서 자란 만큼 교육열이나 치맛바람과의 거리가 먼 사람였다. 자라면서 공부하라는 말 역시 단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을 만큼 나를 믿어 주셨다. 부족했다고 느끼며 자란 기억은 없다.


물질적으로 채우지 못한 부분까지 엄마는 사랑으로 채워가며 나와 동생을 길러냈다.

엄마는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었고 그만큼 자식에게도 온전하고 완벽한 사랑을 주었다.

내가 배운 모든 좋은 것들과 바른 것들은 다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도 지척에 있는 엄마가 늘 보고 싶은 마마걸이 되었다.

엄마가 오래오래 내가 마마걸로 지낼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면 좋겠다. 그때쯤이면 엄마가 도덜맘(Daughter mom)이 되길 바라본다.




나는 내가 한번, 두번 , 세번 다시 태어나도 우리 엄마 같은 엄마를 만나지
못 할 것 같다.

   

             우리 엄마는 한번, 두번, 세번

                       다시 태어나도

          같은 딸은 안 만나길 바란다.

                                        2022년 어느날 송주 씀


이전 12화 육아서 대로 안 되는 육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