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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Jan 02. 2024

그날의 분위기

집구석에서 나와 버렸습니다.

그날은

운수 좋은 날 만큼은 아니었지만 편안한 날이었다.

다음날이 3일간의 연휴였고 짧은 방학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수업에 부담도 마음에 부담도 엷었던 그날

2시 반 정도까지는 그렇게 편안했다.


○○원장님이라고 적힌 내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내용은 이러했다.


어제 어린 원생인 양양이가 문에 이마를 부딪히는 일이 있었는데 제제가 양양이 가방을 잡으려 쫓아와서 도망치다 문에 부딪혔다는 게 사건의 전말이다.

살짝 멍이 들 수도 있겠다 싶어 학부모님 중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상황 설명이 이어졌고 일이 그렇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다음날인 그날 다시 원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양양이 아버님이었다. 양양이 아버님은 가방을 잡으러 쫓아온 제제의 의도를 몹시 궁금해했다.

제제가 본인의 소중한 아이인 양양 이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아닌지가 궁금하여 전화를 다시 하신 양양이 아버님은 어제 내가 전한 사건의 전말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상황을 내가 목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황상 양양이 와 제제는 교실 안에서 잡기 놀이를 할 정도로 사이좋게 잘 지내는 사이였다. 그랬기에 내가 추측해 본 상황은 그날도 놀이식의 장난이 양양이가 문에 이마를 부딪히면서 문제가 된 것이라 판단했다.

아버님께는 내가 생각한 그대로 전달드렸지만 

양양이 아버님은 제제의 의도를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

난 양양이 아버님의 오해를 어떻게 풀어드려야 할지 막막했다.


결국 난 뼛속까지 을의 입장으로  아래로 아래로 기기 시작했다.


아이의 의도를 내밀하게 파악하지 못해 죄송하다.

많이 속상하시겠지만

제제와 양양이는 평소 사이좋게 잘 지낸다.

제제는 남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성정의 아이가 아니다. 

앞으로 아이들을 잘 보도록 노력하겠다.


라며 간도 쓸개도 모두 내놓고 양양이 아버님이 화라도 내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며 사과 멘트들을  날렸다.

그리고 한 해 동안 믿고 양양이를 맡겨 주셔서 감사하다는 멘트까지 잊지 않고 마무리를 하며 바닥에 넙적 엎드렸다.


양양이 아버님은 마음이 조금 풀리셨는지 알았다고 말하며 그렇게 전화를 끊으셨다.


나의 근무지는 영어를 가르치는 어학원이다.

만 3세부터 큰아이들까지 모두 수업을 하고 있다.

양양이 와 제제는 이 중 가장 어린 만 3세 어린이들이었다.

이후 하고 싶은 말들은 최대한 아껴 본다


이 일은 자주까지는 아니고 오랫동안 학원에서 어린 연령대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겪는  중 하나 일 뿐이다.

날이 갈수록 학부모님들의 관심과 요구가 과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나만 느끼는 사교육 현장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기분이 썩 유쾌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퇴근을 했다.

집에서 만큼은 편하고 싶었다.

그날은 간절히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라면 국물이 튀어 본래 아이보리 색이었던 식탁 위가 주황색 땡땡이 국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라면 봉지들이 인덕션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거기 까지는 아들 1호 2호에게 단도리를 시키며 넘어가 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들 1호의 학원에서 진행되는 방학 특강 신청여부로 인해 1호와 마찰이 생겼고 드디어 인내심의 한계를 지켜 내고 있던 뚜껑이 속절없이 열리고 말았다.

집에 있기가 싫어졌다.

난 저녁 9시가 다 된 시간에 집을 나왔다.

그렇게 난 집구석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그날 나의 행적을 기록해 본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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