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올해에는 조금 다르게 명절을 보내기로 하신 분들 많으시죠?
부모님들을 찾아뵙지 못하는 분들은 온라인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한가위 연휴를 기존과 다르게 보내실 것 같습니다. 갑자기 변화된 일상이 여전히 낯설고 불편한 요즘, 저 역시 가까운 거리에 계시는 부모님께도 매일 전화로만 조심하시라는 잔소리로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가족끼리의 모임도 가급적 삼가라는 재난문자를 받으며 이전과 다른 삶의 방식, 그리고 달라진 가족문화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저의 이 같은 생각 때문인지 최근 두 편의 광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KCC 스위첸의 <문명의 충돌>과 맥도널드의 <언제나 가까이>입니다.
스위첸의 광고는 두 남녀가 부부로 만나 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현실감 넘치게 구성한 광고입니다. 신혼의 부부는 매 순간 부딪히며 하루를 보내는데요, 캔맥주를 들고 퇴근하는 남편의 모습이 낯설지 않기도 하더군요. “맛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같이 먹고 싶은 사람”과 먹으려 했던 것 같은데, 광고 속 부부는 맥주엔 치킨인지 골뱅이가 답인지를 두고 다시 결전을 벌이며 광고는 끝이 납니다. 너무 익숙해 저절로 웃음이 나는 광고입니다.
KCC 광고는 자연스럽게 맥도널드의 최근 CF와 이야기가 연결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맥도널드의 <언제나 가까이>는 새벽녘에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소중한 둘만의 자유를 즐기는 부부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차 안에서 속닥속닥 맛있게 버거와 감자를 먹던 부부는 부모라면 느낄 수 있는 그 느낌을 감지하고 뒤를 보니 아이가 눈을 뜨고 자신들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아이를 키운 분들이라면 이 순간이 얼마나 간담이 서늘한지 아시겠지요?
이 두 광고는 삶의 환상을 부여하기보다는 거리감 없는 현실성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삶을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복잡한 감정도 담고 있는 듯 보입니다. 같이 살기 위해 결혼을 하고도 서로 마주하면 늘 언쟁이 일고, 너무나 소중한 존재인 나의 아이가 왜 잠잘 때 가장 이뻐 보이는지를 이 광고가 잘 말해주네요. 이런 것이 바로 가족인가요?
시대가 변화하면서 ‘가족’ 역시 전통적인 의미로부터 탈피하여 다양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은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다양한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하지요. 특히 어려움이 있을 때엔 그들의 존재가 새롭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아마도 변화와 혼돈 속에서 우리는 그들로부터 어떤 기운을 받아 안정감을 느끼는 존재인가 봅니다.
이 광고와 연관되어 떠오른 그림은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성장을 도와준 이들을 담은 배운성의 <가족도>입니다. 배운성은 1920년대 후반 부잣집 도련님의 몸종으로 독일에 갔다가 유럽에서 유명한 미술가로 성장했습니다. 이 작품은 1930년대 유럽에서 활동을 하던 배운성이 주인이었던 백인기의 가족을 회상하며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은 배운성은 갑부였던 백인기의 눈에 들어 그 집에 집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 백명곤의 몸종으로 일본과 독일로 유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배운성은 그곳에서 베를린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유럽에서 유학한 최초의 미술가가 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17명의 인물들은 부동의 자세로 다소 경직된 모습입니다. 제일 좌측에 흰색 두루마기를 입었지만 서양식 구두를 신은 인물이 바로 배운성 자신입니다. 전면에 이국적인 개는 아마도 당시 서양의 문물을 습득한 상류층의 문화를 재현한 것이거나 혹은 서양화적인 전통을 고려하여 그린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작품에는 다양한 우리나라의 복식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이는 서구인들에게 우리나라의 미감을 소개하려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배운성은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을 많이 그렸습니다. 서양인들 사이에서 이국적인 모티브를 통해 그들과의 차별점을 두기 위한 의도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곳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작품으로 달래었을지도 모르지요. 그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기록자료는 없지만 사방이 흰 눈으로 덮인 산길을 나귀를 타고 돌아오는 선비의 뒷모습은 22년간 타지에서 지냈던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이러한 작품은 유럽인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일으켜 1930년대 배운성은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1940년대 귀국한 배운성은 홍익대학교에 미술학부를 설치하고 초대 학부장을 지냈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 전쟁 시기에 월북하여 평양미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북한에서 그는 판화작업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월북작가로 구분되어 그의 작품은 한동한 금기시되었습니다. 게다가 유럽에서 귀국할 때에도 작품을 두고 왔기 때문에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배운성의 작품이 많지 않습니다. 1999년 파리에서 유학하던 한국인이 그의 작품을 발굴하면서 40여 점의 소중한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5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형편에 보통학교도 제대로 졸업할 수 없었던 배운성은 백인기의 후원으로 인해 훌륭한 작가로 성장했습니다. 배운성 역시 그의 도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족도>와 같은 작품을 남긴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그에게 가족이란 혈육 이전에 함께 삶을 공유하고 자신을 믿고 지지해준 이들을 의미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가족’에 대한 많은 생각이 오가는 오늘입니다. 자신만의 특별한 ‘가족’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명절 보내시기를 바라겠습니다.