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소르베 맛집 TOP 2
'큰일이다. 여행 권태기가 와버렸다.'
젤라또 일주가 어언 끝을 향해 달려간다. 밀라노와 시칠리아, 단 두 곳만 남은 상황에서 사실 좀 지쳐버렸다. 하루에 최소 5개이상 젤라또를 먹다보니 예전과 같은 감흥은 덜한지 오래.
처음엔 웬만해선 다 맛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쩝쩝박사가 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짜 특출나게 맛있지 않는 이상, 내 혀와 마음을 자극하는 가게는 가뭄에 콩나듯 적었다.
이런 와중 밀라노에 대한 기대감도 꺾였다. 앞서 미식의 도시인 볼로냐와 토리노를 방문하기도 했고. 밀라노 젤라또에 대한 칭찬은 많이 못들어봤던 이유도 컸다. 어김없이 기차에서 2024 감베로로소(미슐랭과 비슷한 느낌) 가이드북과 구글링을 통해 방문할 젤라또 가게를 저장했다.
패션의 도시, 경제의 도시, 첨단의 도시... 앞에 붙은 수식어가 젤라또와 썩 잘 어울리진 않는듯하다. 그래서 오히려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더랬다.
밀라노에 머무른 이래로 약 스무 곳이 넘는 젤라또 가게를 전전했다. 결과는 기대를 훨씬 초월한 맛. 트렌드의 최전선이라 그런지 특색있는 가게도 참 많았다.
특히 내가 밀라노를 애정하게 된 이유엔 소르베의 공이 크다. 사실 우유 베이스의 젤라또를 잘하는 곳은 워낙 많았지만, 소르베는 그에 비해 적디 적다. 예전엔 최애 소르베 맛집을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맛있긴한데 '최애'나 '가장'이라는 강조어로 칭하기엔 어딘가 아쉬운 느낌이랄까.
하지만 밀라노에 오고나선 소르베 성공시대가 시작됐다. 암만 노잼시기가 찾아오더라도, 절대적으로 맛있는건 내 감각을 무차별적으로 깨웠다.
내 입과 코를 거하게 흡족시킨 밀라노 소르베 맛집을 소개한다.
✓ 천도복숭아, 블러드오렌지맛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다음 정거장'이라는 뜻을 지닌다. 밀라노 중앙역 근처에서 트램으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해있다. 여길 맛본다면 더이상의 소르베 다음 정거장은 없다. 소르베 유목민의 정착지같은 곳이랄까.
공간이 좁아 안에서 먹을 순 없을 뿐더러, 주문할 때 한 명씩 들어오고 가게 밖에서 줄서는 방식이다. 불편하더라도 그걸 감수할만한 맛집이다.
젤라또 각 맛별로 영양성분과 들어가는 재료를 액자에 담아 걸어뒀다. 원재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니 믿음직스럽기까지. 옆에 과일을 잔뜩 쌓아둬 생과일로 만드는게 느껴졌다.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소르베는 처음 먹어봤다. 어떻게 인공향 없이 진한 과일 맛을 그대로 낼 수 있지. 충격, 아니 폭력적인 맛이었다. '그래 이거 먹으러 밀라노 올만했지'하고 끄덕이게 되는 마성의 가게. 괜히 구글맵 후기가 소르베에 대한 찬사로 점철된게 아니었다.
제일 맛있었던건 천도복숭아맛! 과수원에 주렁주렁 열린 싱싱한 복숭아를 바로 따서 과즙 한 올 안 떨어뜨리고 맛있게 만든 느낌이다. 껍질과 과육이 콸콸 씹히는데 대단히 맛있었다..
두 번 못 가서 아쉬웠던 곳. 다음에 밀라노 또 오면 꼭꼭 들러야지.
✓ 루꼴라,파인애플, 라임맛
시내 외곽에 있는 젤라또 가게다. 밀푀유, 스브리촐로나(아몬드 크럼블 케익) 등 다른 디저트에서 파생된 맛이 많다. 소르베 식감은 서걱거리고 뭉텅이로 갈라져 내가 원하는 식감은 아니었으나 맛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루꼴라를 젤라또에 넣은게 대단한 킥. 바질은 흔하게 쓰이지만 루꼴라를 쓰는건 처음 봤다. 루꼴라가 들어가니 왠지 마르게리따 피자가 생각나긴 하지만 맛이 아주 감칠맛난다. 3가지 재료를 기가 막히게 잘 조합해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